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마케팅 | 3편
희귀질환 환자의 진단을 위한 유전자검사 서비스.
환자가 원하니 당장 잘 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문제는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희귀질환 진단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건, 단순히 하나의 고객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제품이 실제로 쓰이기까지 관여하는 사람들을 나열해보면 이렇습니다. 진단을 받아야 하는 환자, 진단을 내리는 의사,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병원 행정, 비용을 승인하는 보험사, 그리고 질환 인식을 높이는 비영리단체까지. 모두가 연결되어 있었고, 모두가 중요했어요.
우리는 이 중에서 실제로 제품 사용 결정에 가장 영향력이 높은 사람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초기에 환자 직접 마케팅을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논리는 단순했어요.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알고, 진단 가능성을 인지하고, 의사에게 먼저 요청한다면 — 수요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죠.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시장에서는 환자와 환자단체가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이 많았기에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도한 만큼 환자들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우리 웹사이트를 더 찾아보고, 문의를 하고, 진단 받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팔 수가 없었습니다. 왜였을까요?
우리를 잘 모르는 의사가 서비스를 믿고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동료 의사가 전해준 이야기가 아니라, 환자가 직접 찾아와 해결책이라며 내미는 상황이라면 더더욱요. 이상적으로는 환자 근처에 우리 서비스를 잘 아는 의사가 있어야 했는데, 저희는 아직 그런 파트너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각 단계마다 다른 설득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가장 아래 단계만 바라보고 희망찬 걸음을 내딛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환자 직접 마케팅을 후순위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원래부터 의사 대상 접근은 하고 있었어요. 다만 이 시점부터는 여기에 더 집중하기로 한 거죠.
의사 마케팅은 일반적인 B2B 마케팅과 결이 달랐습니다. 의사는 단순히 광고를 보고 움직이지 않았어요. 논문을 읽고, 학회에서 동료의 발표를 듣고, 신뢰하는 전문가를 따라 안전한 선택을 했죠.
채널보다 신뢰가 먼저였어요.
그래서 접근 방식을 더 날카롭게 벼렸습니다. 업계 주요 학회에 더 적극적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레퍼런스가 될 만한 연구 케이스를 만들었어요. 우리 제품을 먼저 써본 의사가 동료에게 이야기하는 구조 — peer pressure가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었습니다.
콘텐츠도 달라졌어요. 환자에게 쉽게 설명하는 언어 대신, 의사가 신뢰할 수 있는 근거 중심으로. 이 전략은 매출을 내기 시작하던 4년여 시간 동안 유효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가 조금씩 바뀌었다는 거예요.
회사가 성장하고 브랜드 레퍼런스가 쌓이면서, B2G 계약, 제약사와의 B2B 계약, 심지어 환자 주도의 서비스 활용까지 조금씩 가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환자 커뮤니티에서 우리 제품이 언급되고, 환자가 먼저 의사에게 물어봐 의사가 저희를 찾아 연락하는 케이스가 여러 번 나타났어요.
초기에 시도했다가 후순위로 미뤄뒀던 그 방식이, 신뢰가 쌓인 이후에는 자동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겁니다.
모든 전략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같은 전략도 브랜드가 준비되기 전에는 작동하지 않았어요.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과, 도입을 결정하는 사람이 다른 경우는 생각보다 많아요. 교육 서비스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다르고, 기업 소프트웨어에서 실무자와 구매 결정권자가 다르고, 어떤 산업에서는 최종 사용자와 공급자 사이에 또 다른 중간 인물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누구를 먼저 설득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순서가 타이밍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 이게 B2B 마케팅에서 배운 것 중 하나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제품에서 사용자와 구매자는 같은 사람인가요?
다르다면, 지금 마케팅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한 번 확인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설득해야 할 사람과, 실제로 설득하고 있는 사람이 일치하는지 살펴보세요.
혹시 비슷한 구조에서 고민해본 적 있나요?
어떻게 풀었는지, 아직 풀지 못했는지 — 여러분의 이야기를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