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라 다행이야 | 5편
성장 지향적인 사람들은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방향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인턴, 사원에서 시작해 점점 더 높은 직급으로. 혹은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큰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대표가 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정치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까지 가기도 하고요.
스타트업은 그걸 연습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죠. 직급이 낮아도, 연차가 짧아도, 내가 맡은 영역에서 누구보다 깊이 파고들기 좋고, 그걸 지향하는 환경이니까요.
제가 경험한 스타트업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향력을 높여나갈 수 있을까요? 당연히, 처음부터 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던 것 같고요.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나갔던 것 같습니다. 이메일 마케팅을 하기로 했으면, 그 안에서 내용을 어떻게 쓸지, 제목을 어떻게 잡을지, CTA를 어떻게 할지 같은 것들이요.
지금 돌아보면 그게 맞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세세한 것에서 가설을 세우고 실행하고 결과를 보는 경험이 쌓였기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더 큰 결정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논리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연습을 해낸 것 같습니다.
전환점은 3-4년 차쯤이었어요.
새롭게 시작하고, 정착시키고, 개선해 나가는 사이클이 몸에 붙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지속하는 힘을 붙이게 된 때였죠.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더라"를 여러 번 경험하면서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졌어요.
세일즈와 마케팅팀 차원에서 사업부 전사적으로 사용할 CRM(Customer relation management) 툴을 결정하는 데에 마케팅팀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었었습니다. 웹사이트 구조를 만들고 테스트 항목을 정해 개선해 나가는 전 과정이 그렀고요. 채용에 관한 부분도 실무자로서 팀의 업무 방향을 주장해 반영되었습니다. 팀의 주요 지표나 오프라인 이벤트의 테마나 상세 항목 역시 팀 리드와 함께 결정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겪어보지 않아 확실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대기업에서 3-4년 차 주니어가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게 가능할까요? 제가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각 사람이 관할할 수 있는 또는 관할해야 할 업무의 범위가 다른 비즈니스의 형태보다 넓기 때문입니다. 매번 새로운 시도, 제품, 프로젝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없는 걸 만들고, 있는 걸 개선하고, 최소한의 굴러가는 시스템으로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소수가 모든 걸 결정하기보다, 각자의 영역에서 함께 결정해 줄 사람이 필요해지는 거죠.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대표진은 더더욱 큰 그림을 보는 역할로 변모해야 합니다. 물론 리더십의 역할이 아닌 특정 영역의 전문가 리더로 성장해 나갈 수도 있지만, 더 선원이 많아지는 배의 리더십 역할을 누군가 맡아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진의 역할 변화와 성공적인 역할 변경이 참 중요한데, 이 얘기는 나중에 해볼까 합니다.
어찌 되었든, 대표진은 추가적인 투자를 위한 IR, 사업 방향의 결정, 신규 채용의 수와 방향성 결정, 대형 파트너십의 결정 등. 동시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특정 실무 영역을 깊게 파고든다던지, 지속적으로 잡고 가는 게 당연히 어렵습니다.
스타트업 실무자인 저희에게는 이게 기회입니다.
이메일 마케팅을 어떻게 세분화할지, CRM을 어떤 기준으로 도입할지, 웹사이트에서 어떤 요소를 먼저 테스트할지. 업무의 세세한 것들은 매일 그 업무를 하는 사람이 가장 잘 알죠. 당연히 대표진보다 내가 더 깊이 파고들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합니다.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표진의 시각도 나와 어떻게 다르고, 달라야만 하는지 더 잘 보이기 시작했어요.
대표진은 아무래도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더 멀리 봐야 하고요. 우리가 앞으로도 지켜야 할 중심이 무엇인지 더 살펴보는 거죠. 실무자와 대표진 간에 갈등이 생긴다면, 그건 대표진이 너무 먼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고, 실무자는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실무자는 자기 영역에 가까울수록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이건 꼭 해야 해"가 되죠. 근데 대표진은 그 집착을 빼고 ‘이유’를 찾아 묻습니다. 지금 이게 왜 중요한가, 회사 전체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열심히 해놓은 기획을 갈아엎는다거나, 실무진으로써의 계획이 망가지는 경험은 아무래도 하게 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지금 당장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시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영향력을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 같습니다. (쉽다는 건 아닙니다)
내가 맡은 영역에서 누구보다 깊이 파고드는 것. 가설을 세우고, 실행하고, 결과를 보고, 다시 시도하는 것. 그 반복에 의해 믿을 만한 결과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나의 의견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직급이 높아서 영향력이 생기는 게 아니에요. 그 영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면 영향력이 생깁니다. 스타트업에서는 가능한 일이죠. 주니어도, 3년 차도 상관없습니다.
가장 작은 나의 영역부터 나의 인사이트를 입증해 나가는 것. 시야를 넓혀가며 더 멀리, 넓게도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스타트업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성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조심스럽다면, 세세한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메일 제목 하나, CTA 문구 하나. 가설을 세우고 결과를 보는 것. 그게 쌓이면 됩니다.
영향력은 한 번에 오지 않아요.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넓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 과정이 스타트업에서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납니다.
그게 '제 첫 직장이 스타트업이라 다행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