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앱으로 시작한 두 회사의 다른 비즈니스 모델

한국의 리멤버는 채용플랫폼, 일본의 Sansan은 B2B 인프라가 되다

by 마케터 K

4월 1일은 일본의 직장인들에게는 특별한 날입니다. 물론 만우절 때문은 아니구요, 전국 수만 개의 회사에서 신입사원 입사식(入社式)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신입사원 공채가 중심인 일본에서 4월 1일은 회사원에게는 한 해의 시작이자, 사회인으로서의 첫날입니다.

입사식에서 종이 비행기를 날리는 JAL그룹사장과 신입사원

입사식이 끝나면 신입사원 연수가 시작됩니다. 거기서 반드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명함 건네는 법, 그리고 명함 받는 법입니다. 명함을 잡는 위치, 두 손으로 건네는 각도, 받을 때 고개를 숙이는 타이밍, 받은 명함을 테이블에 놓는 순서까지. 강사가 시범을 보이고, 짝을 지어 반복 연습을 합니다.


저도 일본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 연수를 받았었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작은 문화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정장”을 입고 싶지 않아서 자율 복장으로 면접을 봐도 되는 곳들만 지원하고 “비즈니스 캐주얼”이 아닌 정말 평범한 대학생의 사복을 입고 면접을 봤었거든요. 그 회사는 사원이 100명 남짓인 IT 회사였고, 캐릭터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출근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정말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였습니다. 그런 회사에서도 명함 받는 법은 정식으로 가르쳤던거에요. '이것도 배워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아, 이 나라에서 명함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구나, 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명함 교환은 일본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방식이자, 두 회사가 관계를 시작하는 의식입니다. 명함을 건네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태도를 가늠합니다. 받은 명함을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는 것은 상대방의 회사에 대한 존중의 표현입니다.


이런 문화의 차이가 두 나라에서 완전히 다른 유망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진출을 고려한다면 알아야 할 이벤트 — Startup JAPAN EXPO

명함 이야기를 하다 스타트업 전시회 이야기를 하면 뜬금없다고 느끼시겠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이 Startup JAPAN EXPO를 주최하는 곳이 바로

Sansan의 개인용 명함 앱 Eight이거든요.

Startup JAPAN EXPO-450개사가 출전하고 1만 3,000명이 참가하는 일본 최대 스타트업 전시회입니다. 그리고 이 행사는 일반 참가자들의 참가 신청부터 기업의 부스 신청 및 당일 리드 관리까지 모든 것이 eight와 연계됩니다. (예를 들어 일반 참가자는 eight 계정이 있어야만 이벤트 신청이 가능합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VC가 한 공간에서 만나 실제 상담과 계약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참가자들은 행사에서 교환한 명함을 sansan의 서비스들로 관리하며, 비즈니스 관계로 이어지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게됩니다.


올해는 4월 15일-16일 2일간 진행됩니다

공식 사이트: https://eight-event.8card.net/climbers/startup-japan/​


한국이 모르는 일본 SaaS의 왕, Sansan

Sansan.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입니다. 아마도 일본 시장에 진출하려는 SaaS 기업이라면 들어보셨을 수 있습니다. SaaS기업의 꿈을 이룬 회사라고 할 수 있거든요.

2007년 창업, 2019년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현재 프라임 시장 상장사. 2025년 11월말 기준 ARR 459억엔, 전년도 동기비 매출 26.5% 증가, 매출총이익률 88%대. 여기까지도 놀라운데 더욱 인상적인 수치는 월간 해약률 0.53%입니다. SaaS 업계에서 1% 미만이면 우수 기준인데, Sansan은 그 절반 수준입니다. 한 번 도입한 기업이 거의 떠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명함으로 쌓은 회사 데이터는 청구서 관리 Bill One으로, 계약서 관리 Contract One으로 확장되며, Sansan은 일본 B2B 비즈니스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Sansan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 마케팅 전략

창업 초기 Sansan의 가장 어려운 마케팅 과제는 시장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명함을 회사가 함께 관리한다'는 개념을 세상에 납득시켜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CEO가 직접 하루 8건의 미팅을 잡고 명함 스캐너를 들고 영업을 다녔다고 합니다.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명함은 개인이 보관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굳어 있었고, 회사 자산으로 공유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전환점은 2012년, 개인용 무료 앱 Eight의 출시였습니다. 법인 서비스만으로는 접점이 제한적이었던 Sansan이 일반 직장인에게 직접 닿는 채널을 만든 것입니다. 카페 체인 '루노아르' 매장에 스캐너를 설치해 체험 기회를 만들고, 대량 명함 스캔 대행과 연계해 미디어 노출로 이어졌습니다. 무료 체험이 법인 도입의 씨앗이 됐습니다.

https://youtu.be/ZkLqWeky5mI?si=V6ShKcBCwL3uDPMx

그리고 2013년, B2B 기업으로서는 당시 드물었던 TV 광고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마츠시게 유타카가 출연했습니다. 이후 영업 미팅에서 상대방 결재자가 "광고 재밌게 봤어요"라고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TV 광고가 B2B 영업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 것입니다. 이후 Bill One, Contract One에서도 같은 전략을 반복했고, 'Sansan이 만든 서비스'라는 신뢰가 빠른 시장 진입을 도왔습니다.

