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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쿠나 Jul 14. 2024

오디오클립과 유튜브 마무리하며

영화발골채널 호우시절, 막을 내리다

생각지 못한 시작이었다.

연애 프로그램 보고 과몰입하는 통에 시작했던 두 남정네의 수다는 그저 농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마이클 조던의 다큐 해설로 옮겨갔다. 생각보다 녹음 그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본격적으로 우리의 채널을 파기로 했다. 그렇게 삶의 파문이 일었다.


기실 농구를 좋아한다고 해도 일반적 기준에서 경기나 챙겨보는 정도일 뿐 설명을 붙일 수 있는 수준은 못되었다. 그럼에도 신기한 녹음실의 장비와  그것들을 사용해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설렜다.

그 설렘에 이끌려 시작한 호우시절은 지난 4년간 나의 취미이자 동시에 삶의 거의 최우선 순위로 함께 했다.

친한 지인들께, 그리고 일부 격려와 발전적 비판이 기대되는 분들께는 내 새로운 활동을 공개하기도 했지만 대대적으로 알릴 용기는 없었다.

감춘 것도 아니고 드러낸 것도 아닌 채 계속 녹음을 이어오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4년 전, 내 삶은 꽤나 힘겨웠다.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해야 할 도리를 했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열렬한 칭찬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정은 적고, 오히려 입은 피해는 너무 컸다. 내 역할에 따른 행동에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서운했던 것은 사실이다. 야속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누구에게든 내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다.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저는 제법 괜찮은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려고 했다는 것은 부끄럽고 민망하고 좀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내 속에 있는 본질적 욕망이었음을 부인할 마음은 없다.


그런 마음으로 군 동기인 원우 씨와 함께 한 '호우시절'이라는 방송은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오디오프로그램으로, 일종의 팟캐스트였다.

콘셉트는 90년대 2000년대를 수놓은 명화들을 리뷰하는 것이었는데, 방송을 듣는 분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한 번쯤 그 영화들을 볼 마음이 동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2-30년 전의 영화들을 소개하다 보면 지금의 사람들에게 한 세대 앞의 시간들을 들려주고 나아가 이쪽의 사람들과 저쪽의 사람들을 연결시킬 수 있으리라는 나름의 포부도 있었다.

또 하나, 두 남자가 재미있게 이야기한다면 좀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세속적 욕망도 물론 있었다.

길게 썼지만 내게는 대나무 숲이 필요했고, 더불어 인정욕구가 작동한 것이 호우시절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내가 기대했던 바다.


그렇게 시작한 두 남자의 수다는 햇수로는 5년, 정확히 헤아려도 4년에 육박하는 시간 동안 이어졌다. 우리 두 사람은 매주 2회의 업로드를 철칙처럼 지켜왔다. 한 번도 빠짐없이 업로드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제법 성실했던 것 같지만, 글쎄…… 그것이 성실이었는지 강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때때로 위기가 있었지만 편집 시에 녹음을 쪼개면 그리 어려운 것만도 아니어서 주 2회 업로드를 아주 대단한 기록인 것 마냥 자랑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대단한 미덕까지는 아니어도 그만큼 마음을 내어 주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호우시절을 하게 된 개인적 동기이자 목적 중에 하나인 대나무 숲으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른바 씨네필은커녕,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던 편도 아닌데 어느 틈에 한편 한편 연구하듯 보게 됐다.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장면들에 대해서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물론 이것은 대단한 역량이 요구되는 일은 아니다. 그냥 보고 또 보고, 계속해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시간을 들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주로 했다. 그 이야기들은 영화에 대한 내용이기도 했지만 나의 세계관, 나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음 현장에서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선별하는 것부터 해석하는 것까지…

전문적이거나 수준 높은 식견은 아닐지라도 나만의 시선으로 4년여의 시간 동안 주 2회씩 꼬박꼬박 이야기보따리를 푼 것만으로도 원 없이 대나무숲에 외친 것이리라.


