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도 않을 물건

일방기억

by 강동화

"왜 쓰지도 않을 물건을 매번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

옆에서 우두커니 서있던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방 속 지갑을 찾던 나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예정에도 없던 물건을 사느라 계산대 앞에 서있는 내가 못마땅한 건지 아니면 흥미가 없는 건지 나를 보지도 않고서 계산대 주변의 천장이나 벽을 둘러보고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고 던진 질문이었기에 나도 그녀를 마주 보지 않고 다시 가방으로 시선을 돌려 지갑을 찾으며 무심하게 답했다.

"사고 싶으니까. 그리고 꼭 써야 할 물건만 사야 하는 건 아니잖아."

"네가 매번 이러니깐 하는 말이야."

그녀는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지체 없이 말을 이어갔다.

"주문하기 전에 둘러보고 한 번에 사도 되는데, 이렇게 집에 가야 할 때가 돼서 물건을 다시 사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래. 게다가 도무지 어디에 쓸지 모르겠는 물건만 골라서."

그녀의 말이 끝난 순간에 가방 속 지갑에 손이 닿았다. 가방 속 지갑을 꺼내고 그 안에서 카드를 꺼냈다.

결제를 기다리고 있던 점원에게 카드를 전했다. 카드를 받은 점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계산대 위에 올려져 있던 마스킹 테이프의 바코드를 찍었다. 마스킹 테이프의 가격이 얼마인지 말해주지도 않고서 받은 카드를 기계에 꽂아 넣었다. 기계에서는 '삑'하는 단출한 소리와 함께 '드르륵'하고 영수증이 밀려 나왔다. 점원은 영수증과 카드를 함께 집어 나에게 전해주고서 별다른 인사도 없이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수증과 카드를 지갑에, 그리고 지갑을 다시 가방에 넣으며 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이렇게 마지막에 물건을 사면 여기를 다시 한번 둘러볼 수 있거든. 그리고 처음에 들어올 때랑 나갈 때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해."

그녀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피어나는 바람에 그녀의 답변도 듣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처음 봤을 때보다 마지막까지 둘러본 뒤에 느낌이 더 좋아. 쓸모없어 보여도 마음에 든 물건을 사면 오늘 기억이 더 잘나고."

내 답변을 들은 그녀는 표정에 아무런 변화 없이 무심해 보였다.

그녀는 휴대전화의 화면을 밝혀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를 마주하지 않고 아무런 답변도 없이 먼저 발걸음을 떼었다. 그녀가 출구에 다가서자 자동문이 '스르륵'하고 열렸다. 자동문이 끝까지 열리자 문에 달려있던 작은 종이 흔들리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종소리와 함께 문을 나섰다.

나는 계산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마스킹 테이프를 주머니에 넣고서 그녀를 따라 문 밖으로 나섰다.


문 밖에 이어진 작은 테라스의 계단을 내려가니 길 한복판에 그녀가 서있다. 나와 그녀는 이번 주가 지나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다음에는 또 언제 만나면 좋겠는지와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서 잠깐 침묵과 멋쩍은 말이 몇 번 스쳐 지나자 그녀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그녀는 '도착하면 연락할게. 다음에 봐.'라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나는 버스에 타는 그녀를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나는 그녀가 탄 버스가 시선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주머니 속에 마스킹 테이프에 손이 닿았다. 그녀가 여전히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이 주머니 속의 마스킹 테이프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았다. 마스킹 테이프를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잡고서 몇 번 돌려보다가 이내 다시 주머니 속에 넣고서 버스정류장을 떠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