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버스를 한 번은 타야 하는 먼 곳으로 오직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 가니까요. 또 최근에는 거기 계신 바리스타분들과 소통을 많이 해요. 글로 올리진 않았지만, 저번주 수요일에 무려 하루에 세 군데 카페를 다녀오면서 모두 한 시간 이상씩 이야기하는 놀라운 일도 있었지요. 그러다보니 글쓸 정신이 많지는 않죠. 물론 그분들에게는 단순한 업무였겠지만 그런 환대는 은둔형 외톨이 입장에서는 참 따듯하게 느껴진답니다.
오늘은 저도 처음 가보는 카페에 다녀왔어요. 합정, 망원, 연남 부근을 자주 가긴 하지만, 사실 늘 가던 익숙한 카페들 위주로만 다녔거든요.
'홈바리스타클럽'이라는 네이버 커피 관련 대형 카페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달 로스터리들과 협업하여 공동구매 이벤트를 진행해요. 이번 달에는 고양과 합정동에 있는 '클라리멘토'도 협업사로 포함되었어요. 이번 달에 이미 구매하고 선물 받은 원두가 많아서 클라리멘토의 원두 라인업이 끌렸지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후기 이벤트가 마음에 들어서 저렴하게 블렌드만 구매했어요. 이벤트 참여자 전원에게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메리카노 쿠폰이 제공되었고, 후기 이벤트에 잘 작성된 후기를 남긴 사람들을 8월 4주간 매주 5명씩 뽑아서 롱보드 미스틱마운틴 바이오다이내믹 게이샤 20g이 선물로 주어진다고 했어요. 롱보드는 제 브런치에서도 몇 번 언급된 적이 있는 고급 커피로, 카페에서 구
지난주에 원두와 함께 아메리카노 쿠폰 받았어요. 보통은 기한을 넉넉하게 주던데, 여기서 준 쿠폰은 이번달 말까지 더라고요. 이번달 이제 한 주도 안 남았잖아요? 생각났을 때 시간 있을 때 후다닥 다녀와야죠. 올해 봄 집에서 버스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합정 부근에 새롭게 공항 라운지 느낌으로 올봄에 매장을 오픈했어요. 오픈 직후부터 가고 싶었는데, 평소 동선이랑 맞지는 않아서 발길이 쉽게 옮겨지지는 않았어요. 아마 후기 이벤트가 없었다면 몇 달은 더 늦어졌을 거예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버스에서 내린 뒤 걸어가면서 약간 불길함에 쿠폰을 집어넣었던 주머니를 뒤적거렸죠.
비이이이상!
쿠폰을 잃어버렸다.
구매내역 보여주면 서비스해주시겠지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갑자기 발생한 상황을 설명하기 부끄러웠어요. 이미 버스에서 내렸는데 아무 수확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으니 용기를 내야 했죠.
"저기 제가 오는 길에 쿠폰을 잃어버렸는데요..?"
"네??"
원두 구매 내역을 보여주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어요. 제가 예상한 대로 감안을 해주시고 커피를 내려주셨어요.
아침이라 다른 테이블은 모두 비어있었어요. 정작 바리스타님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바 자리는 이미 노트북을 쓰시는 두 분이 앉아서 일을 하고 계셨어요.
바를 제외한 다른 테이블은 낮아서 글을 쓰려면 고개를 거의 직각으로 숙여야 했어요. 손도 무릎보다 낮은 위치에 두어야 했죠. 일단 글을 쓰러 왔으니 아이패드를 꺼내고 키보드와 함께 무릎에 올려놓았지만 지지가 제대로 되지가 않더라고요. 다행히 그분들이 금방 나가셔서 바 자리에 앉았어요.
글을 쓰기에는 낮았던 테이블
가만히 글을 쓰려고 아이패드를 꺼냈는데 바리스타님이 말을 걸어주시더군요. 딱 보면 ‘아 이 사람은 대화를 걸어도 되는구나’ 하는 눈치가 있잖아요. 이 시간에 혼자 오면서 또 원두까지 구매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커피에 관심이 많을 사람임을 바리스타님도 캐치하신 거죠.
