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의미 있는 제목을 찾기에도 사치스러운 우리의 추한 초상
비행공포증이 있다. 일 년 반 전쯤 제주행 비행기에서 심각한 난기류를 만난 이후부터다. 도저히 이 고철 기계가 이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제대로 떠오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고, 발 밑에는 죽음과 나 사이에 얇은 철판 하나만이 놓여 있는 것 같아 아찔하다. 처음에는 이륙 때에 불쾌한 긴장이 느껴지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비행기를 타는 생각만 해도 온 근육이 긴장되고, 이륙 직전이나 기체가 흔들릴 때는 부정맥과 과호흡이 몰려오기도 한다. 덕분에 한동안 볼 일 없었던 안정제를 다시 처방받아 비행 전에 복용하고 있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비행기를 타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지난달, 런던과 인천과 제주를 열흘 안에 왕복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도저히 가지 않고는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없었던, 탑승의 이유가 온전히 내게 있었던 여정이었다. 신기하게도 네 번의 비행 중 한 번도 공황을 겪지 않았고, 마지막 비행에서는 약도 먹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 삶의 키를 직접 잡은 비행을 두려워할 염치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스스로의 신념을 증명하는 것이 내게는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시급했다. 씨발 계속 이따구로 살 바엔 쪽팔려서 뒤지고 말지 - 이 쓸데없는 자존심이 모든 걸 해결한다.
어디에나 산재하는 죽음에의 공포가 왜 비행기라는 이동수단에서만 터져 나오는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돌아보면 지금껏 공포를 느꼈던 비행들은 내 의지와 반대로 행해야 하는 상황과 묘하게 맞물려 있었다. 나는 유학생활 내내 한 번도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적이 없었고,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보다 영국으로 떠나는 비행에서 유독 고통이 심했다. 다른 이동수단들이 여행 내지 일시적 이동의 수단이라면, 비행은 삶의 항로에 분명하고 비가역적인 변화를 주는 커다란 이벤트였다. 주저앉고 싶어서, 변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고 싶어서. 나는 공황이 주는 그 아찔한 매혹에 기꺼이 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한 달 뒤,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비행에 나섰다. 마침 비행공포증도 해소되었겠다, 삶의 항로를 다시 원위치로 되돌리는 여정은 그 어느 때보다 산뜻하고 평화로워야 할 터였다. 바로 그 비행에서 공황이 재발했다. 분명 지난 4년간 가장 바라왔던 순간인데.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무섭구나. 나는 영국에서 편안함을 느꼈구나.
영국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선거권도 없고, 20시간 이상 일할 수도 없으며, 문화에 동화되지도 못한 학생 비자의 외국인. 그에게는 구성원으로서의 혜택도 없지만 동시에 모든 의무와 책임도 면제된다. 나는 그 무엇에도 분노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시장의 이름도 몰랐고,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물가가 오르고 가스비가 오르고 환율이 올라서 친구들과 불평했던 몇몇 발언만이 나의 소시민적 사회참여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진심으로 영국의 미래 따위를 걱정했던 적은 없지만. 내게 BBC 뉴스는 차라리 예능에 가까웠다. 에라이 썩을 나라, 빨리 떠야지 같은 소리를 부끄러움 없이 지껄일 수 있었던.
사랑하는 조국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수많은 쇠사슬에 팔다리가 묶인다. 나는 이곳의 현실에 고개 돌릴 수 없다. 내 일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라도, 나는 분노해야만 한다. 이 기형적 사회구조 속에서 내가 직간접적으로 얻은 혜택만큼 내게도 그 부조리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참정권과 발언권의 자유가 주어진 내게 이 문제를 바꿀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 하루도 무심한 마음으로 네이버를 들어갈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울리는, 내 손으로 죽인 사람들의 절규 - 이는 그 어떤 수사법도 아니다.
관망자의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었던 영국에서 나는 분명 편안했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면 되었고, 그러지 않을 권리도 없었으니까. 한국으로 돌아오며 나는 다시 링 위에 오르는 기분이었다. 혹은 유약한 아킬레우스. 내가 죽었을지도 모를 그 어떤 곳에서 대신 서 있었던 사람들이 나의 파트로클로스가 아니면 무엇일까. 그럼에도 이 염치를 모르는 인간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발목을 붙잡고 떨었더란다. 먼젓번의 비행들이 결국은 자아도취 짙은 허세였다는 걸 고백이라도 하듯이.
1983년의 강의에서 미셸 푸코는 ‘파레시아’라는 고대 그리스의 개념에 대해 탐구한다. ‘모든 것을 말한다’라고 직역되는 파레시아는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발언하는 비판적 행위를 지칭한다. 파레시아를 행하는 자는 언제나 자신이 믿는 진실을 말해야 하고, 그 진실은 타인 또는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어 청자를 불편하게 해야 하며, 무엇보다 사회정치적 역학관계 등에 의해 발언자의 안위가 위협에 빠질 수 있는 불리한 상황에서 행해져야 한다.
