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던 밴드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밴드가 되면 괜히 듣기 싫고,
나만 알던 맛집이 유명 음식 방송에 나와 인기를 타면 왠지 가기 싫어집니다. (현실적으로 먹기 어려워지는 건 덤이죠)
비슷한 이유로 그라운드시소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항상 인기가 꽤 많아서, 왠지 모두가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다녀오기 싫은 그런 마음이 듭니다.
워너 브롱크호스트(Werner Bronkhorst) 역시 그랬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홍보물과 후기를 여럿 봤던 것 같다고 느꼈는데,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퇴사 선물로 티켓을 받아 다녀오게 되면서 드디어 가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전시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기로 연장 운영 중이었고 2월 말일까지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일정을 짜다 결국 전시 마감일 전날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라운드시소 서촌의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서촌만의 분위기로 여러 전시를 주관했었는데 아쉬운 이야기예요.)
전시를 관람하다 보니 문득 수년 전 일본 작가 타나카 타츠야의 전시가 생각났습니다. 미니어처 스타일의 회화라 그랬을까요?
그때의 전시를 돌이켜보면 작품마다 시점의 변화와 함께, 창의력 넘치는 도구를 활용해 우리네 삶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라고도 하던데, 미니어처를 보는 우리의 모습은 멀리서 보는 시점에 가까워 더 재밌고 즐거워 보이는 게 아닐까요?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전시도 마찬가지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품의 크기는 다 다르지만, 상당수의 작품이 커다란 캔버스에 미니어처처럼 세세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표정 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이나, 생각까지 읽을 수는 없죠.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몸짓을 통해, 처한 환경을 통해 그들의 에너지를 유추해 볼 뿐입니다.
색과, 질감과, 크고 작은 요소의 단순한 조화가 이루어내는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작은 사람들과 그에 비해 크게 느껴지는 배경이 우리가 집중해야 할 대상에 몰입하게 합니다.
겨울방학 시간을 보내며 전시를 많이 관람하려고 했습니다.
그동안의 예술적 갈증 해소와, 전시에서 보이는 여러 아이디어를 얻어보려고요.
마케터의 관점으로써 바라본 이번 전시는 '몰입하기 좋고, 디테일 좋은 전시' 였다고 생각합니다.
전시는 시작부터 작가의 관점으로 말로부터 시작합니다.
마치 캔버스 속으로 들어가듯 우리는 작가의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지요!
'Whole world is a canvas. We're just walking in it'라는 표현처럼 말이죠.
들어서면 바로 이 독특한 세상의 작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벽을 통째로 캔버스처럼 사용해 전시를 위해 특별히 그린 그의 모습이죠.
아마 이번 전시를 마무리한 지금 즈음은 작품이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전시는 특히 작가의 전시실, 그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가 작업하는 데 사용했을지도 모르는 페인트 통과(아마 맞을 거예요) 작업대, 전등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거든요.
또한, 각 전시 구역의 안전선은 일반적인 역할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Streets' 섹션에는 'Stand behind the Streets'라는 안내로 맥락을 더해주고, 'The Strokes' 섹션에서도 마찬가지로 'Stand behind the Strokes'라는 문구로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뿐 아닙니다.
작가의 새 컬렉션 전시실은 더 힘을 준 것이 느껴지죠!
골프장과 공원이 주 주제가 되는 3층의 전시실에서는 마치 우리가 골프장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꾸며져 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던 신작들이기에 전시 주최 측도 아마 더 민감하게 준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타 작가의 작품처럼 평평한 작품들이 아니다 보니, 그의 작품은 프레임과 캔버스가 있지만 그 어떤 덮개도 없습니다. 그의 작품의 온전한 질감을 관람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한 듯합니다. (칭찬해요!) 덕분에 가까이서, 멀리서, 옆에서, 모든 시선에서 작품을 감상해 볼 수 있었어요.
대신, 전시 주최 측은 작은 언덕을 만들어 우리에게 유쾌하게 경고를 주네요.
'KEEP OFF THE GRASS!' 잔디밭에 올라가지 마세요! 라면서요.
마지막 전시 층인 4층은 바다, 수영장, 해변 등 물이 중심이 됩니다.
그런 만큼, 잠시 쉬어가며 관람할 수 있는 벤치는 수영장처럼 꾸며져 있어요.
마치 시원한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관람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랄까요!
이처럼 주제와 작품에 맞는 적절한 설치는 참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디테일이 왜 이 전시가 인기가 많았는지, 다시 한번 보여준다고 봐요.
작가 워너 브롱크호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재질의 도구를 활용해 수많은 기법을 시험해 봤다고 해요.
그런 셀 수 없는 과정을 거친 끝에 그는 질감을 담은 그만의 기법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수 있지만 아크릴 물감, 아크릴 젤을 활용해 캔버스 위에 두껍게 쌓는 화법은 이미 존재해 왔지요. 그러나 그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색채와 질감을 활용한 추상적인 그림으로 작품을 완성하려던 작가는 그림에 무언가가 빠져있음을, 허전함을 느낍니다. 그렇게 그가 그려 넣은 것은 아주 작은 인물들이었어요.
비로소 이 인물들이 그림으로 걸어 들어와 살아 숨 쉬게 되었을 때 그만의 화법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처럼 경험과 실력에 우연 한 스푼이 더해졌을 때 우리는 독보적인 존재가 됩니다.
좋은 전시에 다녀올 수 있어 많은 영감을 받아왔습니다.
역시 아름다움은 인생에 필요하구나 싶었달까요.
조승연 작가는 예술이 '현실이 아닌 그 무엇'을 보여줌으로써 꿈을 꾸게 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인지하게 하며, 아름다움을 알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링크)
현실을 도피하는 곳, 이상적인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더 잘 살아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죠.
당신의 예술은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