참고로 2017년에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저는 당시 사수의 추천으로 입사 후 바로 Eight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시절엔 집에 TV가 없어서 일본 광고를 볼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리멤버 — 명함 앱에서 채용 플랫폼으로

리멤버(드라마앤컴퍼니)는 2014년 출시됐습니다. 아이디어는 단순했습니다. 명함을 찍으면 사람이 직접 입력해준다.

당시 시장에는 OCR(광학 문자 인식) 기술을 쓰는 명함 앱들이 이미 있었습니다. 문제는 정확도였습니다. 한자, 특수 서체, 영문과 한글이 섞인 명함에서 오류율은 높았습니다. 리멤버는 기술이 아닌 사람으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타이피스트를 고용해 직접 입력했고, 정확도는 99%를 넘었습니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2014년에 사람이 손으로 입력을?' 하지만 써본 사람들은 다시 다른 앱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출시 2개월 만에 시드 투자 10억 원, 출시 1년이 채 안 돼 누적 처리 명함 600만 장. 매달 평균 35% 이상 이용자가 늘었습니다. 리멤버의 마케팅은 광고가 아닌 입소문이었습니다. 대량 명함 스캔 대행, 박스를 직접 보내고 방문 수거까지 하는 서비스 — '이 정도까지 해준다고?'라는 놀라움이 퍼졌습니다. 네이버 메인 '금주의 앱'에 선정되며 하루 가입자 2,500명이 몰리는 폭발적 성장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쌓인 450만 직장인 데이터는 2019년, 전혀 다른 사업으로 연결됐습니다. 경력직 스카웃 서비스의 시작이었습니다. 명함으로 확보한 '지금 어디서 일하는 누구'라는 정보가 채용 시장의 핵심 데이터였습니다.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상위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하루 1만 건의 스카웃 제안이 오가는 플랫폼이 됐습니다. 현재 매출의 70% 이상이 채용 솔루션에서 발생합니다. 2024년 연매출 5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일본의 명함: 회사를 대표하는 의식(儀式)

일본에서 명함은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의 증명입니다. 명함 없이 비즈니스 미팅에 나타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납니다. 명함 교환은 두 회사가 공식적으로 관계를 시작하는 의식입니다. Sansan은 이 인식을 파고들었습니다. '명함은 회사의 자산이며, 동료의 인맥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법인을 설득했습니다. 고객은 법인이고, 수익은 월정액 구독에서 나왔습니다. 해약률 0.53%는 이 구조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한국의 명함: 개인을 표현하는 수단

한국에서 명함은 '이 사람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나타냅니다. 일본보다 이직이 잦고 커리어가 개인 자산인 한국에서, 명함의 주인공은 회사가 아닌 사람입니다. 리멤버는 이 개인 데이터의 가치를 일찍 알아챘습니다. 450만 직장인의 직함, 회사, 커리어 변화를 쌓은 뒤 채용 시장에 연결했습니다.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상위 인재들의 데이터를 기업에 제공하는 구조는 한국의 이직 문화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모델입니다.

Sansan은 '회사 데이터 플랫폼', 리멤버는 '사람 데이터 플랫폼'이 됐습니다. 문화의 차이가 만든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입니다.


3가지 교훈

1. 제품이 아닌, '그 제품이 해결하는 문화적 맥락'을 먼저 이해하세요.

리멤버와 Sansan은 같은 명함 앱이지만, 완전히 다른 문화적 맥락 위에서 성장했습니다. 일본 시장에 진출할 때 '우리 제품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해결하는 문제가 어떤 문화적 의미를 가지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2. 일본 B2B 시장은 법인 단위로 접근할 때 강력한 해자가 생깁니다.

Sansan의 해약률 0.53%는 단순한 수치가 아닙니다. 일본 법인은 한 번 도입한 시스템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관계 중심, 품질 중심의 의사결정 문화 때문입니다. 초기 도입이 어렵지만, 한 번 자리잡으면 이탈률이 극도로 낮습니다.


3. 인지도 확보 전략은 시장마다 다릅니다.

리멤버는 '이 정도까지 해준다고?'라는 놀라움으로 입소문을 만들었고, Sansan은 TV CM으로 B2B 결재자의 신뢰를 쌓았습니다. 한국에서 통했던 마케팅 전략이 일본 법인 영업에서 그대로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누구를 설득할 것인지, 그들이 신뢰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리멤버는 일본에서 통할 수 있을까요?

Sansan이 84.1%를 점령한 시장에 리멤버가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식 '사람 중심' 모델로 일본에 진출한 리멤버의 일본 진출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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