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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쿠나 Dec 10. 2023

변경을 읽고,
'스토리'가 '히스토리'로

책을 읽다

1999년 여름을 기억한다.  

우연히 잡은 ‘태백산맥’은 40일 남짓의 방학 내내 나의 벗이었다.

이념이나 사상은 생소해서 처음 몇 권은 다소 어려웠지만, 

마지막 권을 덮을 때는 이제는 더 읽을 것이 없다는 게 못내 아쉬울 지경이었다. 


그 이후로도 많다고는 못해도 여러 글을 접했다. 

허나 그에 준하는 즐거움과 감동의 경험은 없었다. 

다독하지 않아서도 있겠지만, 처음이 주는 즐거움이 그렇게 강한 것이리라.

첫사랑이 아스라한 것처럼.


그러나 매번 궁금했다. 동시에 희망을 갖기도 했다. 

필경 있을 것이란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

얼마 전 오랫동안 미뤄둔 장편소설 한 권을 잡았다.

이문열의 '변경'이다. 


공교롭게도 이문열 역시 조정래처럼 80년대 대중에게 가장 사랑 받은, 

동시에 가장 역동적인 집필을 하던 작가였다. 

허나 그간 읽은 그의 장편은 크게 내 정서를 두드리지 못했다.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등 그의 대표작은 세상이 왜 그리 감탄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내 취향은 아니었다. 


삼국지와 수호지 평역은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었고, 

시대와 인물을 바라보고 판별하는 그의 시선과 혜안에 탄복했지만 

어디까지나 평역이었기에 온전한 이문열만의 글이라고 보고 싶지 않았다. 

쉽사리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좁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문열이란 이름은 내게 더 높은 기대의 반열에 있었다.

그의 단편은 비교할 것 없이 뛰어나지만, 

장편의 긴 호흡을 더 높이 사고 싶은 것은 비단 나만의 고집은 아니리라.


그리고 만난 ‘변경’. 

주변의 경계를 의미하는 제목과 내 심경은 비슷했다. 

어쩌면 이문열에 대한 마지막 기대의 경계에서 

1999년 스포츠머리의 고등학생이 느꼈던 즐거움에 필적한 독서의 쾌락을 느꼈다. 

하여 그에 대한 짤막한 기록을 남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지금으로부터 반세기도 더 전의 이야기이다.

전쟁 직후, 아니 광복 직후부터 이어온 당시의 국내 정치, 사회 환경은 그야말로 혼란의 극단이었다. 

좌와 우의 대립, 지독한 배곯음은 사회곳곳에서 갈등과 비통의 애화(哀話)를 쏟아냈다. 

사상적 토양이랄 것이 미처 자리잡지 못했던 시대, 이념의 무늬와 이상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서로 다른 세력과 무리간의 대치는 사회 내부에 큰 소용돌이를 잉태한다. 


갈등의 정점이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었다면, 

그 이후에 일어난 갈등은 핵폭탄 이후의 낙진과도 같은 것이었다.

서로간의 투쟁은 변증의 논리로 정리되어 앞으로 발진하고 도약하기보다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쓸어 없애는 방향으로 한동안 전개되었다. 

우리 현대사는 그 시간의 숲 속에서 그야말로 들끓었다.

이 대륙과 저 대륙이 서로 극명하게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세계 정세에서, 

우리는 두 대륙 어디에서도 끝자락 경계에 있던 동방의 약소국이었다. 

그 변경의 자리에서 자민족끼리마저 치고 받으며 크고 작은 내상을 치러야 했던 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소설은 전술했던 들끓는 시간의 숲 속에서, 

아비는 북으로 넘어가고 남겨진 어미와 사남매의 삶을, 

남매가 각각 화자가 되어 순차적으로 외치듯 전달한다. 

참으로 안쓰럽게도 숲 속에서는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슬픈, 그저 온통 아픈 애화가 숲을 가득 채우고 있다. 


명훈과 영희, 그리고 철이와 옥경, 이 사남매의 구슬프고 처절한 스토리를 읽어내리다 보면 

어느덧 두 세대 전의 우리네 선배들의 히스토리를 묵묵히 상상하게 된다. 


소설이 잠시 독자에게 열어놓은 그 시절 시간의 숲의 입구는 과거지만, 

독자가 출구로 나와 마주하게 되는 시간의 숲은 지금 현재이다. 

아이러니한 건 모든 것이 넘쳐나는 지금 이 숲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빈곤을 느낀다는 것.


‘변경’의 스토리는 60년전 모든 것이 빈곤했던 그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게 되는 찰나의 시간들을 알려준다. 

변경이 증언한 희망의 스토리는, 

마치 봄에 뿌려진 씨앗이 딱딱하게 언 대지를 뚫고 들어가 새 생명을 움트고 끝내 일으켜 세우듯, 

사방 온통 슬픔 속에서도 희망의 꽃씨가 기어코 피어낸 우리의 히스토리이기도 하다.  



흔히 이 소설을 이문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말한다. 

작가의 젊은 날, 그를 혼돈에 빠지게 했던 고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우리가 오늘날 느끼는 정서적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다시 겨울이 왔다. 

며칠 전에는 예년과 달리 따스한 이상 고온의 겨울 때문에 

개구리들이 때 이른 기상을 했다는 웃지 못할 뉴스도 만났다. 


하지만 알고 있다. 

개구리가 잠깐 놀라고 마는 가짜 봄이 아닌 진짜 봄이 불과 몇 달 후면 우리에게 올 것이다.

독서의 쾌락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빈곤을 우리는 필히 풀 수 있으리라.

우리 시대의 스토리가 다음세대에게 희망의 히스토리로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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