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시절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셰프의 놀라운 초능력적인 지식과 감성을 바탕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아직까지 나는 세프의 능력에 존경심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만난 루팡을 닮은 셰프는 음식은 만드는 것(Make)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Create)이라고 강조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내가 인생에서 두 번째 만난 셰프의 이야기이다.
H 셰프는 호텔 레스토랑 출신 셰프이다. 젊지만 10년의 경력이 있는 베테랑급 셰프로서 이탈리안 요리 전문이라고 한다. 군 시절 취사병이었기 때문에 대용량 한식도 무리 없이 해 낼 수 있는 전천후급 셰프라고 할 수 있다.
라이브 카페 레스토랑에서 대표 셰프로 근무하는 H 셰프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루팡 셰프만큼 인간의 오감을 최적의 상태로 만족시킬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 미각과 후각은 물론. 불과 물, 시간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프라이팬에 식재료를 넣고 익히거나 볶거나 할 때의 손놀림은 무림도사급 움직임으로 팬을 휘두른다.
고기를 넣어 익힐 때와 버섯 류와 베이컨, 채소, 마늘과 양파 등을 익힐 때의 불 조절, 시간 조절에 철두철미한 나름의 매뉴얼이 몸에 배어 자유자재로 손을 움직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메뉴가 한꺼번에 주문이 들어왔을 때에는 한 번에 여러 개의 불 판을 사용하면서 프라이팬 대 여섯 개를 두 팔로 현란하게 요리하는 모습은 초능력자 바로 그 모습이다.
플레이팅을 할 때에는 샐러드와 메인 음식과의 양과 접시에 차지하는 적당한 면적을 계산하여 음식을 올린다. 소스를 올리고 파슬리 가루나 치즈 가루를 올릴 때의 손놀림 역시 시각적으로 식욕을 돋우게 하는 최적의 양과 디자인, 그리고 손님이 입안에 음식 한 조각을 넣었을 때 만족할 만한 식감 또는 씹는 맛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음식을 완성한다.
스테이크를 만들 때에는 더욱 정성을 들인다. 빨간색, 오렌지색, 노란색의 파프리카와 당근, 호박, 가지,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등의 다양한 컬러를 내는 채소들로 가니쉬(Garnish)를 준비해 둔다. 껍질과 다리를 말끔하게 정리 정돈한 왕새우도 들어간다. 스테이크는 웰던이냐 레어냐에 따라 당연히 굽는 시간이 다르다. 이때 스테이크의 고깃 덩어리의 탄력 정도로 웰던과 레어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셰프의 촉각 능력이 발휘되는 타임이다. 버터를 넣어 스테이크를 구우면 고소한 향이 나는데 이 향은 식욕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프라이팬 위에서 버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녹아가면서 스테이크에 윤이 나기 시작한다.
미각, 후각, 시각, 촉각, 청각.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오감 능력을 사용한다. 그러니 음식을 종합 예술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일은 과학적 논리와 생물학적 특성, 식재료의 적절한 혼합을 위한 화학적 반응 등에 대한 이해와 식견이 필요한 작업이다.
역시 셰프들의 뇌 구조는 특별하다. 존경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온갖 초능력을 발휘하여 완성된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을 한다. 빨간색, 오렌지색, 노란색, 초록색의 가니쉬들은 이미 그릴에 살짝 구워져 체크무늬 그릴 자국으로 멋진 모습이 되었다. 왕새우도 체크무늬, 스테이크도 정성스럽게 앞뒤 체크무늬의 그릴 자국으로 위풍당당한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왕족들 같다. 오븐에 구워진 모든 출연진들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하얀 접시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먼저 바질 페스토가 무대 배경이 된다. 멋지게 붓으로 쓰윽~ 칠한 위에 오색찬란한 가니쉬들이 놓인다. 버터를 넣어 부드럽게 구워진 통감자는 성벽과 같이 든든한 무대의 뒷배경이 되고 장군 왕새우는 스테이크의 호의무사로서 중앙에서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고 왕인 스테이크를 맞이할 자세를 취한다. 드디어 주인공 왕이 납신다. 뚜둥! 스테이크의 등장이다. 캐러멜화된 소스를 입히고 파슬리 가루, 치즈가루로 단장을 한다. 마지막으로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장식하면 전쟁터에 출전하는 창을 든 왕의 모습을 한 스코틀랜드의 왕새우 스테이크의 완성이다.
셰프의 모든 능력과 지식, 영혼이 들어간 예술작품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셰프의 훌륭한 예술작품이 손님의 테이블로 옮겨가면서 지금까지의 셰프의 모든 노력이 처참하게 무너진다.
라이브 카페 레스토랑의 실내 창문은 햇빛 한 줄 들어오지 않도록 시트로 막아버렸고 오로지 라이브 공연 무대를 중심으로 현란한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실내는 깜깜하고 푸른색과 보랏빛 조명에 의해 음산할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로 조성되었다. 음식보다 공연을 중요시 한 경영주의 방침이리라. 테이블엔 트렌드에 걸맞지 않은 테이블보가 깔려있다. 철 지난 체크무늬 테이블보라니.
스테이크 접시가 손님 테이블에 놓이면서 식욕 억제에 효과가 있어서 다이어트용 그릇에 사용된다는 푸른색 조명으로 무참하게 폭격당한다. 손님의 식욕을 돋우기 위해 여러 가지 컬러의 가니쉬를 만들어내고, 멋스럽게, 맛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정성스럽게 그릴로 체크무늬로 단장을 한 모든 출연진들의 모습이 푸른색 폭탄에 잔인하게 저격당하고 말았다. O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