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는 시간 : 유난히 묵묵하게 준비하는 시작의 시간

by 마리샘



SE-81976d56-d897-11ee-af63-bf3b5b203438.jpg?type=w1

토요일인데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정말 드문 일이지만 해야할 일이 많기도 하거니와 고요하고 여유있게 해야할 일들이 있어서였습니다. 새교실을 정리정돈하고 게시판 기본으로 꾸밀 것들 꾸미고 어린이들을 만날 준비를 마무리했습니다.


사실은 일년 중 가장 겁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들입니다. 이미 교직 경력이 20여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새학기가 시작되는 이 시간들은 정말 너무도 두렵고 어려운 시간입니다.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지금껏 그래왔습니다. 그 마치 예방 주사 맞는 어린이의 그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막상 맞고 보면 따끔하고 마는데 그 따끔하기까지의 그 기다림과 걱정스런 시간들이 힘든 것처럼 말이죠.

SE-2cfce5f3-fa23-4e98-b8a5-85a4c2a11890.jpg?type=w1

맡은 업무가 있어서 월요일에 있을 입학식 준비도 해야하고 학교 소개 영상이며, 축가며 왜 이렇게 챙길 일들이 많은지 부지런한 사람인데도 챙겨야할 것들이 많아서 쉴새 없이 움직이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7년 전쯤일까요? 5학년 담임이었을 때였는데 우리 반 반장이던 여학생이 저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선생님은 학교에 있는 시간 중에 언제가 가장 좋으세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금세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수요일 오후야.

너희들이 다 가고 고요한 교실에 혼자 앉아 있으면 그렇게 행복하더라."


그 당시에는 방과후학교도 없었고, 수요일엔 오후 수업이 없어서 일찍 끝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빨리 하교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요일 오후가 행복 했던 건 어린이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실에 혼자 있는 그 고요함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곰곰하게 생각해보면 사람이 혼자 고요하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운전을 할 때면 혼자이긴 하지만 운전이라는 것 자체가 사방을 살펴야하는 일이라서 고요하지 않습니다. 집에 오면 가족들의 움직임과 각종 미디어에서 나는 소리까지 가득합니다. 학교는 어린이들이 있어서 늘 시끌벅적하지요. 그리고 각종 업무와 수업까지 더해지구요.


지금은 아니지만 17년전 근무하던 학교의 수요일 오후는 그야말로 고요 그 자체였습니다. 또 그 당시에는 학급에 학생들이 30명이 훌쩍 넘게 있어서 하교 하고 나면 더 고요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아무도 없는 학교 교실에 앉아 서류도 정리하고 교실도 정리하면서 그 시간들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정말 나이 들어 가나 봅니다. 예전 일들이 자꾸 지금을 사는 일상 속에 겹쳐지는 걸 보니 말입니다.


고요한 중에 새롭게 시작될 일년을 시뮬레이션 해봤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변수가 많고 해야할 일들도 명확해서 큰 도움은 되질 않습니다. 준비는 잘했지만 또 어떤 일상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그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20240302%EF%BC%BF150450.jpg?type=w1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난 하늘 빛깔 덕분에 문득 찾아온 알 수 없는 무력감을 잘 이기고 돌아왔습니다. 새로운 일년을 살아내야할 스스로에게도 응원을 보내봅니다. 두 밤 자고 나면 시작이네요.


<2024년 3월 2일>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마리샘>에 동시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arriesam/223371206814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배구 이야기 : 언제나 첫 계단이 가장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