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장사를 하는 영어 문맹인

네 이름이 영어로 석자냐?

by Marisol

마약사건에 연루되어 FBI에 끌려간 조직원을 메우기 위해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미나리파 두목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스포츠 선수의 아버지라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면서 이종태 사장은 까만색 아이라인의 눈을 뱁새눈처럼 가늘게 뜨고는 의미심장하게,


“다른 데에서는 떠들어대지 마. 다쳐.”


하고 위험한 비밀 이야기를 강한나에게 흘렸다.

그럼, 왜 그 이야기를 하냐고... 그녀는 귀를 씻는 시늉을 하면서 사장실을 나왔다.


유명하게 된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들의 출세를 위해 인생팔이를 통해 그와 관여된 사람들이 이익을 나누고자 스토리텔링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지만, 여기 강한나가 일하고 있는 인생의 한 접점에서 유능한 스포츠 선수의 만들어진 성장 스토리를 알고 나니, 세상은 사기꾼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까지 생각되었다.


일찍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시장 모퉁이에서 호떡 장사를 하며 두 모자의 생계를 유지했고, 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아들의 스포츠 천재성을 발견하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스포츠 선수로 키워 냈다는 위대한 모성애의 여인이 사실은 미나리파 깡패 두목의 여자였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불운의 아들이 파란만장한 역경을 극복하고 인생역전을 했다는.


그런데, 천재급 스포츠선수의 위대한 엄마가 사실은 자식의 아버지가 두목으로 활약했을 때의 부하들을 찾아가 두목 이름을 대고 돈을 빌렸고, 그 돈을 도박으로 날렸고, 아들이 유명해지면서부터 아들 이름을 대고 또 돈을 빌렸고, 또 도박으로 날려버린 무정하고 한심한 엄마였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유명 스포츠선수의 아버지는 변두리 깡패조직의 두목이었고 패싸움에서 살인을 하고 그 죄를 넘버 투에게 넘기고 미국으로 도망갔다가, 조직원을 보충하기 위해 돌아와서 지금 저 사무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또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차라리 안 듣는 게 나았다고 혼잣말을 하며 사장실을 나온 그녀는 이 세상에는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훨씬 살기 편한 일이 의외로 많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글로 쓰면 책 몇 권은 된다는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지만, 그 책이 호러급 소설이거나 폭력이나 살인 등의 험한 내용을 담은 책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결국 그 두목의 여자, 유명 스포츠선수의 엄마가 저지른 도박 채무는 의리의 사나이 조지혁 이사의 검은 파워와 이종태 사장의 검은 돈줄로 해결을 하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완전히 끝났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학교 강의를 끝내고 지친 몸으로 사무실로 돌아온 강한나는 어울리지 않게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에르메스 셔츠의 남자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오상도 과장님. 뭘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세요?”


“아, 내가 팔고 있는 물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좀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좋을지 궁리 중입니다.”


“브랜드 별로 정리하는 게 가장 심플할 것 같은데요.”


“브랜드 별이요?


“네, 루이뷔똥, 샤넬, 에르메스, 구찌… 이렇게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그러니까, 리스트를 만들어서…

혹시 영어 못 읽어요?”


“……”


헐…


그동안 해외 유명 브랜드의 짝퉁 상품을 팔아 오면서 오 과장, 아니 에르메스 셔츠의 남자는 엠블렘으로 상품을 구별했던 것이다. 글자가 아니라 그림으로.


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아니면 바보 같은 천재!


하긴, 한국전쟁이 끝나고 남대문시장이나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미제 장사로 돈을 벌었던 전쟁난민들이 모두 영어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


“아니, 그런데 오상도 과장님. 며칠 후에 큰 형님이라는 분과 미국 시카고에 가는 거 아니었어요?

미국에 가려면 영어를 배워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러게 말입니다. 답답합니다. 우리 똑똑한 강 과장님이 무슨 책을 사서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서점에 가서, ‘ABC 기본영어’라든가, ‘영어 알파벳부터 시작하기’라든가, 뭐 그런 책부터 사서 처음 기본부터 시작하세요. 공항에서 자기 이름 정도는 쓸 줄은 알아야 되지 않겠어요?”


“아이고, 네 그래야겠네요. 고맙습니다 과장님!”


어울리지 않게 순진한 웃음을 흘리고 총총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지하철에서 본 영어학원 광고판에서 읽은 문구를 기억해 냈다.


‘당신은 미국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파도 병원에서 어느 부위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도 못해 치료받지 못해서 죽을 수 도있고, 경찰들이 총을 겨누고 ‘Freeze! Don't move! (꼼짝 마!)’라고 외치는데도 손 안 들고 깡패처럼 대들다가 총 맞아 죽을 수도 있고, 공항 통관에서 가방에 든 화장품이 뭐냐고 공항직원이 물어보는 질문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입국은커녕 강제 송환 될 텐데, 정말이지 위태위태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었다.


며칠 전 통화했던 일본 야쿠자 사무총회장이 가짜 금동불상 불법거래로 그녀를 주모자라고 알고 야쿠자 패거리를 은밀히 보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무라이 칼로 그녀를 후려 칠 수도 있다.

그 생각을 하니 등골이 오싹하면서 겨드랑이에 진땀이 났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다음날, 강한나보다 일찍 출근한 오상도 과장이 책상에 앉아 골똘하게 무언가를 쳐다보면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다가갔다.


영어책에 있는 알파벳을 보면서 자기 이름을 공책에 그리고 있었다.


“제가 한번 써 드릴게요. 반복해서 써 보세요.”


하면서 빈 노트에 크게 OH SANG DO라고 써 주었다.


“처음에는 대문자로 써 보세요.”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표정으로 얼굴을 노트에 파묻으며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조지혁 이사가 이번에는 하늘로 오르는 용모양의 셔츠를 입은 왼쪽 옆구리에 일수 가방을 끼고 출근을 했다.


“상도, 뭐 하느라 인사도 안 하냐?”


“아. 형님 오셨습니까? 일찍 나오셨습니다 형님!

제가 큰 형님 모시고 곧 미국에 가지 않습니까 형님.

그래서 적어도 제 이름 석자는 영어로 쓸 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형님.”


당연히 넘버 투 형님의 칭찬을 받을 줄 알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한 오상도 과장을 호랑이 눈깔로 째리면서 조 이사가 비아냥거렸다.


“네 이름이 영어로 석자냐?”


“아닙니다 형님. 여덟 글자입니다. 형님.”


이런 덤 앤 더머 같은 장면을 보고 강한나는 한숨을 쉬고 혼잣말을 했다.


혹시 깡패들이 나오는 영화에서처럼 샤넬을 채널로 읽거나, 오렌지 주스를 영어로 델몬트라고 알고 있거나,

루이뷔똥이 진짜 똥인 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정말 미국에서 죽을 수도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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