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커피에 위로받는 백수의 아침
오피스타운 한복판에 산다는 건, 요일을 잊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행인들의 대화와 클락션 소리가 그늘진 창을 뚫고 들어올 때, 쓰레기봉투를 사러 슬리퍼를 찍찍 끌며 향한 편의점 앞에 긴 줄이 서 있을 때, 길가의 공터마다 담배 피는 직장인으로 가득할 때. 오늘이 평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방법은 없다. 이는 곧 온전한 백수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눈가에 다크서클을 두 자루씩 매달고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 사이를 떡진 머리에 잠옷 차림으로 활보할 염치도 자신감도 없다. 몇 년 전 자주 놀러 왔던 후배는 화요일 오전 열 시 반에 내 슬리퍼를 끌고 하나은행 뒤편 공터에서 말보로 골드를 태우며, 남들 출근할 때 이런 차림으로 담배 피우는 게 제일 맛있다며 아직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찡긋하곤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도저히 쌩얼로 세상을 마주할 수가 없어 강제로 금연당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아예 밖을 나가지 않을 수는 없으니(꼭 나가야 할 일이 매일 하나씩은 생긴다는 게 또 인프피를 슬프게 한다), 어디 출근하는 사람처럼 일어나자마자 씻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머리와 메이크업을 끝낸 뒤, 이제 뭐 하지 고민하다 연습 / 원고작업 / 구직사이트 탐방 중에 한 가지를 적당히 고른다. 쓸데없이 부지런해 보이는 백수의 평일을 정말 직장인의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건, 이때쯤 집 앞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해 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테이크아웃 전문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만큼 오피스타운의 특징을 잘 말해주는 업장도 없을 것이다. 어림잡아도 서른 개쯤 되는 이 주변 카페들 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천 오백 원 하는 집 앞 주상복합의 노란색 프랜차이즈 카페가 나의 픽이다. 이곳의 영업시간은 공교롭게도 평일 오후 6시까지다. 사회인의 시간에만 마실 수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왠지 나의 평일도 나름대로 쓸모 있다는 증거 같아 집착하게 된다. 작년 여름 작은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전면 재택근무를 하던 회사의 방침상 하루 8시간을 ‘집에서 일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야 했는데, 소파와 침대를 등 뒤에 두고서는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누군가의 돈을 받아먹으며 출근하고 있다는 육체적인 감각이 필요했고, 그 물증이 노란 간판 카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매일 오전 10시쯤 한 잔씩, 가끔은 오후에도 한 잔 더 사 오곤 했다. 메타버스 오피스 속의 회사가 아니라 그 카페에 출근하는 듯이. 맞은편 주상복합으로 건너가는 이차선 도로가 나의 출근길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 음료가 준비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결제하러 카운터에 섰을 때 포스기에는 이미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찍혀 있었고, 내 음료는 그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매니저님이 내 얼굴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짧은 머리에 쌍꺼풀 없는 눈, 친절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인상의 그 매니저님은 진작에 내 기억 속에 입력되어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이외의 주제로 말을 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누군가가 나의 형체를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묘한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노랑 카페 매니저님은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몇 주 전 한국에 돌아와 성실한 백수 생활을 시작할 때쯤, 오랜만에 노랑 카페에 들렀다. 조금 더 긴 기장의 헤어스타일로 바꾼 매니저님이 아직 계신 것을 보고 왠지 모를 반가움이 들었다. 매니저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른 손님도 없는 시간이었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기대한 적도 없고, 기대할 이유도 없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알 수 없이 심각해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바흐를 쳤다. 2성부를 연주하는 양손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았다. 오른손은 빠르고, 왼손은 머뭇거렸다.
매니저님이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던 1년 전,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오피스타운의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는 어디나 똑같구나, 하고 가벼운 반가움을 느꼈을 뿐이다. 4년 전 강남역 삼성생명 뒤편의 작은 테이크아웃 카페에서 일하며 나는 수많은 단골손님의 얼굴을 외웠다. 첫 이 주일 간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사장님은 내게 “이 분은 매일 오시니까 얼굴이랑 메뉴 외워두세요”라고 속삭이고는 했다. 비슷한 옷차림에 비슷한 나이대의 직장인들을 도대체 어느 세월에 구별하나 싶었지만, 이 주일이 지나니 그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어느새 포스기에 메뉴를 입력하고 있었다. 각진 뿔테 안경을 쓴 키 큰 손님은 벤티 아이스 아메리카노, 개인 텀블러를 들고 오시는 손님은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 두 개 띄워서, 같은 팀원으로 보이시는 여자 두 분과 남자 한 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아이스 라떼 한 잔, 계산은 법인카드로. 이 작은 세계의 비밀을 공유하는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 주문을 까먹을 때면 죄책감까지 들었다. 그것 역시 사적인 잡담 한 마디 없이 맺어진 분명한 유대감이었다.
그 손님들의 얼굴을 내가 여전히 기억한다 생각하기에 나는 지금의 매니저님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강남역 골목으로 돌아가 그 손님들을 다시 마주한다면, 나는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까? 내가 알아보지 못할 현재의 그들은 아마 조금은 더 주름이 생겼을 테고, 어쩌면 머리가 많이 빠졌을 테고, 메뉴 취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일 년 전에 비해 나의 머리색도 머리길이도 옷차림도 모두 달라졌듯이. 여전히 아스팔트 수풀에 갇혀 있는 나와 달리 어쩌면 그들은 강남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은 다시는 맞물릴 일 없겠지, 어찌 보면 다행이다. 한동안 맞물려 가던 한 쌍의 시간이 잠시간 떨어져 흘렀을 때, 그 사이 각자가 마주한 시간의 속도도 밀도도 너무나 달랐음을 확인하는 건 참으로 외롭다. 언제나 사람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 중 누구의 손도 잡아보지 못하는 오피스타운 한복판에서는 특히나 더.
삶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내게는 생에서 분명한 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에게 난 기억도 나지 않는, 그저 수많은 만남 속 우연히 지나간 아무개였을지도 모를.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좀처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한 번 마음을 열었던 사람에게는 조금은 특별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 반,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까 봐 드는 두려움 반. 나는 요즘 노랑 카페보다 이백 미터 정도 멀리 떨어진, 오백 원 더 비싼 빨강 간판 카페를 찾는다. 매니저님이 다시 나를 기억하기 시작할 때, 다시 침묵으로 약속될 일시적인 유대에서 더 깊은 위화감과 외로움을 마주하게 될까 봐.
매일 열한 시 이십 분쯤 카페를 찾아주셨던,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손님이 있었다. 언제나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에그 타르트를 주문하시고 이십 분 정도 홀에 앉아 있다 가시던. 원래 식은 상태로 나가는 에그 타르트지만, 우리는 열한 시 십오 분이 되면 그분을 위해 오븐에 에그 타르트를 넣어 먹기 좋게 데워 놓았다. 홀을 청소하러 나갈 때면 그분은 내게 학생인지, 무엇을 공부하는지,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종종 물어보시고는 했다. 알바 마지막 날에는 어떻게 아셨는지 어깨를 두들겨 주시며 그동안 고생했다고, 앞으로의 행운을 빌어주셨다. 그분이야말로 살면서 절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별 것 없는 그 말이 나를 가장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던 사 년 전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내가 그때에 비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두들겨주시던 그 어깨에 지금도 힘이 들어가는 것만 같아서. 내가 또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야만 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