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무늬

일방기억

by 강동화

어느 날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 작고 묘한 얼룩무늬가 생겼다.


처음 얼룩을 보았을 때는 작은 점처럼 보였다. ‘원래 점이 있었나 보구나. 내가 왜 모르고 있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가 조금씩 커져가는 모양에 그건 점이 아닌 얼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 얼굴에 나타난 얼룩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보며 웃기만 했다. 어쩌다가 내 시선에 얼룩이 들어올 때, 뭐가 묻었거니 생각하며 얼룩을 지우기 위해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매만졌다. 볼에 묻은 얼룩은 전혀 지워지지 않았고, 그녀는 나에게 왜 그러냐며 내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을 향해 조금씩 다가왔다. 그렇게 오늘도 그녀와 나는 함께 눈을 감았다.


다시 만난 그녀의 얼굴 위 얼룩은 자신의 영역을 자리 잡았다. 어느새 그을음 낀 벽지 위 얼룩처럼 단순해 보이지 않고 명백히 무늬를 띄었다. 얼굴의 묘한 무늬에 관하여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이상한 소리는 그만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녀의 얼굴 위 무늬가 확실히 보였고, 그녀를 만나는 날마다 무늬는 조금씩 더 진하고 화려한 모양을 피워냈다. 얼룩이 무늬로 완전히 자리 잡은 날부터 그녀의 표정마저 달라 보였다. 어쩌면 그 무늬가 그녀의 얼굴을 더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묘한 무늬에 관한 궁금증을 도저히 사그라지게 할 수 없었다. '왜 그녀에게는 보이지도 않는데 나에게는 이토록 명료하게 보이는지.' 하는 의문부터 '도대체 묘한 무늬는 왜 그녀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건가?' 하는 의문이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문제를 그녀와 함께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묘한 무늬를 언급하는 일은 나에게 의심과 짜증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짜증이나 미움을 받는 일은 질색이었다. 생각해 보니 묘한 무늬가 그녀의 얼굴에 피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짜증이 섞인 모습으로 남겼다. 그녀와 나의 관계에 있어 그 무늬는 아주 께름칙하지만 자꾸만 다가가게 되는 어두운 동굴과도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녀와 만남이 취소되었다.


오늘은 그녀와 만나 유명한 음식점에 들렀다가 한산해진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되어도 그녀는 약속한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무정한 시간이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만큼 속절없이 지나고 난 뒤에서야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오늘 일에 대해서 뭐라 이야기하기도 전에 전화기 저편에서 그녀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오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 오늘은 시간이 안 돼서 못 만날 것 같다. 연락도 못할지 모른다.' 하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전화가 끊어지기 전까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짜증이 몰려오기도 전에 전화 저편에서 정확히 들리지는 않지만 누군가와의 실랑이가 섞인 목소리에서 아주 바쁜 일이 생겨 전화할 여유조차 없구나 싶었다. 그렇게 집으로 일찍 돌아왔다. 돌아온 집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이유로 하루 종일 할 일을 생각해두지 않았다. 아니, 그녀와의 약속이 오늘의 할 일이었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티브이를 켜고 이리저리 화면을 바꾸며 시간을 보냈다.


질서 정연한 듯 돌아가는 티브이의 채널이었지만 내용은 일정하지 않게 계속 바뀌고 있었다. 어느 장면에서는 높은 곳에서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강하게 말하는 이의 모습이 보였고, 어느 장면에서는 여러 사람이 두런두런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토크쇼, 어느 장면은 범고래가 사람과 함께 여유롭게 헤엄을 치는 그런 영화. 다양한 장면이 펼쳐졌지만 어느 것도 아직 내 시선을 붙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마구잡이로 채널을 바꾸던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문신의 역사'라는 제목이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보였다. 의구심인지 호기심인지 몰라도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묘한 무늬가 떠올랐다. 그 무늬도 어쩌면 문신과 비슷한 모양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화면에서 여러 가지 문신을 보여주었다. 지엄한 목소리를 내는 해설자가 문신의 여러 모양에 대해서 소개해주었다. 그러다가 '그렇다면 문신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하고 여자의 목소리로 되묻는 질문이 나왔다. 질문에 이어 화면은 문신을 한 다양한 사람들을 비추기를 그만두고 어느 학자가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자는 마치 자신의 바로 옆에서 여자가 질문한 듯이 당연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학자가 말하기를 문신은 원래 죄인과 노예에게 새기는 낙인으로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학자는 하주 진지한 말투로 얼굴이나 팔에 하는 문신은 범죄자의 경력을 알리는 실명공개나 전자발찌와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는 '물건을 훔친 사람에게 팔에 도둑놈이라고 써놓거나 사기꾼에게는 얼굴에 거짓말쟁이라고 써놓는 겁니다.'라며 웃으며 말을 했다. 학자는 적절한 비유로 말해서 만족스러운 듯 여유롭게 몸을 뒤로 젖히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이어서 화면은 다른 학자의 얼굴이 비췄다. 이번 학자는 문신은 하나의 문화였다고 설명했다. 물론 범죄를 다스리는 법으로서의 문신도 있지만, 문화행위로써의 문신도 존재했다고 앞선 학자와 다른 분석을 역설했다. 그는 이전에 출연했던 학자와 다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열성적으로 이야기했다. 학자의 의견 피력이 끝나자 다시 여러 문신을 한 사람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의 문신을 자랑하듯 이리저리 보이며 자부심이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프로그램의 마무리를 알리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광고가 흘러나왔다. 나는 다시 리모컨을 들고 티브이의 화면을 다른 화면으로 질서 정연하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아직 그녀와 만나지 못했다.


