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t의 5년, 그리고 일본 배달 시장의 현실
첫 글을 어떤 걸 올리면 좋을까 고민 끝에 Wolt를 골랐습니다. 일본의 배달 시장은 배민이 실패하고 쿠팡이 시도하고 있으니,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낯설지 않은 주제이지만 Wolt는 유명하지 않아서 흥미로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거든요.
저는 2021년 Wolt의 일본 채용 담당자와 면담을 하기 전까지는 Wolt를 몰랐습니다. Wolt는 일본 진출의 첫 시작을 히로시마에서 했고 도쿄 진출은 꽤 나중이었거든요.
‘흥미로운 해외 기업’ 딱 그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캐주얼 면담을 했었는데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히로시마를 첫 도시로 골랐는지, 일본의 치열한 배달 업계에서 Wolt가 가진 차별점이 무엇인지 — 이야기 하나하나에 논리와 데이터가 있었습니다. 단기간의 빠른 성과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일본 시장을 분석하고 일본에서 성장하고 싶은 회사라고 느꼈습니다. 전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안 됐습니다.
일본 배달 시장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한국인이 모르는 유럽의 강자, Wolt
Wolt라는 이름, 한국에서는 낯설거에요. 한국에 진출한 적이 없으니까요. 201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창업한 Wolt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회사입니다. 인구밀도가 낮고 겨울이 길며 날씨도 나쁜 — 배달 앱이 성립하기 가장 어려운 환경인 — 핀란드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역경의 시장에서 단련된 알고리즘과 서비스 품질을 무기로 25개국 이상으로 확장했고, 2022년에는 미국 최대 배달 앱 DoorDash에 약 82억 달러(한화 약 11조 원)에 인수됐습니다.
배달의 민족이 2019년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된 금액이 약 4조 7,500억 원인데 Wolt는 그 2배가 넘는 몸값을 받았던거죠.
"스케일보다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는 북유럽 스타트업 특유의 철학도 인상적입니다. 배달 앱의 무한 보조금 경쟁이 아닌, 이용자·라이더·식당 3자가 모두 지속가능한 구조를 목표로 했습니다. 이 철학이 일본 진출 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왜 일본인가 — 그리고 왜 히로시마인가
Wolt가 아시아 첫 진출지로 일본을 선택한 것, 그 중에서도 도쿄가 아닌 히로시마를 첫 도시로 고른 것은 상징적입니다. 일반적인 외국 기업의 일본 진출 공식은 "도쿄 오사카 전국" 입니다. Wolt는 그 공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히로시마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유럽 도시와 비슷한 인구 규모, 시내 중심부가 평탄해 자전거 이동이 쉬운 지형, 풍부한 식문화(오코노미야키, 굴 등), 그리고 스포츠 관람 문화가 생활에 깊게 뿌리내린 도시 특성. 거기에 히로시마현의 기업 유치 지원(인재 전입 보조금 등)도 있었습니다. 약 2년간의 시장 리서치 끝에 나온 결론이었습니다.
일본 직원 1호인 신타쿠 씨는 직접 히로시마로 거점을 옮겨 식당 한 곳 한 곳을 직접 영업했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도 처음엔 '당신 누구야?'에서 시작했고, 그 벽을 하나씩 설명하며 넘어갔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프리미엄 배달 앱답게 첫 파트너로 선택한 것도 현지 맛집들이었습니다. 유명 오코노미야키집 '밋챵', 지역 명물 식당들이 론칭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5년간의 도전 — 확장, 마케팅, 그리고 전략 변화
2020년 3월 히로시마에서 시작한 Wolt는 이후 빠르게 에리어를 넓혔습니다. 삿포로, 센다이, 도쿄, 후쿠오카…일본 사업에 초기 투자만 100억 엔을 쏟아부으며 "2년 내 전국 100개 도시"라는 공격적인 목표도 내걸었습니다.
마케팅 전략을 들여다보면 세 단계의 전환이 보입니다.
1단계 (2020~2021): 프리미엄 브랜딩
"오모테나시 딜리버리"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빠르고 정확한 배달과 라이더의 높은 서비스 품질을 차별점으로 내세웠습니다. 2021년에는 배우 미즈카와 아사미, 다나카 케이를 기용한 TV CM과 통합 캠페인을 전개하며 인지도를 끌어올렸습니다. "Wolt가 뭐야?"라는 인식을 깨는 단계였습니다.
https://youtu.be/zbBzwoNnwQE?si=pf8zoNyVUh6UGV4z
2단계 (2022~2023): 지역 밀착 + 다각화
Wolt는 지역 밀착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스포츠팀 후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프로야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삿포로), J리그 베가르타 센다이(센다이), B리그 라이징 제퍼 후쿠오카(후쿠오카), e스포츠팀 IGZIST.
