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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o Jan 31. 2021

내 영혼을 위한 픽사라는 수프

소울 (202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픽사의 이(異)세계

가족끼리 <인사이드 아웃>을 보러 갔다가 다같이 펑펑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라니, 믿기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픽사 스튜디오가 "머릿속 본부"를 잇는 또다른 '이(異)세계'를 선물했다. 이번에는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The Great Before)'이다.

<소울>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나기 전의 영혼 상태에서 다양한 '집'에 배정받으며 성격이 형성되고, 멘토를 배정받아 그와 함께 내 영혼의 '불꽃'을 찾는다. 불꽃은 'The hall of everything'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찾는다. 의무적으로 모두가 채우게 되는 성격에 불꽃까지 발견하게 되면 영혼은 '지구통행스티커'를 받는다. 그렇게 우리 영혼은 지구로 여행을 떠나게 되고, 지구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에 대하여

이번에 픽사가 고른 메인 주인공은 재즈 뮤지션 "조 가드너"다. 학교 밴드부의 선생님으로 일을 하며 정규직 제안까지 받았지만 삶에 만족도가 높진 않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는 자신의 삶의 이유, 삶의 목적이 재즈라 여기며 살고 있다. 낭만적인 영화들을 보면, 특히 사랑과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에 인물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삶의 이유를 찾았다"라고. 마치 내 삶의 의미를 언제나 찾아 헤매다 그걸 찾아야만 행복하고 낭만적인 삶이 시작되는 것처럼.


"Your 'purposes',  your 'meanings of life',  so basic."


그러나 <소울>은 조와 22번의 모험을 통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입받아온 그 '삶의 의미'에 대한 집착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구에서 생을 부여받기 전에 거쳐야하는 '불꽃'에 대해 알게 된 조는 단번에 그것을 '삶의 의미', 또는 '삶의 목적'으로 파악한다. 열심히 고민만 하다가 꺼낸 "어떻게 살아야해요?"라는 질문에 "여러 경험을 해보며 원하는 걸 찾아봐. 우선은 다양한 걸 하면서 삶의 목적을 찾아보자."라 답하는 'The Great Before'와 조 가드너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다. 그리고 자신이 자연스럽게 해오던 생각을 내뱉어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는, 잘못을 깨닫고 다시 다가가는 모습에서 그 익숙함이 나와 함께 서툰 시간을 함께해온 부모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2번으로부터 부모와 투닥투닥하던 10대,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눈시울을 붉히게 하던 <소울>은 이내 '태어나기 전의 영혼'이라는 22번의 정체성을 리마인드시키고 조에게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넌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아기 영혼의 말에 공감하고 힘을 실어줄 것. 22번과의 모험과 소통을 통해 조는, 알게 모르게 강박적으로 맞춰오던 남의 판단 기준을 벗어나 삶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삶의 방법은 꼭 그가 사랑하는 재즈의 모습과 닮았다. 비로소 조는 재즈를 쫓는 사람이 아닌, 자유로운 재즈 그 자체가 된다.


영화에선 '불꽃'을 '살아갈 준비'라고 말한다. 불꽃을 어떤 하나로 단정짓는 것도 <소울>이 원하는 바는 아닐 것 같지만, 나는 그 '살아갈 준비'가 곧 삶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울>에서 묘사하는 태어나기 이전 세상과 맞닿아있는 유소년기를 생각해보면 뭔가 하고 싶은 것, 꿈이든 꿈처럼 거창하진 않아도 원하는 삶을 그려보는 것 정도라도,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세상으로 발 딛게 한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기 영혼들이 'The hall of everything'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찾게 되는 것도 단순히 적성이 아니라 "더 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낳은 욕망이었을 것 같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삶이라는 고통으로 뭇 인간을 밀어넣지만, 순수함을 잃고 욕망에 인간들을 길잃은 영혼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성격과 함께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받아오는 선물. "살아보고싶다"는 생각, 내일에 대한 기대가 결국엔 살아갈 준비 그 자체니까. 그리고 그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선물을 가장 값지게 쓸 수 있는 방법은 끊임없이 무언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 대상이 내 삶인 경우일 것이다. 매일매일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하고 세상의 경이로움을 예찬하는 것. 그러니 영화 크래딧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인생의 시간동안 언제나 모든 멘토들에게 감사를 표시할만하다. 의미심장한 우화를 들려주는 어른에게, 마음에 울림을 주는 예술가들에게, 참고할만한 인생 경험을 나누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하물며 내 손 위로 우연히 떨어져내린 씨앗에게도.

그러나 이건 언제까지나 아주 개인적인 하나의 생각에 불과하다. 영화는 인생과 같아서 관객에 따라 전달받는 메세지가 달라지기 마련이고, <소울>을 비롯한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정교한 짜임새로 관객 하나하나에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선물한다. 너무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나는 <소울>을 보고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내 안에 진짜 영혼이라는 것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사전(前)세계에서 생각, 22번처럼 아주 힘든 마음의 준비를 거쳐 내 육체 안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내가 지금 무한한 유대감을 느끼는 아주 오래 전의 나를 위해서라도 멋진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 뛰는 감각을 잃은 것 같을 때, 자신감이 조금 꺾였을 때 <소울>을 보게되어 기쁘다. 고마운 영화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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