깡패에게도 가슴 뜨거운 이야기 하나쯤 있다.
한과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강한나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조지혁 이사와 경주에 있는 한과공장을 오가며 추석 명절 특수를 준비했다.
빈번하게 출장을 가게 되면서 조지혁 이사가 맡았던 ‘못 받은 돈 받아 줍니다’의 해결사 부대의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다고 판단한 이종태 사장은 예전에 남대문시장에서 옷 장사를 할 때 잡다한 일을 시켰던 김상천 부장을 불러 올렸다.
직업도 없이 하는 일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그가 나이트클럽 기도나 동네 건달 짓을 하다가 이종태 사장 밑에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사람들을 찾아가 돈을 받아내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체격이 씨름이나 레슬링 같은 운동을 했던 사람처럼 거구여서 험하게 협박을 하지 않아도 그의 찌푸린 얼굴만 봐도 돈을 갚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 있다.
김 부장은 생긴 것과는 달리 효심이 지극한 아들로,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홀로 형제들을 키워주신 어머니가 병으로 쇠약해진 탓에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고 한다.
그는 나름대로 그런 어두운 세계에서 벌어 온 돈으로 어머니의 잦은 수술비를 마련했지만,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큰 수술을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이종태 사장이 그 수술비를 대신 해결해주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이종태 사장이 부르면 가정사이건 사채업 해결사 일이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는 충신 중의 충신이라고 이종태 사장은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구태의연한 이런 이야기는 실제로도 우리 사회에 있는 일이기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여러 명 장면들이 태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강한나는 김 부장의 험상한 얼굴을 좋은 마음으로 견딜 수 있었다.
해결사 부대의 일도 의뢰건수가 늘어나면서 김 부장 밑으로 직원을 한 명 보충했는데 의외로 키가 작고 깡마른 남자였다. 김 부장과 같은 일을 했던 사람이라고 하니 아마도 나이트클럽이나 룸살롱 같은 야간 유흥업소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수 있었다.
고충석 과장이라고 불리는 그는 왜소한 몸에 안 어울리게 어깨부터 내려오는 팔뚝이 두꺼웠다. 얼굴보다 손이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기형에 가까운 팔뚝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자랑하듯이 날씨가 추워지는데도 항상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다녔다. 왜소한 몸을 커버할 목적일지도…
그 모습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뽀빠이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체격으로 보아도 안 어울릴 것 같았던 블루토처럼 생긴 김 부장과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콤비로 보였다.
뽀빠이 고충석 과장은 김 부장한테 불려 입사하기 전까지 신사동에 있는 유명한 요정(실제로 그런 곳이 있는지 모르지만)에서 일했다고 한다. 사나운 손님으로부터 여직원을 보호하는 일과 여직원의 출퇴근을 도와주는 잡다한 일을 하다가 칼에 맞은 적도 있다며, 팔뚝에 흉한 칼자국(전문용어로 칼빵이라는)을 보이면서 마치 영광의 상처라는 듯 떠들어댔다.
그런 고 과장이 멋지다며 사랑을 고백한 여직원과 애인 사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사랑을 맹세하러 간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다고.
그곳에서 누가 봐도 예쁜 여자친구한테 겂없이 깐족 되던 건달들과 싸우게 되었고 그때 다친 얼굴의 상처를 보여주며, 목숨 걸고 여자친구를 구했던 그날의 생생한 기억을 열을 토하며 뱉어냈다.
그 외, 자신이 담당했던 여직원이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탤런트가 되었다는 이야기며, 그 탤런트는 자신한테 듬직한 오빠라고 불렀고 아직도 전화하면 반가워한다나.
고 과장은 해결사 일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이런 잡담을 하면서 여직원들에게 영웅담을 떠버리곤 했다. 그러다가도 조지혁 이사와 강한나가 출장에서 돌아오면 쥐새끼처럼 쪼그라져서 책상 앞에 납작한 아메바처럼 붙어있었다.
한과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한과를 담을 박스가 완성되어 또 경주에 내려가야 했다. 추석명절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들 몇 명이 밀린 월급을 받고 그만두는 바람에 일손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경리과 여직원까지 데리고 가야 했다.
무뚝뚝한 강한나와는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의 경리과 여직원 김수영 대리는 처음에는 호랑이 눈깔의 조지혁 이사가 무섭다고 뒷 좌석으로 꽁지를 빼더니 경주를 오가는 차 안에서 졸지 말라고 해주는 조지혁 이사의 감빵생활 경험담을 드라마 이야기보다 재미있다며 강한나를 뒤로 보내고 조수석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조지혁 이사의 감빵생활 이야기.
한 번은 운동시간에 교도소 운동장에 나가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조그만 아기 고양이가 따뜻한 양지쪽에서 햇빛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똘마니들이 갖다 바친 소시지를 한 입 떼어서 주었더니 다음 날부터는 조 이사를 기억하고 곁으로 다가왔다고.
조 이사가 '미미'라고 이름 붙여준 사랑스러운 아기 고양이 덕분에 고독한 감빵생활에 황폐해진 가슴을 치유받았다는 생각에 계속 소시지며, 닭고기 등 먹다 남은 음식을 주면서 음울한 생활을 견뎌냈다고.
조지혁 이사가 광복절특사로 출소할 때쯤에는 먹다 남은 음식으로 모자라 똘마니들 간식까지 빼앗아서 먹였더니 아기 고양이었던 미미가 호랑이만큼 커졌다는 이야기며.
동네 불량건달 시절, 친구 따라 간 동네 교회의 청소년 예배실에서 어떤 여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그녀를 만나려고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목사님이 조 이사를 보고 ‘깡패 짓은 그만둔 거냐?”라고 말한 것을 듣고부터 그 여학생이 교회에 오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며.
몇 년 후 우연히, 그 여학생과 비슷한 여성을 만났는데 교회의 어린이교실 선생님이었다고,
그 여성을 무지 많이 쫓아다녔는데 알고 보니 목사님 딸이었다는.
그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를 시작하고 와이프가 임신상태였을 때 그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고, 조 이사는 아내의 임신사실을 모르고 감빵으로 들어갔고, 지극정성, 일편단심으로 출소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는.
3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뻔한 이야기 같지만, 그 이야기를 할 때의 조 이사의 눈물이 촉촉하게 젖어든 것을 백미러로 흘깃 훔쳐본 강한나는 냉혹한 호랑이 눈깔에서도 눈물이 흐르는군 하며 몰려오는 졸음을 참으려 크게 하품을 해댔다.
하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주책맞게 김 대리가 답했다.
“아니.”
“아니.”
“뭔데요?”
“……”
갑자기 말문이 막힌 강한나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김 부장이나, 고 과장,
조지혁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