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팀플인데 어쩐지 망했어요

조별과제 무임승차에 대하여

by 이휘


결혼이 일종의 팀플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없는 또다른 장점을 가진 사람과 서로 보완해 가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조별과제. 그런데 그 조별과제가 하필 인생을 걸어야 하는 대단한 과목이었다. 그와 나는 많은 것들이 반대적 성향이었다. 서로 다른 凸과 凹가 만나면 단단한 네모가 될 것만 같았는데 그냥 내 마음에 凸 같은 기분만 남았다.


팀플에는 왜 하필 기여도라는 게 있는 걸까. 내가 아이디어를 냈으니 이 친구가 자료 정도는 찾아주겠지, 내가 PPT를 만드니까 발표 정도는 해 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들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잘 하니까', '답답해서', '도저히 여기까지는 기다릴 수 없어서', '조원이 바쁘니까', 그런 갖가지 이유로 혼자 애를 쓰다 보니 어느덧 이게 개인과제가 되어 있었다. 그냥 내가 다 하고 있네? 그동안 그는 조원 평가 때 최하점을 받지 않을 정도로만 간간히 생색을 냈을 뿐이었다. 나는 나의 청춘을 그렇게 보냈다.


콕 찝어 말하기엔 어렵지만 우리가 서로 생각하는 가정의 테마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희생해야할 것과 존중받아야 할 것들의 가치가 달랐다. 그래서 나는 '런'을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타깝지만 성적표에 길이 길이 남게 됐다. 하지만 이게 낫다. 그 어떤 것도 가운데로 모일 수 없었던 우리 의견 중에 가장 극적인 타결은 이혼이었다.


"너는 나의 30대야. 내 30대는 다 너한테 있어! 내 청춘이 너라고!"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절규를 듣고 웃었다. 나는 내 청춘이 다 그에게 저당잡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가 나에게 자신의 청춘을 투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안됐지만 나도 내 청춘도 오롯이 내꺼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나는 지금의 나와는 완벽히 다른 타인이다. 생각도 감정도 온전히 과거의 나와 같을 수가 없다. 그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고 그래서 가정의 평화에 몰두했던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나는 그렇게 한꺼풀을 벗었다.


아직도 결혼이 팀플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은 있었지만 확신은 부족했던 결혼생활에 채찍질을 가하는 일종의 주문이었을 수도 있다. 사랑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고 그냥 숙제라고 하면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었으니까. 언젠가 또 팀플 타령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서로 기여도를 운운하게 되는 그 어떠한 상황도 없었으면 좋겠다. 물러터져서 조원 평가 같은 건 성격상 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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