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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맠크나 Sep 25. 2022

보이는 울타리와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울타리 안에서

23살 경기도 파주, 전역을 앞둔 육군 병장의 겨울밤 일기

울타리를 느껴야 진정으로 자유를 생각할 수 있다

<출처: Unsplash>

오롯이 대한민국 군대에서 한 해를 보낸 2012년, 나의 스물셋은 이렇게 지나간다. 스물넷이라는 다가올 새로운 나이가 어색하고, 아직 멀게 느껴지는 것은 보편적인 세상과 분리되어 정체된 한 해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같은 군복을 입고, 1km 반경도 안 되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고, 만나는 사람은 많게 잡아도 100명 정도인 군 생활은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눈으로 보이는 울타리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울타리의 구속 속에서 나를 삼키고 맴돌았다.


그래도 돌이켜보니 나는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조금 자란 것 같다. 스무 살 재수생 시절에 쓰던 일기장을 부대로 가져와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지난 일기를 읽으며 과거의 나를 조우했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너의 그 어린 패기는 어디 갔는가', '너의 그 절실함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너의 그 진지한 고민들은 어디로 떠났는가'라며 호되게 혼내곤 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며 반성하고 있다. 물론 이등병과 일병 힘든 시기가 지나 몸이 편해지자 사유의 톱니바퀴에 다시 나태와 기만이라는 녹이 슬기도 했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일기를 쓰며 다시 반성하고 있는 것이 나의 기름칠이고 나사 조임이다.


때론 일기장에 일 년 뒤 그리고 오 년 뒤까지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적어보기도 했다. 과연 장래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사유와 고독을 멀리했던 나의 입대 전 대학 생활을 보상할 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반성하게 했다.


철학자 강신주는 세상의 제약과 한계, 즉 울타리를 느껴야 진정으로 자유를 생각하고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느리게 시간이 흘러가는 군대라는 울타리는 상상과 계획을 적어나가기엔 최적이었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아본다거나, 현명한 멘토에게 좋은 조언을 구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참 많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갑자기 지난 일 년이 무언가 큰 터닝포인트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대로 전역을 맞이해도 되는 것일까

이제 군생활이 진짜로 100일이 남았다..! 이렇게 남은 날짜에 민감했던 것은 수능 이후로 처음이다. 오기 싫은 날짜와 갈망하는 날짜라는 중대한 차이가 있지만, 막상 100일 남은 지금은 마음이 비슷해지는 것 같다.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해진 억압의 울타리가 사라지는 날을 상상하면, 아직 부족한 내가 이대로 그날을 맞이해도 될지 복잡한 생각이 든다. 흡사 멋모른 채 방생당하는 동물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바깥세상의 공기 같은 자유를 너무나 갈구해왔으면서도, 동시에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불안하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부자유와 관습이라는 올가미에 기형화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자유로운 세상이 펼쳐질 그날이 어쩌면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입시에 억압되어 괴물 같던 나의 스무 살과 대학생활 자유 속에서 방종하던 나의 스물한 살 중 무엇이 더 아름다웠는지 모르겠다. 불안, 불만, 억압의 압력으로 만들어진 기형체가 보석 같고, 자유의 시절이 먼지처럼 가벼울 때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기형의 날카로움이 안쓰러운 적도 있고, 먼지에 빛을 비추어 만들어내는 무지개가 눈부시게 아름다울 적도 있었다.


어찌 됐든 나는 이제 스물넷, 20대 중반이 된다. 이제 거울 속에서 앳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수염 두꺼운 아저씨가 되어간다. 앞으로 내 얼굴은 쇠퇴의 수십 년만이 남아있다. 외모가 꼭 젊음과 동일어는 아니지만, 유사어는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프다. 


그래도 전역하는 내년은 대학에 입학하던 2010년만큼 변화의 큰 분기점이 생기는 해다. 이번에는 자유로우면서도 성실히 살아가는 한 해를 만들어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졸리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써야지.


밤샘 당직 근무를 서는 밤은 나에게 일기를 쓰는 밤이었다. 자정 즈음 함께 당직을 서는 간부들과 라면을 끓여 먹고, 새벽 2시가 넘어 모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깊은 밤. 나는 조용히 일기장을 꺼내어 글을 쓰곤 했다. 오랜만에 꺼내어 본 일기장 덕분에 지금도 그 밤들이 아늑하게 떠오른다.

재수생, 군인, 취업준비생 시절은 마음속에 대학, 전역, 취업이라는 묵직한 돌을 품고 울타리를 바라보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고통스러웠던 불안과 억압의 시간은 인생의 보석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반면에 대학생, 직장인, 유학생 시절은 소중한 자유를 움켜쥐고도, 항상 손가락 사이로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다. 돌이켜보면 왜 더 소중히 그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인생은 고통스럽게 성장하는 시간과 자유롭지만 후회가 남는 시간이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반복되었다. 23살 일기장 마지막 바램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후회 없는 한 해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 20대로 돌아가게 해 준다고 해도 지금은 별 욕심이 들지 않는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방종하던 시간들이 뒤섞여 켜켜이 시간을 쌓아왔기에, 돌아갈 어느 한순간을 고른다는 것이 덧없게 느껴질 뿐이다. 마치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 것처럼.

그래도 나에겐 고통은 성장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과 자유의 시간은 유한하다는 경험이 생겼기에, 이제는 인생의 한 순간보다 찬찬히 삶의 누계를 따져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때때로 너무 도고통스러운 생의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곤 했다. 

결국 오늘의 내가 어제 보다 덜 흔들리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지나간 모든 시절의 '나' 덕분이다. 그래서 지나간 모든 20대 시절의 나에게 고맙다. 길고 지난한 삶의 여정을 함께 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함께 해줄 것이란 믿음으로 고맙다. 

그러니 기쁜 하루도, 고통스러운 하루도 어떻게든 살아내보자. 오늘도 함께 걸어 나갈 또 다른 동행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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