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2013)
스튜디오 지브리는 한국의 팬들과는 꾸준히 애정의 줄타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메세지를 담은 것들이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잘못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코쿠리코 언덕에서>도 대표적이고, 지브리의 2013년 작, <바람이 분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호리코시 지로'라는 실존 인물로, 일본 미쓰비시 사에서 제작해 태평양 전쟁에 사용된 일본 해군의 '제로센' 전투기를 설계한 인물이다. 배경과 중심인물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는 일부 보이콧 당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 영화는 오해받고 있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무기와 기계장치에 가지고 있던 관심, 그리고 동시에 반전과 평화를 외쳐온 다소 모순적인 요소가 있는 태도에 응답하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한국 포스터에 카피 문구가 "사랑합니다. 바람이 당신을 데려온 그 순간부터"라서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유난히 일본 영화에서 단순히 로맨스로만 해석된 카피 문구를 많이 마주치는 것 같다. 제발 제대로 알려달라구요~
영화는 딱 일본의 '일본제국' 시절을 살아간 인물을 조명하며 그 시절의 배경도 디테일 가득하게 담아낸다. 중간에는 1923년 관동대지진을 겪는 장면도 등장한다.
주인공 지로는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다. 1차대전 시기에 호기심 많은 소년 시기를 지난 지로에게 각국의 비행기, 그러니까 전투기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심하게 근시인 눈. 근시로는 조종사가 될 수 없다. 그러던 중, 꿈에서 만나 그의 뮤즈가 된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자, 카프리니 백작에게 "근시도 설계사는 될 수 있다"는 응원을 들으며, 기체 설계자로서의 꿈을 자극한다. 하지만 카프로니 백작은 알쏭달쏭한 인물이다. 그도 비행기가 좋아서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가 만드는 비행기는 전투기와 폭격기다. 이탈리아, 독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국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비행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했을 지는 뻔하다. 하지만, 그런 카프로니 백작에게도 꿈은 있다.
"전쟁이 끝나면 난 다른 걸 만들거야. 폭탄 대신 사람을 태울거다. ...일본의 소년이여, 잘 들어라.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사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게 동경제국대학의 항공학과에 진학한 지로는 재능을 인정받고, 이내 미쓰비시 사의 설계부에 채용된다. 그는 더 좋은 비행기를 위해 기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독일의 비행기 제작사인 융커스 사(-역시나 폭격기를 만드는 회사. 2차대전 전의 독일이니까효..)로 파견 근무도 하면서 일본의 기술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어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꿈에 대한 노력도 멈추지 않는 지로. 그가 존경하는 카프로니 백작은 계속해서 지로의 꿈에 등장해 영감을 준다. 동시에, 영화를 진지하게 볼만한 여지를 던져준다.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의 꿈은 저주받은 꿈이야.
비행기는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되는 숙명을 갖고 있네.
피라미드가 없는 세계와 있는 세계, 어떤 것을 선택하겠나?
그래도 난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를 선택했어."
물음에 지로는 답한다.
"..저는 그저 아름답게 나는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요."
이탈리아인인 카프로니 백작 뿐만이 아니라, 스쳐가듯 만난 독일인도 도피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독일인은 호텔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지로에게 이야기한다.
"멋진 밤이군요. 여긴 ‘마의 산’. 잊는 데는 최고의 장소죠.
중국과의 전쟁, 잊어요. 만주국 창설, 잊어요.
국제연맹 탈퇴, 잊어요. 세계를 적으로 만든 것, 잊어요.
일본은 파멸해요. 독일도 파멸해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으로 갈 수록 지로의 비행기는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그가 만든 비행기는 한 대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이제 꿈에서, 넓고 푸른 초원이라기에는 하늘에서 추락한 고철 덩어리가 곳곳에 박힌 평원에 서게 된다. 카프로니 백작은 이 곳이 하늘을 동경해온 본인들의 꿈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고철덩어리들을 밟고 초원에 선 지로와 카프로니 백작은, 이제는 꿈의 민낯을 본 사람들로서의 대화를 한다.
"지옥인 줄 알았어요."
"뭐, 다르진 않지."
실제로 호리코시 지로는 일제의 치하에서 낙천적으로 꿈을 꾸고, 성취해온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그의 전투기의 성과, 곧 일본의 승리에는 좋아하고 나치는 비판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였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기여했다. 그가 만든 '제로센'은, 바로 그 유명한 '카미카제(태평양전쟁 때 활약한 자살특공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비슷한 사례를 다룬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군인으로서, 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을 기차에 태우는 일의 최고 책임자였다. 아이히만의 재판 기록을 다룬 이 책은 '악(惡)의 평범성'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다루게 된다.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나쁜 구조 속에서 아무 의식 없이 그것을 따른 것도 '악'이라는 개념이다. 그래서 아이히만은 끝까지 자신은 그저 상부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했지만, 결국 그는 처형되었다.
지로는 아이히만과는 달리 직접적인 관여를 하거나 희생자와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도 일본 해군의 전투기 제작 요구를 받아들였고, 설령 순수하게 비행기 제작에 대한 열정으로 받아들였을지라도 악의 고리에 가담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는 그의 비행기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또, 군인이었던 아이히만과는 달리 기술자였던 지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렇게 되지 않고서야 그가 꿈으로 삼아온 비행기 제작을 어디서 경험하고, 여객기보다 전투기가 중요하던 시기에 자신의 열정을 폭발시킬 공간이 마련될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기술적 중립(기술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며,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선악이 결정된다는 입장)'으로서 그를 비롯한 전쟁시대 기술자들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나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과연 내가 그 시절 기술자였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했을까. 하지만 여전히 나의 성공만을 위해 희생자들을 도외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크긴 하다. 어려운 문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에 이런 문제 의식을 담았다. 그는 <이웃집 토토로>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놀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담았지만 결과적으로 대히트를 친 <이웃집 토로로>로 인해 아이들은 집 안에서 TV만 보게 됐다고 비유했다. 귀여우면서도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 '바람이 분다'와 영화에서 꾸준히 인용되는 폴 발레리의 시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는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 안에서 바람은 지로의 비행기(카미카제(바람의 신)의 '카제(風)')가 될 때도 있고, 지로의 곁에 머물다 간 그의 약혼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아마도 1900년대의 절반을 사로잡은 '사상'이라는 망령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그저 흔들리는 나뭇잎으로서 바람이 분다고 알 수 있을 뿐이니까. 바람이 불고, 비행기는 떠야하는데 그 비행기를 사용하고, 뜨게 만드는 것도 사상이었다.
누가 바람을 봤을까?
나도 그대도 보지 못했네.
하지만 나뭇잎을 흔들며 바람이 지나가네.
바람이여, 날개를 떨며
그대 곁에 머물러 다오.
설령 태어난 것이 선택이 아니고 태어난 세상도 그저 주어졌을 뿐이지만, 우리가 속해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것을 지배하는 생각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살 필요는 있다. 하지만...난 아직 내가 꿈을 펼칠 세상이 잘못 되었다고 해서 꿈을 포기해야하는 건지, 내가 그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호리코시 지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일본인이고 그의 비행기들이 향한 방향이 내 뿌리와는 반대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특히 나에게 적용될 수 없으면 그를 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어려운 주제에 아직 답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전쟁은 나쁘다', 그리고 그 이상의 메세지를 담은 이 영화에 대한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고, 훌륭하게 담은 생각거리에 대해 다함께 고려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