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휘 Oct 11. 2024

당신을 평면도로 만들어 접히는 부분마다 점선을 그었다


당신을 평면도로 만들어 접히는 부분마다 점선을 그었더니

초보자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구겨지는 게 싫어서 점선 부분을 모두 잘랐더니 다시는 이어붙일 수 없게 됐다 

아쉬운 대로 정사각형 모양으로 잘게 잘라 어떤 것은 종이배 모양으로 또 어떤 것은 학 모양으로 접었다 

당신은 말랑하고 흐물거려 좀처럼 잘 접히지 않았다 

햇볕에 말리면 굳을까 싶어 베란다에 두었더니 까맣게 탔다 

잘못 접은 자국에는 연고를 발라주었다 

우리 사이에는 금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당신이 가진 건 연약한 손금뿐이었다 

손금은 점선도 실선도 아닌데 잘만 접힌다 

당신을 뒤집어 양면의 색이 다른지 확인한다 

살색의 뒷면에는 고동색이 있고 검은색의 뒷면에는 분홍색이 있다 

끝과 끝을 맞대어 보니 당신은 모두 다른 색이다 

어느 부분도 대칭인 곳은 없다 

당신은 나풀나풀 바닥에 추락한다 

나는 손톱이 짧아 당신을 주울 수 없다 

어렴풋한 목소리


가위는 들지 말아줘 

이미 몇 번이고 잘랐잖아 

구멍만은 내지 말아줘 

부탁이 너무 많네 


빗금을 친 부분끼리 접착제를 발라 마주하도록 붙이면 당신은 다시 입체가 된다 

당신은 늘어진 반죽처럼 힘이 없다 

다시 새로운 당신을 꺼낸다 면과 선이 있는지 흰색의 뒷면은 노란색인지 살색의 뒷면에는 고동색이 있는지 살핀다 깨끗한 당신 깨끗한 나 깨끗한 손 깨끗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공예

이번엔 망치지 말아야지 

나는 당신의 모서리를 찾아 나선다 




작가의 이전글 개미를 밟을 수는 없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