다음 만나는 날을 약속하긴 했다. 하지만 그날이 다가오기에는 너무 멀어 보였다. 어른이 기다리라고 하지만 당장에 사탕을 받고 싶은 아이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매일이 바쁜 그녀를 위한 선물꾸러미를 준비하여 그녀가 일하는 회사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녀가 회사 일이 항상 바쁘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이야기해 줬던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회사 앞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녀가 갑작스러운 만남에 기뻐하리라 생각하여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다만, '오늘 언제 끝나?'라고 작은 힌트를 문자로 그녀에게 던져두고 회사 앞 벤치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선물을 받아 들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니 그녀와 만나고 나서 처음 선물을 해준 날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행복하고 즐겁게 웃고 있었다. 오늘 선물을 받은 그녀가 그렇게 웃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새 그녀가 일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회사의 입구를 바라보며 일을 정리하고 건물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지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기회조차 없이 어느 목표를 향해 똑바로 걸었다. 아마도 그 목표는 자신의 집이자 이부자리일 거라 생각하니 모두 잠들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떠올렸다. 그녀도 그런 표정을 하고 입구로 나섰다가 나와 선물을 보고서는 피곤한 표정을 단번에 날려버릴 테고, 그런 그녀의 표정을 상상하기만으로도 행복했다. 선물을 받아 든 그녀의 포옹 그리고 입술을 생각하던 차에 그녀가 회사의 입구에 나타났다.


입구를 빠져나온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빠른 걸음으로 목표를 향해 걸었다. 그녀의 작고 포근한 분홍색 침대가 목표일 거라 생각하며 그녀를 향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목표는 내가 생각하던 목표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몇 걸음 걷지 않고 이미 목표에 도달해 이불속에 파묻힐 때와 같은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잘 어울리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품으로 다정하게 파고들었다.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잠꾸러기의 표정이 그렇게 행복했을까. 행복한 표정의 그녀는 나와 내 선물의 시선에서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얼굴에 묘한 무늬가 자꾸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 건 그녀였다.


다정한 목소리로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을 다시 정했다.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전화의 내용은 마치 회사 프런트에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통보하듯 하는 어조를 띄고 있었다. 익숙한 카페에서 그녀와 만났다. 그녀 얼굴의 묘한 무늬는 이제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무늬는 그녀가 입을 움직임과 동시에 함께 흔들렸다. 그녀의 말소리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는 무늬 때문에 그녀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 얼굴의 무늬가 움직이기를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요즘 힘들어. 우리 관계, 힘들 거 같아. 나 같은 사람은 당신에게 너무 부족한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그녀 얼굴의 묘한 무늬만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왜 그 무늬가 요동을 얼굴을 가득 채웠는지, 요동을 치고 있었는지, 그리고 갑자기 요동치기를 멈췄는지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너와 이제 그만 만나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 말이 그녀의 입을 떠나 내 귀로 들어오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피어있던 묘한 무늬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마치 구겨진 종이가 커다란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무늬가 얼룩으로, 그리고 얼룩이 점으로 변하며 빨려 들어갔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처음 만났던 티 없이 맑은 그녀의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그 말을 나에게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가방과 웃옷을 챙기고 '안녕.'이라고 말하고 뒤돌아 카페를 빠져나갔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