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으로 치면 50만 원
2024.08.22
파나마 라 에스메랄다 20주 옥션 커핑에 갔다 왔다.
가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수 주 전까지만 해도 직장이 없는 은둔형 외톨이 입장에서는 먼 걸음이긴 하다. 그럼에도 수고를 들여서 갈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이런 비싼 커피들을 한 자리에서 마셔볼 기회는 손꼽을 정도로 적으니까.
우선 '커핑'과 '스페셜티 커피' 그리고 '에스메랄다' 농장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야겠다.
스페셜티 커피는 재배, 수확, 가공, 그리고 로스팅까지 모든 과정에서 높은 품질 기준을 충족하는 커피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스페셜티 커피는 세계적인 커피 협회에서 제공하는 기준에 따라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은 커피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커피는 특별한 재배 지역과 기후 조건에서 자라며, 생산 과정에서 품질을 철저히 관리합니다. 그 결과, 스페셜티 커피는 풍부하고 복잡한 향미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스페셜티 커피는 커피 산업에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로, 커피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커핑(Cupping)
커핑은 커피의 맛과 향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준화된 테스트 방법입니다. 이 과정은 커피 애호가와 바리스타뿐만 아니라 로스터와 농부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커핑을 통해 커피의 품질, 맛 프로파일, 균형, 산미, 향미 등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커핑 과정은 일반적으로 여러 샘플의 커피를 동일한 조건 하에 준비한 후, 커피의 아로마를 먼저 평가하고, 뜨거운 물을 붓고 나서 커피가 적절한 온도로 식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스푼으로 커피를 떠서 맛을 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를 통해 커피의 다양한 특성을 체계적으로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어, 블렌딩이나 커피 원두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러 카페에서 '퍼블릭 커핑'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커핑 세션이 있지요.(생두를 구매하는 업게인들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커핑'도 있다.) 무료로 진행하거나 유료로 진행하거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진행하는 사람들 마음이다. 보통은 근처에서 하는 무료 퍼블릭 커핑 위주로 참여하며, 가끔씩 좋은 커피가 있다면 먼 걸음을 한다. 오늘과 같이...
파나마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Hacienda La Esmeralda) 농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농장 중 하나로, 파나마 보케테(Boquete)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농장은 특히 '게이샤(Geisha)' 품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게이샤 품종의 독특한 향미와 고유한 특성으로 인해 여러 국제 커피 대회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농장은 높은 해발 고도와 적절한 기후 조건, 그리고 전통적인 커피 재배 기법을 결합하여 최고 품질의 커피를 생산합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게이샤 커피는 뛰어난 꽃향기, 밝은 산미, 복합적인 향미 프로파일로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이 20주년으로, 에스메랄다 농장 중에서 총 20종의 커피를 꼽아서 경매에 올라왔다. 오늘은 이 20종의 커피를 가공 방식에 따라 두 번의 커핑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워시드 9종, 내추럴 9종)
고급 커피라니 가격이 얼마나 되는데라고 묻는다면 오늘 커피 중에서 가장 싼 커피가 1kg에 600달러를 상회했다. 한국돈으로 80만 원 넘는다. 이 금액의 커피를 카페에서 한 잔으로 마신다면 4만 원이 족히 넘어가는 금액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돈도 안 벌면서 잔에 4만 원 넘는 커피를 마셔보긴 했으니까 알지.
오늘 커핑은 고급 커피가 많다 보니 커핑 참여에만 5만 원이나 받았다. 준비된 샘플 박스 가격이 2~3백만 원은 하는 걸로 들었다. 그걸 고려하면 싸긴 하다. 그래도 지금껏 다녀본 유료 커핑 중에서는 가장 비싸다. (보통의 유료 커핑을 진행하더라도 1~3만 원이다.)
커핑이 진행되는 당일에 옥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세계의 스페셜한 커피를 노리는 카페라면 전부 참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커핑을 진행하신 카페 사장님은 옥션에도 직접 참여하고 계셔서 이를 지켜보는 흥미로운 상황도 연출되었다.
'경매'를 태어나서 처음 지켜보았다. 요즘에는 한도를 정해두고 자동으로 경매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있어서 신기했다.
이름난 카페 사장님들이 많이 있었다. 카페 알바마저 3일 컷 당한 나는 자연 스러 위축되었다. 그렇지만 커피를 평가하기보다는 즐기는 자리에 가까워서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지는 않았다.
