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 평균 연령 만23.8세, 지금 가장 “Z세대”다운 패션 회사
한창 “빈티지 패션”에 빠져있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시모키타자와나 코엔지의 빈티지샵들을 돌아다녔어요. 최신의 트렌드와는 약간 다른, 나의 마음에 쏙 드는 ’보물‘을 찾아내는 느낌이 좋았어요. 물론 일본에서는 늘 어느정도 ”빈티지 패션“을 좋아하는 층이 있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았던 것도 있구요. 당시 인스타그램에서 ”古着女子“이라는 계정을 자주 챙겨봤습니다.
얼굴 노출 없이, 오직 빈티지 옷들을 활용한 코디만 올리는 계정 - 어떤 “개인”이 아닌 “古着”가 중심에 있어서 더 좋았어요.
그 “인스타그램” 계정이 일본 패션 업계 사상 최단·최연소로 도쿄증권거래소 (그로스 시장)에 상장하기까지는 7년이면 충분했습니다.
창업자 카타이시 타카노리는 1993년생입니다. 메이지대학 졸업 후 모바일 게임 스타트업 아카츠키에 입사해, 신규사업부에서 인플루언서 에이전트 사업 등을 담당했다고 하네요. 그 과정에서 여러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인적으로 운영하며 팔로워 성장을 실험했는데, 그 중 성장세가 가장 좋았던 것이 「古着女子」였습니다.
계정의 전략은 단순하지만 명확했습니다. 얼굴을 일절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세계관에 가까운 인플루언서를 공식 앰배서더로 인정하며, 유입을 높이기 위해 ‘후루죠(フルジョ)’ 해시태그 활용.
계정이 어느정도 성장하자 이커머스 사이트를 오픈했습니다. 첫 14벌은 오픈 당일 완판. 다음 주에도 시작 5분 만에 완판. 세계관을 공유했더니, 사람들이 알아서 사러 왔던거죠.
2018년 6월과 8월, 에우레카 창업자 아카사카 유씨, 프리크아웃 홀딩스 사장 사토 유스케씨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 이후 CAMPFIRE 창업자가 이끄는 VC에서도 투자를 받으며 주식회사Yutori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아닌 패션 회사로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습니다. 주요 투자자들이 모두 패션 업계가 아닌 IT 업계라는 것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빈티지 패션은 본질적으로 큐레이션 비즈니스입니다. 좋은 물건을 골라내는 눈이 상품 그 자체조. 하지만 스케일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커뮤니티를 아무리 키워도, 팔 수 있는 물건의 양에 한계가 생기죠.
자체 브랜드는 기획, 생산, 판매를 직접 통제하기 때문에 재현이 가능하고, 마진 구조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렇기에 Yutori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존 패션 업계의 성공 방식을 답습하진 않았습니다.
일본 패션 업계의 성공 공식은 20~30억 엔 규모의 브랜드를 만들어 전국에 매장을 만들어 100억 엔 규모로 키우는 방식이었습니다. 하나의 브랜드를 거대하게 키우는 수직적 성장 모델.
yutori는 SNS를 통해 젊은이들이 스스로 트렌드를 만드는 시대에는, 그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큰 트렌드보다 세분화된 니치 무브먼트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컴팩트하게 여러 브랜드를 동시에 운영하는 전략이 더 적합하다고 봤죠.
첫 번째 브랜드는 「9090」이었습니다. 90년대 문화를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그 옷을 입다 보면 음악이나 패션 등 90년대 문화에 자연스럽게 깊어지게 되는 브랜드.
9090에 이어 genzai, centimeter, My Sugar Babe를 잇달아 론칭했습니다. 각각 세계관이 다르고, 각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독립적인 팔로워 커뮤니티를 만들어갔습니다. 하나의 기업 안에 여러 개의 독립된 브랜드 우주가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브랜드 관리도 철저히 데이터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를 월간 매출 금액에 따라 5단계로 나눠 관리하고, 론칭 후 1년 이내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한 브랜드는 원칙적으로 철수합니다. SNS를 활용하여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감(센스)“에 의지하는 업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Yutori는 철저하게 숫자로 검증하며 경영하고 있습니다.
