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에서 배우는 창의적 기획.

창의적 기획은 제약에서 시작된다.

by 마켓빌더

무언가를 기획한다는 건 늘 막막함과 마주하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넘치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며, 무엇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함이 늘 마음을 붙든다. 이 막막함은 낯설지 않다. 주말 오후, 딸아이와 함께 블록을 꺼내던 순간이 떠오른다. 상자 가득 쌓인 수백 개의 블록 앞에서 딸아이는 주저함 없이 조립을 시작했다. 로켓이 되고, 공룡이 되고,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의 손에는 설명서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블록을 쥔 손이 이끄는 대로 세계가 완성되었다. 나는 그 옆에서 한참을 멍하니 블록만 바라봤다. 뭐부터 만들지, 이걸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설명서를 찾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이걸로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괜히 이상한 거 만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아이가 조심스레 묻는다. “아빠는 왜 안 만들어? 그냥 하면 되는데.”


이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기획을 할 때마다 정답부터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정답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는 다르게 움직였다. 블록이라는 제한된 형태와 규칙 속에서, 오히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창의성이란 무한한 자유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어떤 규칙과 구조 안에서 더 쉽게 발현된다는 것을.


정재승 창의성.jpg @출처 : JTBC <차이나는 클라스> 프로그램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는 창의성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자신에게 규칙을 만든다. 그 틀 안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한다.” 이 말은 레고를 설명하는 것처럼 들렸고, 동시에 내가 마주해왔던 수많은 기획의 순간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품을 기획할 때, 브랜딩 전략을 짤 때, 마케팅 캠페인을 설계할 때, 우리는 ‘이걸 해볼까’, ‘저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발상을 확장시킨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건 왜 하는 거지?’,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일까?’ 하는 질문 앞에서 길을 잃곤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창의성은 자유를 빙자한 무질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틀 안에서 자유롭게’가 오히려 창의적인 기획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기획자는 자유를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약을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기획자는 제약을 만든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그중 단 하나의 가능성을 선명하게 잘라내는 사람. 나는 이것이 ‘기획력’이라는 말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조건과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기획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문제를 먼저 만든다. 어떤 고객을 위한 기획인가, 어떤 조건 아래에서 풀어야 하는가, 어디까지는 할 수 없다고 전제한다면 무엇이 가능해지는가. 이 모든 질문은 제약의 형태로 우리를 명확한 방향으로 이끈다. 제약은 단순한 제한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이고, 프레임이고, 전략의 출발점이다. 잘 만든 제약은 기획자의 사고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고객에게 도달하는 길을 단순하게 정리해준다. 기획자는 창의적인 생각을 더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 없는 가능성을 덜어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제약을 실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 가지 방식으로 정리해두었다.


1. 한정 조건 기획법


첫째는 한정 조건 기획법이다. 특히 기획의 초기 단계에서 유용하다. 타겟, 메시지, 채널, 비용, 시간. 이 다섯 가지 기준에 따라 제약 조건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 안에서 기획을 시작한다. 타겟은 단 한 명의 고객을 상상하고, 그 사람을 위한 기획을 설계한다. 메시지는 단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기획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채널은 하나만 남긴다. 한 채널로만 알려야 한다면 어떤 방법이 최선일까. 비용은 100만 원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은 일주일 안에 시작해야 한다면 무엇이 가능할까. 이 다섯 가지 제약은 기획의 폭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실행 가능성을 끌어올린다.


2. 빈칸 채우기 기획법


둘째는 빈칸 채우기 기획법이다. 모호한 기획은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한 문장으로 기획을 정리해보자. ‘이 상품은 [누구에게], [어떤 순간에], [무엇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문장은 단순하지만 명료하다. 핵심이 빠지면 문장이 완성되지 않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획은 고객에게도 전달되지 않는다. 기획자는 기획을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달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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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부러 빼기 기획법


셋째는 일부러 빼기 기획법이다. 우리는 기획을 할 때 무언가를 더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를 덜어내야 본질이 드러난다. 애플은 스마트폰에서 이어폰 단자를 없앴고, 그 순간 무선 시대가 시작됐다. 스타벅스는 브랜드명 없는 로고를 사용했고, 오히려 텍스트가 사라진 자리에 강력한 심볼이 남았다. 이케아는 제품 설명을 제거하고, 실제 공간 속 제품 장면만 보여줬다. 말하지 않았기에, 고객의 상상력이 더 멀리 확장됐다. 기획자는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빼야 하는지를 먼저 물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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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기획은 언제나 제약을 어디에, 어떻게 설정하느냐에서 시작된다. 제약은 나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뛸 수 있게 해주는 골조가 된다. 기획자는 제약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약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제약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장을 만들어간다.


지금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있다면, 딱 하나의 제약 조건부터 적어보자. 고객을 단 한 명으로 좁힌다면, 기능을 하나만 남긴다면, 마케팅 예산을 하나로 줄인다면. 하나의 제약을 고민하는 순간, 이미 당신의 창의성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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