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고 과민하다

쓰고 나누고 잇다 1 : 약점이 강점이 된다면

by 강동화

이현우 팀장이 누군가에게 '커피를 권하는 일'은 평가를 시작하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팀장의 '커피 권하기'는 적어도 분기에 한 번씩은 이루어졌으며, 은형이 회사를 들어오고 나서 현우와 단 둘이서 마신 커피는 모두 다른 팀원에 대한 평가를 곁들인 시간뿐이었다. 이현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과는 일이 아니면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평소에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나누는 일은 당연히 없는 일이었고, 전체 팀원이 참여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회식이 아니고서야 술자리를 권유받는 일도 없었다. 그는 그렇게 항상 조용히 모두를 둘러 살피고, 본인의 눈으로 보는 평가와 다른 팀원의 평가를 늘어놓고 비교해 보는 일을 자신에게 중요한 일로 여기는 듯 보였다.


이현우는 커피를 마실 때 회사 안의 공간이 아닌 다른 장소를 골랐다.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간 공간이 서로 모두 다른 공간일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도 이현우 팀장이 그렇게 다른 팀원들에게 듣고 정리하는 인사평가를 높게 평가하는지 특별한 외근으로 취급하듯 어떠한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은형은 직장 상사에게 회사가 아닌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떠드는 수다 소리를 방어벽으로 삼아 다른 동료나 팀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점이 불편으로 느껴졌다.


그 불편을 다른 팀원들에게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입사 동기인 진아는 은형의 불편에 대해서 거꾸로 또 다른 불편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진아가 '뭐, 진지하게 이야기할 거 있어? 출근해서 일 안 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가벼운 이야기나 하다가 커피 얻어먹고, 시간 보내고, 꿀이지 뭐. 꿀.'라고 말하고는 빼쭉 입술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특별히 나쁘게 말할 게 없어서 좋은 이야기만 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데. 은형이 너는 뭐 불편한 거 이야기한 거라도 있나 보다? 이상하게 예민하네?' 하면서 불편한 내색을 표현했다. 은형은 얼른 '아니, 그냥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그 과정 자체가 불편해서 그래. 너희는 안 그래?'라고 둘러댔다.


은형은 진아의 다른 말을 공감할 수 없었지만 '예민하다.'는 표현에 만큼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도 대학생 때도 그리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예민하게 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넘어간 어떤 상황이 은형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지거나 불편하게 느끼지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어기적 넘어가더라도 꼭 볼멘소리를 한 마디는 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불편을 느끼는 본인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항상 멈출 수 없었다. 특히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보이는 태도에서 무례한 점이 보일 때가 유난히 그랬다.


그때의 은형의 표정에 예민과 과민이 불편과 볼멘소리로 보였는지 어느 순간부터 진아를 포함한 몇몇 직원과는 수다를 떠는 시간도, 퇴근 후 같이 하는 술자리의 빈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은형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억울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을 따로 불러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이상한 회사의 시스템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팀장이 커피를 마시자고 은형을 부르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이런 시스템이 있는 이유나 거기에 관한 불편함을 이야기할 다짐을 했다. 다른 누군가를 평가할 게 아니라 이런 평가를 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몇몇 직원이 이현우 팀장과 커피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은형에게도 순서가 돌아왔다. 이현우는 은형의 자리로 일부러 찾아와 커피 마시기를 권했다. 자리까지 찾아와 마치 다른 직원들이 꼭 들었으면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팀장의 제안에 은형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팀원들의 시선이 자신을 훑어보고 지나갔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번 진아와의 의견을 나누고 나서부터 팀원들은 이미 내가 팀장과의 커피 시간에 본인에 관한 부정적 표현을 할 예정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세시가 지나자 사내 메신저로 이현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지금 혹시 시간 어떠냐.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나 나누자.'라고 쓰여있는 메시지를 확인한 은형은 구매한 뒤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작은 녹음기를 가방에서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이현우 팀장에게 단호하게 '네. 좋습니다.'라고 답장했다.




