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다녀왔습니다. 일로 왔지만 쉬는 비중이 더 높았습니다. 쉬고 먹고 커피 마시고 하늘 구경하고 자고 바닷물 속에 들어가 있고.
이번 여름은 근래에 겪어보지 못한 정말 너무 더운 날들의 연속입니다. 제주로 오기전 나흘은 강원도에 있었습니다. 정말 국토대장정도 아니고 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강원도 다녀온 이야기는 제주 이야기부터 풀어놓고서 들려드리겠습니다.
더운 날씨는 차차로 하고, 이번 제주 여행은 언제나 처럼 하늘이 정답이었습니다.
서른 번도 넘게 온 제주이지만 이번에도 제주에 내리자 마자 하늘을 바라보고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신비로운 하늘입니다.
성산 광치기 해변의 노을
녹차밭과 하늘
성산 일출봉 이른 아침의 하늘
세화 근처 바다 하늘
어떠신가요? 4일동안 머물면서 대책없이 찍은 제주 하늘 사진이라 정확히 언제 찍었는지 모르지만 어디서 찍은지는 기억이 나서 남겨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하늘도 어느 날은 분명 이렇게 예쁜 하늘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동네 하늘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에는 하늘을 예쁘게 바라볼 여유가 없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없는 여유도 만들어 주는 일의 시작이니까요.
오랜 만에 오선지에 콩나물을 걸었습니다. 사실은 마감이 코앞이었어요.
그리고 중간 중간 이렇게 최근에 정말 안쓰던 곡도 한곡 마무리했습니다. 역시 최고의 영감은 마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감 날짜가 다가오면 그렇게 곡이 잘 써집니다. 미리 써지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언제부턴가 마감이 있는 동요 작가로서의 삶엔 마감만한 좋은 영감과 동기 부여가 없는 듯 합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고 곡도 일년전부터 미리 써놓던 그런 마리샘은 잊은지 오래입니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학교에서의 일이 워낙 많아서 집에 오면 지쳐 버려서 '창작'이라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실은 더 정확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마감'이 잡히면 마리샘의 최대 강점인 '책임감'이 극으로 발현되어 '창작'이 이루어지는 듯 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학교에서 겪는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가 되는 걸 보면 분명 교직을 떠나는 그 날까지는 멈추지 못할일 인 듯도 합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소개 하고 싶은 건 '맛집'은 아니고 식당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입니다. 이번 글의 제목처럼 '놀멍 쉬멍'에 포함된 일이 맛있는 걸 먹는 거긴 하지만 저는 애초에 맛집을 찾아서 기다리는 일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냥 편한 곳에서 뭐든 맛있게 먹고 시간을 벌어 사색을 즐기는 일에 쓰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주에 가도 숙소 근처의 동네 식당에서 동네 사람처럼 밥 먹고 동네 한바퀴 돌고 하는 게 전부인데 성산 근처 숙소에서 머물며 예전에는 가지 않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들른 새로운 식당들이 하나 같이 정말 너무 괜찮아서 생전 하지도 않는 맛집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저 전라도 태생이라 맛에 민감합니다. 평생 맛있는 것만 먹고 살아서 왠만큼 맛 있어서는 이렇게 소개하지 않을텐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제주 음식은 거의 다 먹어본 듯 한데 '고등어회'는 지금껏 한번도 먹어보지 못해서 이번에는 도전해 보기로 하고 동네 횟집을 찾았습니다. 식당 이름은 사진 설명에 간략하게 적어두겠습니다. 음식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하는 거라서요.
그리고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꼭 먹어야하는 해물찜이나 해물탕을 먹고 싶어 아침 일찍 찾은 성산의 생선구이와 생선조림을 하는 식당에서 뿔소라회, 갈치조림, 고등어 구이를 주문했는데 세상에 너무 양도 많고 맛있어서 집중해서 먹었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먹은 양 치곤 너무 많아서 종일 배고프지 않게 지냈습니다.
성산 바다풍경 식당의 고등어 구이. 그냥 작은 거 시켰는데 너무 큰 녀석이 나와버려서 사진에 다 안담겼네요.
그리고 제주에는 흑돼지 오겹살 고깃집이 정말 많은데 어딜 가셔도 다 맛있습니다. 가격도 거의 비슷하구요. 그런데 차이라면 위치인 것 같아요. 예쁜 풍경과 깔끔함이 있는 곳이 있는 반면, 맛은 분명 있는데 풍경이 산속이거나 조금 위생적이지 않거나의 차이랄까요. 풍경이 좋은 곳은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기다리지 않고 조금 도로 안쪽의 깔끔한 식당으로 갔습니다.
교래흑돼지 성산점의 오겹살 커플세트. 이게 제일 작은 거라 이걸로 시켰는데 이집 밑반찬이 모두 수제라 기가 막히게 맛있습니다.
