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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부터 든 생각

by 마리온
아일랜드 공화국은 모든 아일랜드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충성을 받을 권리가 있고, 이에 이를 요구한다. 공화국은 모든 국민에게 종교적. 시민적 자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며, 국가 전체와 모든 부문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고 모든 아동을 똑같이 소중히 여기겠다는 결의를 천명한다.
[소설책 서문, 아일랜드 공화국 선언문 (1916)에서 발췌]


최근 아일랜드에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에 계속 꽂혀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 아일랜드의 모습이 내게 너무 낭만 있고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거리를 꼭 실제로 걸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아일랜드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아쉽게도 여행을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비슷한 때에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접하게 됐다. 서점에서 친구와 서로 책을 골라 선물해 주기로 약속하고 받은 책이 바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소설이었다. 친구는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른 채 (자신의 일터에서 인상 깊은 손님이 읽은 책이라는 이유였다) 내게 이 책을 추천해 주었고, 나 역시 별다른 생각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내가 아일랜드 여행을 원했던 이유가 다분히 가벼운 환상이었다는 생각에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먼저 아일랜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소설과 영화 속 아일랜드가 왜 그토록 음울하고 가라앉은 분위인지 보다 더 이해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약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이다. 19세기에는 인구의 1/4이 죽거나 나라를 떠난 대기근까지 겪은 아픔이 있다. 소설의 배경은 1985년인데,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 선언을 한 시기가 불과 1900년대 초였다. 1980년대의 아일랜드는 극심한 경제적 침체를 겪었던 시기였다. 그 이면에는 장기간 피지배 및 대기근으로 인한 구조적 취약성과 경제적 자립 부족 등의 역사적 맥락이 있다. 아일랜드의 역사를 보다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일부분 닮았다는 생각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과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석탄을 팔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빌 펄롱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다. 날로 피폐해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빌 펄롱은 어떻게든 끈질기게 버티며 살아내고 있다. 조용히, 온순하게, 지역 주민 누구와도 척지지 않으며 딸들을 무사히 잘 키워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학교인 ‘세인트 마거릿’ 학교를 졸업시키는 것이 펄롱의 가장 큰 목표이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 시기에 펄롱은 가장 주요한 거래처인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야 만다. 자신의 딸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가 한겨울 차가운 창고에서 혹사당한 채 감금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펄롱이 수녀원을 나오는 길에, 1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한 아이는 펄롱을 붙들고 애원한다. 자신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싶다고. 제발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그러나 펄롱의 아내는 고민에 빠진 펄롱에게 단호히 말한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어.’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당장 오늘의 먹을 양식, 잠자리, 가족들의 안위가 너무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타인을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안위를 위협하면서까지 남을 돕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침묵하는 것이 나쁜 행동은 아니니까.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뿐이야.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아내의 모습이 억세고 이기적으로 묘사가 되었지만… 이 인물을 어떻게 못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싶다. 펄롱 아내의 태도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고, 나 역시 다를 바 없는 사람인데. 나라고 가만히 있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소설과 영화는 실제 아일랜드에서 일어났던 ‘막델레나 세탁소’ 사건을 소재로 다룬다. 수녀회에서 매춘부나 미혼모 등 소위 ‘타락한 여성’을 교화하기 위해 작업실과 세탁소를 운영하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막델레나 세탁소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이곳에 들어간 여자들은 감금되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평생 노역과 학대에 시달리다 죽었다. 한 세탁소에서는 무려 769명의 아이들이 정화조에 묻혔다고 한다. 이렇게 끔찍한 일들은 무려 1996년까지 자행되었다.


그렇게 누구도 수월한 침묵을 깨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하고 악한 일들이 오랜 기간 이어져올 수 있었다. 문 밖으로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음에도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에.



고민 끝에 펄롱은 결국 자신이 외면했던 진실에 손 내미는 편을 택했다. 창고에 감금돼 있던 아이의 손을 잡고 펄롱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일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사소할지도 모른다. 펄롱이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막델레나 세탁소의 존재가 위협을 받거나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사소한 행동으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다면, 펄롱의 개인적인 삶이다.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을 받고, 마을의 중심인 수녀원에 의해 여러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도무지 펄롱의 인생에서 플러스라고는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사소한 선택은, 이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진 않지만, 그 소녀에게만큼은 소녀의 인생을 구한 위대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건 알 수 있다.


나아가 한 가지 생각할 만한 부분은 펄롱이 이러한 선택을 결심하게 된 건 오로지 펄롱의 선한 의지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펄롱 역시 어린 시절 윌슨 부인으로부터 대가 없는 도움을 받아 인생을 구원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소한 선택들은 그 선택의 결과에서만 끝나버리는 게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그 영향력을 넓혀간다. 막델레나 세탁소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건 이 사소한 것들의 힘일 것이다. 사실 이 사소해 보이는 선택에는 아주 무거운 용기가 담겨 있으며, 거대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는 위선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인간은 원래 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자연스러운 것을 억누르고 노력하는 행동들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는 말인 것만 같아서. 어떻게 노력 없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자신과 부딪히고, 무너지고, 자괴감을 느끼고, 다시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더 나은 나와 집단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설령 펄롱 같은 행동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행동을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는 갖추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를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소설을 읽으면서 마지막에 펄롱이 아이를 창고에서 구해 함께 손을 잡고 길고 긴 거리를 걷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영화를 관람하기 전 가장 기대했던 장면이기도 했다. 춥고 차가운 거리를 딱딱한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왜인지 보통의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에서 느꼈던 따듯함이 전달됐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통해 한 해의 끝자락에서 연말의 마음가짐을 다시 하게 되는 계기가 된듯 하다. 앞으로는 보다 더 따듯한 연말을 보내도록 노력해야지.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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