현우와 은형은 회사 건물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현우는 은형에게 지난번에 봐두었던 좋은 카페가 있다며 자신을 따라오면 된다고 말한 뒤 앞서 걸어갔다. 현우는 걷는 동안에도 특별히 말을 나누지 않았다. 현우는 차분하기를 넘어서 무던한, 어쩌면 무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은형은 지난번 현우와 커피를 마시던 날이 기억났다. 그때도 이렇게 현우를 따라 걸어가서 처음 보는 카페에 도착했었다. 법인카드로 구매한 커피를 사서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서 팀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물으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묻고 은형은 대답하는 식이었다. 현우는 은형의 답변에 리액션도 없이 질문을 하기만 했다. 은형은 일부러라도 다른 팀원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람의 이름만 바뀌는 평이한 질문들이 은형에게는 면접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오히려 은형에게 있어 현우는 꼬치꼬치 캐묻기를 좋아하는 본인과 같은 민감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에요. 들어갈까요?"


역시 처음 보는 카페였다. 다른 팀원들과 회사에서 빠져나와 카페를 다닐 여유가 없다거나 그럴 사이가 없다는 점도 사실이지만 은형은 본인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카페를 꼭 찾아온 현우가 신기하기만 했다. 현우는 카페의 문을 열고 안으로 먼저 들어서 은형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잡고 있었고, 은형은 그런 현우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은형은 처음 와본 카페였기에 들어서고 난 뒤에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현우는 익숙한 듯이 카페 안으로 향했다. 은형은 현우가 본인과 이곳을 찾아오기 위해서 사전에 공간을 알아놓은 게 분명하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당당한 태도로 자리를 찾을 리가 없었다.


은형과 현우는 카페의 창가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자리에 앉았다. 카페에는 둘을 제외하고도 많은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은형은 다른 손님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로 칵테일파티 효과가 있어 현우의 말이 잘 들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주머니 속의 녹음기에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가져온 이상 사용은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주머니로 손을 짚어 넣어 녹음기의 전원을 눌렀다. 현우는 은형이 녹음기를 켠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펼쳐보고 커피를 고르고 있다. 현우가 본인의 메뉴를 골랐는지 메뉴판을 은형에게 넘겼다. 은형은 커피를 마시면서 즐겁게 떠들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본인은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현우에게 메뉴판을 다시 건넸다. 그러자 현우가 메뉴판을 들고 카운터로 향한 뒤 주문을 했다. 현우가 카운터에서 자리러 돌아오고 잠시 정적이 남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점원이 커피 두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현우 역시 아메리카노를 시킨 모양이었다.


"은형 씨는 오늘 제가 커피를 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아요?"


테이블에 올려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현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팀원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으신 거 아닐까요?"

"회사 안에서나 사무실에서는 물어볼 수 없거든요. 그럼 누구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볼까요? 동기인 진아 씨는 어때요?"


은형은 현우가 손에 수첩과 펜을 들지만 않았지 마치 탐정이나 형사가 취조하듯이 물어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우가 팀장으로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몇 명의 팀원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다가 시스템을 물어볼 작정이었지만, 그런 기분이 들자 그마저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은형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현우에게 물었다.


"팀장님. 저 무례할 수도 있는데 꼭 물어보고 싶은 다른 게 있어요."

"질문은 제가 했는데 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하다니."

"혹시 안 될까요? 꼭 팀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만 하는 걸까 해서요."

"아니에요. 오늘 은형 씨는 다른 분들이랑 달라서 새롭네요. 제가 질문을 하면 모두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하거든요. 무슨 질문이에요?"


현우가 불편한 기색을 비춘다고 해도 꼭 물어봐야지 다짐했던 은형이었지만, 현우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은형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는 현우의 모습에 우물쭈물할 것 없이 준비된 질문을 단번에 꺼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는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평가하고 말하는 게 불편하거든요. 왜 이런 방식을 해야 하는 건가요? 팀장님만의 방법인지. 아니면 회사에서 방침이 그래서 팀장님은 따르고만 있는지가 궁금해요."


은형이 쏟아낸 질문에 현우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은형은 그런 현우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등받이에 기댄 현우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은형 씨는 다른 사람들이 은형 씨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해 봤나요?"

"네?"