브랜드를 만들 때 지키는 철학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해외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는 것입니다. 시작이 빈티지였기 때문에, 지금의 트렌드와 한 시절 전의 트렌드를 맞대어 보고, 시대적 배경과 아이템에서 겹치는 지점을 파생시키는 방식으로 상품을 기획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古着女子 계정은 운영되지 않지만, 계정을 운영하며 알게 된 일본 젊은 세대의 소비 감각은 자체 브랜드들에 고스란히 이식된 것입니다.
창업 3년차인 2020년, Yutori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납니다. 2020년 7월, ZOZO가 yutori 주식의 51%를 취득하며 자회사로 편입된 것입니다. 생산 협업과 재고관리 시스템 연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본업무제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딜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요? 양사는 처음부터 “언젠가 상장을 목표로 한다”는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었고, 창업자의 경영 자유도를 남기는 형태로 자본제휴가 설계됐습니다. ZOZO의 물류 인프라, 시스템, 그리고 ZOZOTOWN이라는 유통 채널을 등에 업고 yutori는 브랜드 확장을 가속했습니다. 2022년에는 이미 18개 브랜드를 운영하고, SNS 총 팔로워 약 260만 명, 연매출 30억 엔을 목표로 성장했습니다. 같은 해 전 직원이 Z세대 인플루언서인 A.Z.R사도 그룹에 편입했습니다.
우상향 곡선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습니다.
2023년 12월, yutori는 도쿄증권거래소 그로스 시장에 상장합니다. 패션 기업 사상 최단·최연소 상장 기록을 갱신했구요. 창업자는 상장 당시 만30세였습니다.
상장 후 yutori가 선택한 다음 한 수는 뷰티였습니다.
minum(ミニュム) — “令和(레이와)의 プチプラ(푸치프라) 코스메”
2024년 3월, yutori가 프로듀스한 미니사이즈 코스메 브랜드 minum이 출시되었습니다. 전 상품이 손바닥 크기의 미니 사이즈이며, 대부분 500엔 전후의 가격대. 아이섀도, 립, 파운데이션 등 풀 라인업을 갖췄습니다.
일본에서는 저렴한 가격대의 화장품들을 “푸치프라 코스메”라는 카테고리로 부릅니다. minum가 노리는 것도 이 카테고리이구요. (많은 한국 화장품들도 해당 카테고리로 여겨집니다.) 헤이세이 (1989년~2019년)가 아닌 레이와(2019년~현재)를 대표하는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Z세대의 소비 심리를 정밀하게 읽은 포지셔닝이기도 합니다. yutori 마케팅 프로듀서 하마다 시오리는 “리즈너블한 가격이 가치인 건 헤이세이 시대부터 변하지 않았지만, 정보 리터러시가 높고 실패를 피하고 싶은 신중한 Z세대에게는 ‘레귤러 사이즈인데 왜 이렇게 싸지? 품질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미니 사이즈’입니다. 합리적 가격의 이유를 사이즈로 설명하고, 품질 의심을 차단했습니다.
Her lip to — 타깃을 넓히다
같은 해 8월에는 다른 방향의 베팅도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 AKB48의 전성기시절 인기 멤버였던 코지마 하루나가 대표인 heart relation을 약 17억 엔에 자회사화 한 것입니다. 패션 브랜드 Her lip to, 뷰티 브랜드 Her lip to BEAUTY, 란제리 브랜드 ROSIER by Her lip to를 한꺼번에 그룹 안으로 가져왔습니다.
yutori의 주력인 스트리트 남성복과, Her lip to의 페미닌 여성 패션·뷰티는 세계관이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이 인수가 논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방법론이 같기 때문입니다. SNS로 팬덤을 먼저 만들고, 그 신뢰를 상품으로 전환하는 것. Her lip to 역시 코지마 하루나의 인스타그램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한 브랜드입니다.
yutori의 미래는?
yutori는 단순히 “SNS를 잘 활용한 패션 스타트업”일까요? yutori는 상품을 팔기 위해 SNS를 쓰는 게 아니라, SNS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았고, 상품은 자연스럽게 팔렸습니다. 일본 패션 업계의 전통적인 문법 - 브랜드가 먼저 세계관을 선언하고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방식-과는 정 반대였고, 그게 통했습니다.
최근에는 GRVR, SATUR, MARITHÉ + FRANCOIS GIRBAUD 같은 한국 브랜드의 일본 판매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창업 7년, SNS 총 팔로워 260만 명이상, 40개 브랜드 운영. 그리고 미션은 “아시아 최대의 스트리트 컴퍼니.”
이 젊은 회사의 끝은 어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