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내며
바닷가에서 산 폭죽이 나만 불량인 것 같을 때가 있다. 하필 내가 산 과일이 가장 못생긴 것 같고 어떨 때는 돌부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넘어진다. 나는 그럴 때 종종 웃어 넘기는 편이었다. 이사를 하자마자 드럼 세탁기 밖으로 물이 줄줄 새도 '정말 내 인생은 만화 같네' 하며 박장대소를 했고 헬스장에서 실컷 운동해놓고 정작 마트에서 토마토 소스 병을 움켜쥘 악력이 없어 미끄덩, 하고 깨트렸을 때도 껄껄 웃음부터 났다. (물론 직원 분들에게 너무 죄송해서 후다닥 휴지를 가져와 바닥을 벅벅 닦았다.) 그런 내가 이혼을 했다. 그런데 이혼은 도저히 웃음이 안 났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내가 이혼을 인생의 실패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혼자서 밥공기만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데굴데굴 하소연도 했다.
정제된 언어와 담담한 호흡으로 이만큼을 돌아보는 데에는 나름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무수히 많은 단상들 가운데 고르고 골라 여러 번 다듬고 체에 거르고 모서리를 깎았다. 그렇게 남아있는 모양들이 나름 단정하고 올곧은 것 같아 내 기준에 마음에 든다. 사실 현실의 나는 점잖지 않다. "결혼 반지 팔아서 낚시대 하나 사고 술이나 사 먹어야지. 낚시 유튜브나 할까? 채널명은 중년 구독자들을 겨냥한 <어복없는 년> 어때." 그런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면서 달큰하게 소주를 마셔제낀다.
"나 다음달이 결혼기념일이더라? 그 날 뭘 하면서 보내야할지 잘 모르겠어. 우울할까봐 조금 걱정돼."
"누나 결혼했었어?"
열두 살이나 어린 친동생이 세상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위로한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팍 났다. 이혼을 하고 나면 감투 하나가 떡하니 생겨서 머리에 낑낑 이고 다녀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살만 하다. 오히려 겁을 먹고 스스로를 몰아세운 건 나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 모두가 쉬쉬하며 내 눈치를 볼 줄 알았는데, '내가 이혼했다고 얘기 안 했었나?' 싶게 아무렇지 않게 대해 준 나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이혼이 뭐 벼슬이라고 돌싱 대접을 받으려고 했나 모르겠다. 어제 라면 먹은 사람, 오늘 아침 버스 타고 출근한 사람, 여름 휴가로 제주도를 다녀온 사람처럼 나는 그냥 작년에 이혼한 평범한 사람이다. 적어도 스스로를 이렇게 너그럽게 생각하는 유연함을 꾸준히 챙겨가야겠다.
돌싱이라는 단어에 담긴 '떠난 곳'과 '돌아온 곳'은 어디일까. 혼자가 된 사람들을 보고 축하하고 안심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유독 '돌아왔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뭘까 싶었는데, 애초에 우리 모두가 '혼자서' 인생을 출발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결국 안전한 '나'로 돌아왔다. 그 과정을 용감하게 글로 쓰기 시작한 내 자신에게 고맙고, 여기까지 함께 해 준 독자 분들에게도 감사하다.
<잘 쓴 이혼일지>를 발간한 오늘은 이혼하고 처음 맞는 나의 '결혼일'이다.
용감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 내 자신에게 고맙다.
이혼일지, 참 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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