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의 돈을 갈취한 민간인
새로 시작하는 유통사업을 구체화하는 회의를 한다는 명목으로 매일 문지방이 닳도록 분주하게 외부인들이 들락거리며 방문하고 회의실에서 몇 시간씩 회의를 하더니, 사무실을 개설한 지 한 달 만에 사업의 방향이 정해졌다며 사장실로 강한나를 불렀다.
그동안, 사무실 가구와 기기, 비품 등을 구입, 정리하거나 컴퓨터 통신시설, 전기 등을 설치하고 명함이나 서류양식을 만들어내는 등 온갖 잡무를 하면서 한 달을 보냈다.
경주의 한 재래시장에서 전통한과를 만들어내는 공장에서 한과를 들여와 양재동 대형마트에서 판매를 하는 일부터 스타트한다는 설명을 듣고 강한나는 의아해했다.
처음 사무실에서 만난 깡패들과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을 때 보았던 양재동 대형마트의 청사진 도면을 다시 꺼내 눈앞에 펼쳤다.
그때, 한과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깡패들과 한과장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이다.
경주에서 올라온 한과공장 사장은 장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오느라 피곤한 얼굴에 구겨진 면바지, 추레한 잠바를 걸치고 회의실에 초췌하게 앉아있었다.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거의 강압적인 회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한과공장을 운영하면서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검은돈을 빌리게 되었고, 채무기한이 지났는데도 갚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국 곳곳에 들어서는 대형마트의 위세에 눌려 무너져가는 재래시장의 생존문제는 뉴스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처참한 상황임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확인한 셈이다.
재무관계의 전문가와 회계사들을 불러 모아 심도 있는 회의를 한 결과, 공장을 계속 운영하며 직원들의 밀린 월급을 지급하고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빌린 돈과 이자만큼 한과를 납품하면서 갚으라는, 나름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논리의 결론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경주의 한과공장에서 납품한 한과를 이종태 사장이 개설한 이 회사에서 브랜드화해서 서울의 몇몇 대형마트에서 판매한다.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사채업자에게 지급하고 매출이익의 일정 비율을 유통회사인 JT 코리아에 넘긴다.
이종태 사장의 마지막 한마디로 회의가 끝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른바, 한과의 판매권을 손에 쥐는 셈이다.
채무관계가 종료해도 지속적으로 상품을 대형마트에서 판매하게 된다는 약정은 한과공장 사장에게도 생존권을 보장받게 된 것이라고 납득하고 회의는 상호 만족하는 분위기로 명쾌하게 끝났다.
이 시점에서 강한나가 궁금해했던 것은, 어떻게 철통 같은 대형마트에 스리슬쩍 입점할 수 있게 되었는가 이다. 혈연관계도 학연관계도 아니면 지연관계인데,
상품을 납품하기 전에 매장면적과 상품의 집적조건, 재고상품의 저장가능공간 등 매장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우선 양재동 대형마트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종태 사장과 조지혁 이사, 그리고 미국으로 떠난 에르메스 셔츠 오상도 과장의 대체인원으로 새로 입사한 거구의 사나이 김 부장이 운전하는 검은색 벤츠가 대형마트의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벤츠가 멈추자마자 운전석에 앉았던 거구의 김 부장이 튀어나가듯 문을 열고 내리더니 뒷좌석의 문을 열고 이종태 사장을 에스코트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뽀빠이’의 ‘블루토’처럼 생긴 김 부장은 거구임에도 몸 움직임이 제비처럼 가벼웠다.
마트의 정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니 블루토 김 부장보다 더 몸집이 큰 남자 두 명이 이종태 사장과 조지혁 이사를 보더니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이 모습은 강한나가 이미 지겹도록 본 깡패들의 인사장면임에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거구의 깡패들이 이 대형마트의 입점 결정권을 갖고 있는 간부직원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형님.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찍기만 하십시오. 바로 통보하겠습니다.”
“응. 그건 여기 강 과장이 할 거야.
강 과장, 명함 드리고 앞으로 강 과장이 모든 걸 상의하면서 진행해.”
하필이면 그날, 입점 회의를 한다기에 검은색 정장 슈츠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을 했는데, 똑같은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이종태 사장과 조지혁 이사, 김 부장, 강한나는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없이 한 패거리로 보였을 것이다.
돈줄을 쥐락펴락하는 조니 뎁을 닮은 이종태 사장, 호랑이 눈깔을 한 조지혁 이사, 블루토처럼 생긴 거구의 깡패들 사이에서 위화감 없이 앉아있는 강한나를 보고 대형마트의 기도처럼 생긴 거구의 남자들은 그녀를 신입 여자깡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유명 체육대학을 나온 전직 씨름 선수였던 마트의 간부직원들은 한때, 깡패들의 호적에 올라있었던 사람들로 어찌어찌하다가 유통업체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유통사업을 하는 깡패들의 순조로운 입점을 도와주면서 조직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한다.
불쌍한 건 한과공장 사장이다.
깡패 조직을 견실하게 하고 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면서도 자기 손에 돈 한 푼 못 쥘 안타까운 현실에 강한나는 가슴이 져렸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 입사해서 잡다한 일을 한지 한 달이 되었는데 월급을 받지 못했다. 강한나 사전에 없었던 일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강한나는 책상에 가방을 던져놓고 사장실로 직행했다.
“그런데 사장님.
일 한지 한 달이 넘었는데 월급을 못 받았습니다. 언제 주시는 건가요?”
마치 월급을 안 준 악독 사장 취급을 받았다는 불쾌감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까만 아이라인 눈초리로 노려봤다.
“야! 내가 언제 돈 뗘먹었냐? 안 그래도 오늘 줄 거야. 걱정 마!”
기분 나쁜 투로 버럭 화를 내더니 경리과 직원을 불렀다.
“급여 명세서 장부하고 아까 맡긴 현금 다 가져와.”
은행 자동이체로 급여를 지급하는 시스템이 버젓이 있는데도 월급을 현금으로 준다니, 참으로 쌍팔년도식 원시적인 방법이다.
급여 명세서에 적힌 대로 지폐를 세고 동전까지 누런색 월급봉투에 넣는 작업을 경리과 여직원과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끝냈다.
다른 직원들에게 나눠주라며 누런 월급봉투들을 건네고 경리과 여직원을 내보냈다.
강한나는 테이블에 흩어져 있는 나머지 지폐를 정리하면서 이종태 사장을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는 입사하기 전에 사장님이 불쑥불쑥 불러내셔서 처리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 대가를 받지 못했는데 이 참에 제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하면서,
정신을 차린 조니 뎁이 기가 막힌 듯, 소리치고 있다.
사장실을 나오면서 휙, 돌아서더니 강한나가 대답했다.
사장실 문 너머로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면서 투덜거리는 이종태 사장의 혼잣말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