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기억
내일 한 아이가 우리 쉼터를 퇴소할 예정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상훈이었다.
상훈은 쉼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며칠 동안 큰 문제없이 지냈다. 내일이면 쉼터에서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했는지 새벽동안 방에서 잠들지 못하고 사무실에 여러 번 찾아왔다.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복도를 오가던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무실 안 소파에서 잠시동안 시간을 보내게 했더니 좁은 소파에서 쪽잠에 빠졌다. 다시 방으로 돌려보냈다가는 금방 잠에서 깨서 사무실로 찾아올 것 같아 그대로 잠을 재웠다.
아침이 가까워지자 상훈이 깨어났다. 비몽사몽 주변을 둘러보는 상훈에게 물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날인데 물건은 모두 잘 챙겨놓았니?"
상훈은 대답 없이 조용히 고개를 두 번 가로저었다.
"그러면 다른 친구들 깨우러 가는 김에 선생님이 좀 도와줄까?"
상훈은 고개를 들어 올려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다. 같이 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이 잠들어있는 방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불 꺼진 복도를 지나야 했다. 낮과 저녁에 아이들이 돌아다니느라 분주한 복도에 비해 새벽의 조용한 복도는 상대적으로 어둡고 넓어 보였다. 잠에서 깨어나 이 복도를 혼자 지나 사무실에 찾아올 정도로 상훈은 불안하고 힘들었으리라 생각하던 차 상훈과 맞잡은 손에 수분감이 느껴졌다. 아마 새벽동안 상훈은 손에 흐르는 땀을 혼자 양손을 맞잡아 닦아가며 여러 번 복도를 오갔을 거라 떠올리니 처음부터 사무실에 있게 할 걸 하고 괜스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잠들어있는 방으로 가서 불을 켜고 아이들을 깨웠다. 혼자서만 사무실에 와서 잠들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걸까 상훈은 어느새 꽉 잡았던 내 손을 놓고서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 이불속으로 들어가 누워 있었다. 평소와 같이 모든 아이들은 쉽게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부터 차근히 일어나서 다시 분주하게 방과 복도를 채워나갔다.
아이들을 보며 복도를 지나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서 상훈이 자신의 짐을 챙길 수 있도록 작은 상자를 챙겼다. 퇴소를 하는 아이를 위해서 준비된 작은 상자는 비닐 포장을 뜯은 지 오래되지는 않아 긁힌 자국이나 뜯긴 부분이 없는 새 물건이었지만, 비닐 포장 속에 들어있던 채로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색이 바랬다. 심지어 언제 구매했는지 혹은 후원을 받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유행이 지난 유치한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 상자였다. 센터에서 퇴소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상자는 이 상자뿐이었다.
다시 아이들의 방으로 돌아가보니 다른 아이들을 모두 자리를 비우고 상훈이 혼자 자신의 짐을 챙기고 있었다. 퇴소하는 아이의 짐에 빠지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기도 나의 일이었다. 상훈의 물건은 옷가지가 담겨있는 작은 여행용 가방이 전부였다. 짧은 기간만 쉼터에 있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 몇 가지 짐을 어떻게 들고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상자를 상훈에게 전하자 가방에 담지 못했던 물건을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작은 종이 상자에는 쉼터에서 받은 몇 가지 물건이나 문구류, 아이들이 선물해 준 초콜릿과 같은 간식 몇 개, 그리고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이 상훈에게 선물로 준 걸로 보이는 작은 장난감과 편지가 담겼다. 상훈이 챙긴 짐을 모두 확인하자 어느새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나는 상훈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선생님은 이제 가봐야 해서. 괜찮지?"
상훈은 조용히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다른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퇴근을 할 수 없었다. 업무 교대를 담당할 사람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퇴근 전까지 해야 했던 일은 이미 마쳤기에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사무실에 그대로 있다가는 퇴근을 부러워할 사람이 괜히 작은 일이라도 시킬까 봐 싶은 마음으로 복도로 나갔다. 대강 복도를 치우는 시늉이라도 하다가 교대할 사람이 출근하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면 될 일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복도는 조용했다. 둘러보던 중 복도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벽에 붙여놓지도, 어딘가 올려놓지도 않고 덩그러니 놓여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상자의 안을 보자 금방 그 상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비닐 포장을 뜯은 지 오래되지는 않아 긁힌 자국이나 뜯긴 부분이 없는 새 물건이었지만, 비닐 포장 속에 들어있던 채로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색이 바랬다. 언제 구매했는지 혹은 후원을 받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유행 지난 유치한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 상자. 오늘 아침 퇴소가 예정되어 있던 상훈에게 주었던 상자였다.
상자 속에는 쉼터에서 받은 몇 가지 물건이나 문구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초콜릿과 장난감 몇 개가 그대로 담겨있었다. 편지는 보이지 않았다.
상자가 왜 복도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지가 의문이었다. 만약에 버리는 물건이었다면 쓰레기통에서 나왔어야 했고, 단순히 잊어버렸다면 상훈이 아침에 정성스럽게 짐과 함께 챙기던 모습이랑 어울리지 않았다. 바쁜 퇴소 과정에서 상자를 놓쳐버린 상훈의 속상한 얼굴이 떠올라 상자를 집어 들고 쉼터의 출구를 향해 바삐 걸었다. 다행히도 얼마 가지 않아 상훈과 상훈의 보호자로 보이는 여성을 찾을 수 있었다.