전부 Wolt가 진출한 지방 거점 도시의 팀들입니다. 이는 단순한 인지도 마케팅이 아닌, 각 지역에서 "우리 동네 앱"으로 뿌리내리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파이터즈 스폰서십 때는 선수 9명과 Wolt 마스코트를 디자인한 랩핑카를 삿포로·하코다테·아사히카와 거리에 운행했습니다.
같은 시기 식료품과 일용품을 직접 재고로 보유해 배달하는 다크스토어 "Wolt Market"을 론칭했지만, 불과 반년 만에 철수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높은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어서 Costco, IKEA와의 파트너십, 기업 대상 즉시 배송 서비스 "Wolt Drive"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3단계 (2024~2025): 가격 경쟁으로의 후퇴
"프리미엄"을 내걸었던 Wolt가 마지막에 꺼낸 카드는 가격이었습니다. 배달료·서비스료 무료 타임세일, 그리고 처음 시작한 도시인 히로시마에서 "배달인데 매장 가격"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배달비에 대한 저항감이 강한 일본 소비자를 향한 최후의 시도였습니다.
프리미엄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가, 결국 가격 경쟁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 전략 변화의 궤적 자체가 Wolt가 일본에서 맞닥뜨린 벽을 말해줍니다.
왜 안 됐을까 — 일본 배달 시장의 3가지 벽
벽 1. 배달 문화가 애초에 약하다
한국과 일본은 배달 앱의 침투율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한국은 배달의 민족이 국민 앱이 됐을 정도로 배달 문화가 일상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일본은 다릅니다. 편의점이 도보 5분 거리에 있고, 외식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배달비에 대한 저항감이 강합니다. 시장 점유율을 보면 Uber Eats가 약 57%, 出前館이 약 36%를 차지하고, Wolt를 비롯한 나머지는 소수의 파이를 나눠 가지는 구도였습니다. 후발주자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 자체가 좁았습니다.
벽 2. 선발 주자가 이미 굳건하다
Wolt가 일본에 들어왔을 때 Uber Eats는 이미 일본에서 4년을 운영한 상태였습니다. "배달 앱이 필요한 사람은 이미 앱이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이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새 앱을 깔게 만드는 것, 습관을 바꾸게 만드는 것 — 일본 소비자에게 이 장벽은 유독 높습니다.
벽 3. 수익 구조의 한계
배달 앱의 수익성은 인구 밀도와 주문 밀도에 달려 있습니다. 고인건비 + 낮은 인구 밀도의 일본 주택가에서 프리미엄 배달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운영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배달비를 올리면 이탈하고, 낮추면 수익이 없습니다. Wolt가 마지막에 "매장 가격 배달"까지 시도한 것은 이 딜레마의 표현이었습니다.
배달의 민족도 실패한 시장,일본
배달의 민족의 일본 시장 도전과 실패는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2014년 라인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라인와우(Linewow)'로 첫 번째 일본 진출을 시도했지만 1년여 만에 철수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배달 수요가 폭발하던 2020년 12월, '푸드네코(FOODNEKO)'라는 이름으로 재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달의 민족의 모회사 딜리버리히어로(DH)가 별도로 운영하던 푸드판다(foodpanda)가 이미 같은 일본 시장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두 서비스가 겹치자 DH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2021년 4월, 불과 5개월 만에 푸드네코를 푸드판다에 흡수 통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푸드판다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20년 9월 일본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14개월 만인 2022년 1월 31일, 매각 상대조차 찾지 못한 채 해산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3가지 교훈
1. 준비된 진출도 시장 구조 앞에서는 한계가 있다.
Wolt는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2년간의 리서치, 명확한 도시 선택 이유, 지역 밀착 전략. 하지만 "배달 문화가 약한 시장"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마케팅으로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라는 단기적 특수가 있었지만, 그 또한 문화를 바꾸진 못했습니다. 진출 전, 시장 자체가 자신의 서비스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2. "성공 공식"은 간단히 이식되지 않습니다.
핀란드에서, 유럽에서 혹은 한국에서 통했던 방식이 일본에서 그대로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Wolt는 이를 알고 현지화를 시도했지만, 근본적인 소비자 행동 패턴의 차이는 넘지 못했습니다. 시장을 이해하는 것과, 시장을 바꾸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3. 철수 결정도 전략입니다.
DoorDash는 일본(Wolt)외에도 카타르, 싱가포르,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에서 동시에 철수하며 "선택과 집중"을 선언했습니다. "재무 전망에 큰 영향 없다"는 담담한 발표였습니다. 빠른 철수 결정 역시 경영 판단입니다. 버티는 것만이 전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본 배달 시장은 누구의 것인가
유럽 1위 배달 앱도, 한국 1위 배달 앱도 안 됐습니다. 일본 배달 시장은 Uber를 포함한 글로벌 플레이어들에게 여전히 높은 벽입니다. 누구도 진정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배달 시장. 쿠팡은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