호우시절을 진행하면서 영화의 뼈와 살을 샅샅이 발라주겠다며 ‘발골’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영화를 발골하겠다며 덤비다 보니 어느덧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발골할 수 있게 된 면은 예기치 못한 수확이었다.

사실 호우시절을 통해 세속이 규정하는 성공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에 냉정한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었다.


4년을 떠들면서 받아 든 성적표,  오디오클립과 유튜브의 조회수나 구독자는 기대와 달리 무척 적었다.  어떤 이들은 불과 하루 이틀이면 달성할 구독자나 조회수 등의 관심 지표를 우리는 받아보지 못했다.

이미 언급했지만, 내용이든 방법이든 오랜 시간 전략을 고민하지 않은 채 조금 과장하면 업로드만 한 것이 실패의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성실함으로 이름 붙였으나 어쩌면 개선에 대한 게으름마저 성실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서 얻은 것이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화다. 어릴 적부터 나는 특출 나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단한 매력을 뿜어낸 기억은 삶을 통틀어서 생각해 보아도 별로 없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의 눈에 띄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어", "이야기는 좀 쉽게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등 막연한 낙관을 하기도 했는데, 지난 4년을 보내며 나의 근거 없는 낙관이 처절히 깨졌다.

이러한 인식, 거창하게 말하면 깨달음은 호우시절이 내게 남긴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다. 덕분에 나의 실력을 깨달으며 나를 사랑하기 위한 지도를 갖게 됐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물론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하나는 자기효능감이라 부르는 개념인데, 이는 스스로 괜찮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내가 어딘가에 쓸모 있다는 인식, 유의미한 역할을 하는 역량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자기를 인정하는데 아주 필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자기 수용이다. 결과나 평가와 상관없이 나 자신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것도 전자만큼이나, 때로 어떤 순간에서는 전자보다 더 소중한 개념이다.

자기효능감은 남들 혹은 타인에게 이르지 않을지언정 최소한 스스로는 자신의 특별함이나 고유성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자기 수용은, 특별함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자기 수용을 기반으로 자기효능감을 쌓아나간다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특별한 삶을 구성하는 매일이 반드시 특별하지는 않다. 때로 삶이 무척 지치거나 관성의 날들이 계속되다 보면 하루하루가 하찮고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특별함과 무관하게 그날들은 어느 하루 남김없이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어느 하나, 어느 하루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음은 자기 수용을 통해서 환기될 수 있다.


호우시절의 궤적은 수백만, 수천만, 아니 헤아릴 수 없는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하찮을 뿐인 무늬를 그렸다. 그러나 지난 4년을 통해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해 나갔다. 그 소중한 기억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었고, 그 작은 날들이 모여서 조금 더 특별한 나를 꿈꾸게도 만든다. 비록 유려하지 않아도, 적확하거나 기발한 어휘를 사용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녹음과 방송을 하는 동안 주변 분들의 도움이 제법 많았다.

그분들을 여기서 일일이 소환하는 것은 오히려 결례가 될 수도 있어서 가만히 마음으로 헤아려본다.

멋진 썸네일을 그려주신 여러 작가님들, 방송의 모든 음악을 만들어주신 음악감독님, 그리고 우리의 비루한 녹음 현장에 함께 해주신 친애하는 지인이자 게스트분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지난 4년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새로운 취미를 안내해 주고 기다려준 파트너, 원우씨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지루하고 산만한 방송을 벗 삼아 즐겨주신 구독자분들, 청취자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다.


그리고... 여러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가올 내일이 찬란한 호우시절이 되길 응원한다.




작가 '원우씨'와 함께 호우시절이라는 채널로 그 시절 반짝거렸던 때를 추억하며

영화를 리뷰하고 있는 조쿠나입니다.

2020년 10월부터 진행한 영화발골채널 호우시절은 이제 24년 7월 15일로 마지막 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395개의 에피소드를 축적하며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두 남자와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디오 클립 호우시절

유튜브 영화 발골 채널 호우시절

호우시절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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