제가 바 자리 앉은 이후에 금방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어요. 슬슬 점심시간이 다가오니까요. 아직은 한두 분씩 드문드문 오는 상황이라서 추출 루틴이나 매장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을 이것저것 물어보았어요. 모든 말에 친절하게 답도 해주시고, 제가 어떤 경로로 클라리멘토를 접하고 오게 되셨는지도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솔직하게 근처에 있는데 항상 와야지 마음만 먹다가 후기 이벤트에 혹해서 원두를 구매하고 오게 되었다고 했어요.
먼저 이야기를 나누던 바리스타님은 뒤늦게 들어오신 다른 분과 교대하고 식사하러 가셨어요. 뒤이은 분과도 비슷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사진 찍기 도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외국인이 왔죠. 2022 싱가포르 브루어스 컵 챔피언이었어요.
지난 토요일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에서 한 이벤트로 그분의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영어로 진행하는 그분의 유튜브를 본 적도 있어서 혼자 친숙했죠.
갑자기 또 만나게 되어 어떻게든 말을 걸고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저에게 있어서는 분명 스타이니까요. 또 외국분이시니 기회가 다른 국내 유명인들에 비해서 적기도 하고요.
근데 전직 히키코모리, 극 I성향의 인간인지라. 그분이 들어오시고 거의 30분 동안 아무 말도 못 걸었어요.
저번에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창피했던 기억도 이어졌죠. 혼자 가기는 뭔가 부끄럽더군요.
한국말로 하는 거라면 좀 더 수월했겠으나, 외국인이잖아요.
솔직히 한국말이어도 잘 못하긴 해요. 토요일 커피하우스에서 두 번째로 마주친 인스타 지인을 만났는데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 걸었단 말이죠. 나중에 인스타로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었죠.
계셨던 바리스타분은 잘 모르는 눈치였어요. 외국인이 왔나 보나 하고 넘어가는 눈치였는데 제가 알려드렸죠. 이미 클라리멘토는 여러 커피 챔피언들이 왔다 갔더라고요. 몇 달 전에 처음으로 국제적인 커피행사인 '월드 오브 커피'가 열렸기도 하고, 월드 챔피언 바리스타이신 엄보람(한국인이지만 브라질 국가대표로 출전, 브라질에서 가족 농장 운영 중)님도 다녀가셨어요. 그분은 그동안 챔피언이 다녀가는 동안 직접 사인 받지 못한 걸 후회하셨어요. 그래서 그분은 사인을 받고 저는 사진을 찍으러 같이 가기로 말을 맞췄죠. 정확한 타이밍은 정하지 않은 채로요.
이미 지나간 여러 커피 챔피언들
그분이 커피를 서빙하러 가시길래 뒤따라 갔죠. 서빙 한 뒤에 아무 말이 없어서 물어보니 나중에 나가는 길에 사인 받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분은 일을 하러 돌아가셔야 하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저는 뜬금없이 여기 왔으니까, 지금 기회로 삼아서 말을 걸었죠!
그래서
Can I take your picture?
로 말문을 텄죠.
여전히 단어로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I saw you in 빈브라더스 last satuday. 가 그나마 제대로 된 문장이었죠.
Drip coffee to me, you wrote recipe me.
Do you remember me?
...
소통이 되었다는 것에 의의를 가집시다... 하하. 다행히 기억은 해주셨어요.
처음에 저는 같이 찍을 생각이 없었는데요. 뒤에 계신 다른 분께서 같이 찍는 거냐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냥 같이 남기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찍었지요.
인스타 스토리에는 저를 자르고 올렸습니다. 저의 못생긴 모습을 굳이 사진으로 보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건 제 폰 갤러리 속에 고이 간직하기로
브이만 뺴꼼. 오른쪽이 싱가포르 브루어스컵 챔피언 엘리샤 탄
지금까지 월요일 아침은 혼자서 감상에 젖었지요. 집에만 있었으니까요.
밖에 나오니 여러 가지 에피소드 그리고 사람과 관계를 할 수 있게 되어서 평소와는 또 다른 월요일 아침이었어요.
새로운 바리스타 분들도 알게 되고, 존경하는 바리스타 브루잉 챔피언도 다시 한번 뵐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죠.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요. 하지만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금씩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의 경험처럼 작은 용기를 내다보면, 언젠가는 더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