"저기요!"
상자를 들고 걸으며 상훈의 보호자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상훈의 손을 이끌고 가던 길을 계속 걸을 뿐이었다.
"보호자님, 잠시만요!"
두 번이나 부르자 그제야 상훈의 보호자인 여성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상훈은 나를 향해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시 만난 상훈을 보고 반가움에 웃어보았지만 상훈은 내가 들고 있는 상자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에요?"
상훈의 손을 잡은 여성이 날카로운 말투로 물었다.
"아, 상훈이 보호자님이시죠? 여기 이 상자. 상훈이가 가져가려던 물건인데 못 챙긴 거 같아서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떠나시기 전에 제가 찾아서…."
"그거 버린 거예요. 무슨 애가 필요하지도 않은 걸 바리바리 챙겨서 귀찮게 말이야."
"네?"
"다시 버려주세요. 그럼 가자."
여성은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쉼터의 출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상훈의 팔을 잡아끌고 가듯 무심하게 다시 길을 떠나려 했다.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와 당혹스러웠다.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던 상훈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 상훈이가 챙기는 모습을 제가 옆에서 봤는데요. 아이에게 소중한 물건으로 보였는데 챙겨가시면 어떨까요?"
다시 부름에 상훈의 보호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내가 볼 때는 전부 쓸모없는 물건들이었데. 그리고 그거 들고 갈 여유도 없어요."
"작은 상자인걸요. 물건이 많지도 않고요. 그래도 상훈이가 직접 챙긴 거니 가져가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차피 가져가도 다 쓰레기가 될 건데. 어때? 필요하니? 네가 직접 말해봐."
상훈의 보호자는 나를 향해 쏘아보던 시선을 상훈에게 돌렸다. 보호자의 시선의 끝이 날카롭게 상훈을 향해있는 모습을 보고서 어젯밤 상훈이 잠을 설치며 불안해하던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가져가고 싶어요."
상훈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물어보면 웅얼거리지 말고 제대로 대답하라고 했지! 얘는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가 없어! 뭐라고!?"
"… 가져가고 싶어요."
"그래? 그러면 아까 말하지 그랬어. 아까 고모가 버리라고 할 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무서워서…."
상훈은 평소보다도 더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뭐? 얘 좀 봐. 또 웅얼거리네?! 지금 뭐라고 했니?"
채근하는 보호자의 태도의 상훈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상훈에게 그런 기분을 계속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보호자를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보호자님. 아이에게 너무 나무라지 마셔요. 여기서 익숙하지 않은 생활을 하느라 힘들었을 거예요."
"뭐라고요? 지금 내가 잘못한다는 거예요? 얘가 이렇게 어른들한테 말도 제대로 안 하고 하니까 애 아빠가 화 낼만도 했지. 아, 물론 그렇다고 우리 오빠가 잘했다는 건 아닌데. 애가 이런 태도인 거에도 잘못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얘 가족은 저예요. 집에 뭘 가져가거나 놓고 가거나 그런 건 당신이 아니라 내가 결정해요. 알아요?"
상훈의 보호자는 본인을 가르치려 든다고 느끼고 기분이 상했는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가족 사이에서 화와 다툼 때문에 쉼터에 오게 되었던 상훈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에서 폭력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보호자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보호자님. 저는 그저 아이가 자기에게 소중한 걸 챙겨가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잘 모르는 일을 쉽게 이야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릴게요."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상훈의 보호자는 나를 위아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쯧'하고 혀를 찼다.
"가져갈게요. 가져가면 되잖아요. 하여간 내 애도 아닌 조카 데리러 이런 데까지 오기도 스트레스받는데 시비나 걸고 있어. 야, 저거 네 거라면서. 그러니깐 네가 들고 따라와."
상훈의 보호자는 상훈의 어깨를 툭 밀며 말했다. 상훈은 나에게 다가와 내가 들고 있던 상자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상자를 받아 든 상훈과 상훈의 보호자는 곧 쉼터의 출구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떠나는 둘의 멍하니 바라보았다. 순간 나 따위는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권한도 행동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상훈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쉼터로 돌아오는 장면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상훈이 또다시 찾아왔을 때 잠시 쉬는 쉼터일 뿐 결국에는 다시 저런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상자를 놓쳐버린 상훈의 얼굴에 밝은 표정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결국 아이들에게 있어 쉼터와 우리의 노력은 잠시의 도피일 뿐, 삶에서 어떠한 변화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모멸감이 가득했다.
퇴근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오자 교대를 할 사람이 출근해서 지난밤 특이사항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잠들고 깨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닐 포장을 뜯은 지 오래되지는 않아 긁힌 자국이나 뜯긴 부분이 없는 새 물건이지만, 비닐 포장 속에 들어있던 채로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색이 바래서 언제 구매했는지 혹은 후원을 받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유행이 지난 유치한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 상자와 상훈에 대한 사실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다급히 퇴근길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