"은형 씨가 거의 마지막이거든요. 우리 팀원들 중에서는. 알고 있었나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그게 제 질문이랑 어떤 관계가…."

"은형 씨는 예민하다. 그런 이야기를 몇 번을 들었는지 알아요?"


은형은 현우의 표현이 무심하지만 악의는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심해서 기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불편을 이야기할 때 본인들은 좋은 말만 한다고 말하며 하하 호호 웃던 팀원들의 모습이 떠올라 평소 느끼던 억울함이 더 커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던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이현우도 본인을 예민하다고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맞아요. 은형 씨는 예민한 데다가 과민하기도 해요."


현우의 확신에 찬 대답에서 은형은 더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본인이 예민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점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고 아는 점, 그리고 그걸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직접 듣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현우는 상사이기 때문에 표정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은형은 혹시라도 본인의 표정에서 또다시 불편이 드러났는지 가볍게 얼굴을 만지며 점검해 봤다. 다행히 얼굴을 화끈거리지도 일그러지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을 또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알아요?"

"예?"

"은형 씨는 저희 회사가, 아니 제가 찾던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현우는 두 손을 모아 얼굴을 쓸어 마른세수를 하고서 내려놓았던 커피를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은형은 그런 모습의 현우를, 그리고 현우가 이렇게 홀가분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건 처음 봤다. 현우는 여태껏 무던해 보이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살짝 웃으며 은형을 보고 있었다.


"예민하다는 건 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능력이에요. 은형 씨는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요?"

"음…. 팀장님은 저희 팀원들 관리도 하고 저희를 둘러보는 일을 하시잖아요."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을 둘러보고만 있는 사람한테 팀장이라는 직급을 주고 이만한 권한을 주는 곳도 참 신기하지. 물론 나도 그래서 이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기는 했지만요. 오늘 은형 씨를 보자고 한 것도 이 일의 후임을 맡겨보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요."


그러고 보니 다른 팀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본 적이 있다. 업무분장에 대한 공지가 있을 때 이현우 팀장은 다른 직원들에 비해서 이상하게 일이 적어 보이지 않냐는, 그리고 평소에 특별한 성과를 내지도 않는데 팀장이라는 자리에 있다고. 그리고는 월급은 우리보다 많을 거라 부럽네 하고서 넘기고는 했다. 그 주제에 동감하지도, 동참하고도 싶지 않아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던 은형이었다.


"예민하고 과민한 건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챈다는 거예요. 그건 다른 사람들을 가지지 못하는 큰 능력이에요."


대단한 비밀을 털어놓듯이 이야기하는 현우의 말에 은형은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다. 은형은 본인에게 있어 그런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능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엔 팀장님은 너무 무던한 사람이시잖아요."

"내가 무던해만 보이던가요? 은형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보였는데. 은형 씨는 나를 계속해서 의심하는 눈초리로 보는 사람이었거든요. 내 업무에 대해서는 대충은 알고 있어 보였고."

"의심이라니요?"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치고는 내가 사람들마다 다른 카페를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처럼 보였고. "

"아…."

"아까 질문을 하니깐 내가 그저 수다로 다른 사람들의 뒷담이나 평가를 묻는 게 아니라 일로서 평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듯이 보였어요. 맞지요?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그것만 조금 연습하면 되겠어요."

"연습이라니요?"

"그리고 주머니에 녹음기. 자리에 앉아마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힘을 주는 건 너무 티가 나니깐 제가 쓰는 조금 더 좋은 녹음기를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잠깐만요. 이게 지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잘 안 돼서."


은형이 느끼는 감정은 말 그대로였다. 현우가 갑자기 늘어놓는 말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은형에게 흥미를 느낀 현우가 은형에게 보이는 표정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신나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심해 보이는 표정들이나 태도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한 연기였다는 말이 된다. 현우가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심을 해본 적은 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은형은 당황스러움을 느낄 뿐이었다.


"은형 씨. 저희 회사 비밀인사팀에 들어오게 된 걸 환영해요. 우리는 예민하고도 과민하게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이에서 숨어서 그들이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해요. 은형 씨는 본인이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 걸 잘하리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