오늘 커피 중에서는 무려 1kg에 7532달러에 낙찰된 커피도 있었다. 낙찰은 커핑 종료 후였고, 커핑을 진행하고 있던 당시에는 경매가 진행 중이긴 했지만 이미 그 커피의 가격은 고정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커피에 비딩을 한 업체가 두 팀 있었지만 나가떨어졌다고 들었다.
오늘 커핑은 제가 간 커핑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커피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가장 싼 커피도 잔당 4만 원이기 때문에 맛이 없다면 문제가 있긴하다. 여기서 제일 싼 커피도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모든 커피보다 비싸다.
이런 비싼 컵들 간에도 품질 차이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앞서 말한 7532달러어치 커피는 가격을 떠올리지 않고 블라인드로 마셨더라도, 이 중에서 베스트 컵임을 결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외에 자릿수가 다른 몇 커피들은 블라인드로 마셨다면 평가가 변할 수도 있겠지만 튄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에 선호도 조사를 했을 때에도 이런 커피들이 상위권이었다.
한 커피는 우리나라 취향에 맞는 것인지 가격은 kg당 800달러로 싼(?) 편에 속하는데 선호도에서 많이 표를 받았다. 과일 향미가 다른 커피에 비해 강해서 그런가 싶긴 하지만 구체적인 의견 교환이 있지는 않다 보니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나 빼고 다들 내공이 있으신 분들이라 특별히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 같긴 하다. '나도 알고 너도 알지?'라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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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매를 보고 떠오른 질문 하나
한 잔에 4만 원~50만 원 가까이 되는 커피를 어떻게 팔 수 있디?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를 어떻게 일반 사람들한테 설득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건 단순히 마케팅 전략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커피 문화나 사람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지만. 사회에 나가보며 느끼는 점을 꼽자면. 사실 사람들은 커피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에너지 드링크와 같은 카페인 충전용도 혹은 카페가 주는 분위기 혹은 대화를 즐기기 위하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되었다.
개인 카페가 저가 프랜차이즈나 스타벅스 같은 대형 업체들이랑 똑같은 가격으로 경쟁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 광고를 통한 브랜드 인지도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른 영역, 좀 더 고급스러운 커피를 팔아야 하지 않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 커피를 좋아해서 시작한 것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고 커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것이다.
고급화 전략이 성공하려면 가격 차이를 고객들이 설명을 많이 하지 않고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일반 고객들에게 설명을 한다는 자체로 하나의 수고를 더하는 것이니까. 이게 단순히 맛이 좋다거나 품질이 좋다는 것은 마시면 분명히 느낄 수 있기는 하다. 전혀 모르던 엄마도 내가 전하는 스페셜티 커피를 전달하였을 때 맛의 차이는 분명히 느끼니까. 입문시킨 친구도 그들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좋은 커피를 마시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될까.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성공은 단순히 비즈니스 전략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 같다. 이런 고급스러운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솔직히 계속 커피 원가는 오르고 있다. 커핑을 다니면서 올해 확실히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커피 업계를 포함한 자영업이 모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이것이 당면한 과제이다. 해결해야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비싼 가격은 지양하고 싶다. 지금 파나마 게이샤는 해외 스폰서들로 인해서 가격이 올랐다고 들었다. 만약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일반인이 이런 커피를 접한다는건 불가능의 영역에 가까워 질 것이다. 솔직한 입장에서 이런 커피들이 분명 만족감을 주기는 하지만, 수십만원을 더 줄만한 가치냐고 하면 물음표가 띄기는 한다. 차이의 퍼센테이지를 수치화 하기 어렵지만 큰 부분은 '상징성'과 '희소성'에 있지 않을까. 이번 경매에 올라온 파나마 에스메랄다 커피들은 대부분 10kg이고 두 종만 5kg로 소량 판매를 하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커피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고 즐기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음식에 관해서는 맛집을 논하고 느낀 맛에 대한 표현이 적극적이지만, 커피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그런 논의를 크게 들어본 적이 없다. 커피도 다른 음식처럼 감상과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커피가 단순한 카페인 음료가 아니라, 다양한 풍미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복합적인 음료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커피 문화가 더욱 풍성해지고, 많은 이들이 커피의 세계를 더 깊이 탐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