제주흑돼지 오겹살이야 뭐 말하지 않아도 아는 맛이라 그저 맛이 있습니다. 제가 갔던 곳에서는 제주감귤막걸리를 팔고 있었는데 운전을 해야해서 꾹 참고 나오는 길에 한병을 숙소로 사들고 와서 낮에 사둔 오징어 구이와 함께 맛있게 마셨습니다. 감귤막걸리는 다음날 아침에도 머리도 안아프고 깔끔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생각나는 맛이네요.
그런데 왠 오징어 구이냐구요? 지난 겨울 세화 바닷가에서 오징어 구워 파시던 분들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오징어를 파시고 심지어 더 깔끔해지고 손님을 위한 공간도 만들어두셨더라구요.
이렇게 반건조해서 버터 없이 오로지 오징어만 구워주시는 건데 정말 맛있습니다.
그리고 오징어가 구워지는 동안 바로 앞 세화 바닷가와 하늘을 실커 구경했습니다. 오징어 말려둔 것 좀 보세요. 제주의 햇살과 바람 맞고 반건조된 오징어라 더 맛있습니다. 오징어를 데려오는 곳은 앞서 소개한 포스팅에 보시면 재미있는 후기가 있으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주에서의 마지막날 길 가다 갑자기 방문했던 김녕 요트 선창장 근처 도로가에 있던 허름한 식당의 '해물라면'과 '회국수'를 소개할까 합니다.
김녕 부근에 있는 '동복 해녀잠수촌' 식당의 해물라면. 해물이 끝도 없습니다. 문어, 뿔소라, 전복 등등
역시나 '동복 해녀잠수촌' 식당의 회국수. 해물라면 맛에 반해 추가로 주문했는데 이건 더 맛있습니다. 중면을 써서 쫄깃쫄깃하고 비빙장이 아주 기가 막혀서 국수 한 젓가락에 회하나
아침을 너무 많이 먹은데다 카페에서 음료까지 먹은 뒤라 배가 불러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 겸 먹으려고 들렀던 건데 첫 해물라면에 감동하고 회국수 비우고 해물하면 하나 더 주문해 먹고 배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해물라면을 또 주문하니 저희가 음식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더 주문했다고 생각하셨던 건지 해물을 더 많이 넣어주셔서 해물만 건져 먹는 데도 한참 걸렸습니다. 겨울에 가면 두 그릇 뚝딱 또 해낼 수 있을 듯 합니다.
양파 절임. 아삭아삭 짭쪼름. 시큼. 아 맛나다!
시큼시큼. 아삭아삭. 김치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식당 건물이 너무 허름하고 시설도 열악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겐 정감있고 나름 옛날 생각나는 건물이었습니다.
들어가기 좀 무서워 보이지만 마음 따뜻한 분들이 친절하게 맞아주셨어요.
일단 제주의 바닷가에 있는 식당들은 그저 하늘과 풍경이 반찬입니다. 하늘과 풍경이 반찬이었지만 식당에서 나온 양파 절임과 익은 김치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라면, 회국수와 찰떡궁합 그 자체였습니다.
먹는 얘기가 가득했는데 정말 먹는 거 말곤 한 게 금방 생각이 안날 정도입니다. 정말 이번 제주는 뚜렷한 목적 없이 간 일이 여행이고 여행이 일인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긴장감 없이 편안하고 여유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왔습니다.
제주에서 시간을 보냈던 그 어느 여행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들고 카페 가고, 식당가고 하며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천개의 카페들도 다 개성이 있어서 어디든 들어가도 바다가 있고 사람이 있고 설렘이 있는 곳이 제주니까요. 저 제주 엄청 좋아라 합니다. 해외 나가도 제주만한 곳이 없더라구요.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바가지도 없고 결국 다 사람사는 곳이니까요.
어느날 늦은 오후일까요. 광치기 해수욕장 검은 자갈해변 바다 물 속에 앉아서 한참 있었습니다. 시원하고 행복하고 딴 세상 같았습니다.
제주 바다에 담긴 돼....아니 마리샘입니다. 합성 아님. 해수욕장임. 수영복 입었음. 물 완전 맑고 시원함.
나이가 들어가니까 여유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닥친 일들에 눈 감아지는 것 것인지 모르지만 넉넉히 혼자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이 좀 생기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는 일이 여름날들처럼 매일 뜨겁진 않지만 매일 좋은 사람들과 따스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40대의 절반인 지금은 20대, 30대의 호기롭고 쓸데없이 정의로웠던 시간을 지나 조금씩 평온해지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욕심은 줄고 배려는 늘고, 머리숱은 줄고 몸무게는 늘었지만 그만큼의 삶의 경험이 쌓여 살만해졌습니다.
그래서 여행에 나서나 봅니다.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키를 재보려면 가까이가 아닌 멀리서 나를 바라봐야하니까요. 오랜만에 멀리서 바라본 제 삶의 시간들은 아주 작지만 자라있더라구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글을 적고 있는 이 시간도 조금 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