파레시아는 자유와 저항의 정신, 궁극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정신이며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 민주정과 군주제 모두에서 - 가치이다. 동시에 개인의 신념을 발화하는 과정에서 세상과 주체, 신념과 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용기를 담보하는 파레시아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의 개인적 정체성 확립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훈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파레시아의 개념이 현대 민주사회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나는 이 당연하지 않은 권리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에 살면서도, 여전히 파레시아의 책무를 유기하고 있는 나를, 당신들을 발견한다.
이오카스테 : 조국을 빼앗긴다는 것이 어떻더냐? 아마 큰 불행이었겠지?
폴뤼네이케스 : 가장 큰 불행이죠. 말로 형언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불행하죠.
이오카스테 : 왜 불행하지? 추방된 자들에게 괴로운 점이 뭐지?
폴뤼네이케스 : 가장 나쁜 점은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오카스테 : 그것은 노예의 운명이로구나. 제 생각을 말할 수 없다니 말이야.
폴뤼네이케스 : 통치자들의 어리석음을 참고 견뎌야 하니까요.
이오카스테 : 바보들과 함께 바보짓을 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
폴뤼네이케스 : 이익을 위해서는 성미에 맞지 않더라도 종노릇을 해야죠.
- 에우리피데스, <포이니케 여인들> (미셸 푸코, <담론과 진실> 중 발췌)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는 것, 집단의 소속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노예의 운명이다. 폴뤼네이케스가 영국에서의 나를 지칭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나는 파레시아의 자격을 회복한다. 하지만 이곳에서조차 파레시아를 포기한다면, 이전보다 더 추한 노예의 생활을 지속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발언하지 않는 우리는 통치자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무엇보다 현대의 파레시아스트는 고대 그리스의 것만큼 중대한 위협을 마주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 바보짓을 하며 괴로움을 느끼는가. 만약 그닥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반박한다면, 괜찮다, 그건 당신이 파레시아스트의 자질이 없는 바보라는 뜻이니까.
파이드라 : 나는 결코 내 남편의 명예나 내가 낳은 자식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다가 붙잡히고 싶지 않아요. 그 애들은 자랑스러운 아테나이 시에서 자유롭고 떳떳하게 살아야 해요. 어머니에 관한 한 명성을 누리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행非行을 알게 되면, 아무리 대담무쌍한 사람도 노예가 되고 말지요.
- 에우리피데스, <히폴뤼토스> (미셸 푸코, <담론과 진실> 중 발췌)
이온 : 가겠어요. 하지만 제 행복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요. 낳아준 어머니를 찾지 못한다면 제 인생은 살 가치가 없어요. 아버지, 제가 더 바라도 된다면, 저를 낳아준 어머니가 아테나이 출신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어머니로 인해 발언의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방인이 혈통이 순수한 도시에 가게 되면, 법이 그를 시민으로 만든다 해도〔이름만 시민이지–옮긴이〕, 그의 말은 노예의 말이고, 그에게는 발언의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 에우리피데스, <이온> (미셸 푸코, <담론과 진실> 중 발췌)
부모와 가족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파레시아의 권리가 주어지는 신분제의 부당성은 차치하고, 명예와 파레시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해 보자. 명예와 지위를 지닌 사람들은 그 명예의 전리품이자 책임으로 파레시아를 행하게 되고, 파레시아를 행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명예를 드높이는 데에 일조한다. 파레시아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도 같은,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계층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고귀함의 증명과도 같다.
각자의 일상의 안온함을 우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대해 일일이 파레시아를 행해야 할 벅찬 의무 또한 없다. 다만 우리가 운 좋게도 누워 있게 된 사회적 안전망 위에서 지엽적인 이해득실을 셈할 때, 누군가에게는 생존 자체가 파레시아와도 같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현대적 파레시아스트의 자격은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다만 누군가는 생존으로, 누군가는 전통적 방식으로 - 부르주아적 수사법, 다시 말해 글쓰기로 - 발화해야 할 뿐. 그리고 지금 당신들이 착각하고 있는 건, 파레시아는 선택이 아닌 의무다. 그들에게 생존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듯이.
무엇보다 푸코가 역설했듯 파레시아는 자기 돌봄의 미학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진심 어린 신념을 발화할 때 우리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깨기 위해 도전한다. 이러한 자기 수련의 과정, 제도 속 인간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삶을 위한 도약이라는 가치에 비해 ‘남을 도와 세상을 발전시키는 일은 결국 자신을 돕는 일이 된다’는 현실적인 논리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고향도 없고 조국도 없는 집시. 나는 여전히 보헤미안이 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기쁨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슬픔도 없다. 누룽지같이 쌉싸름한 우수가 꼬리 뒤에 잔잔히 눌어붙어 따를 뿐이다. 귀향 - 다시 봄이 찾아온 내 아름다운 고향 땅에, 그 난연한 기쁨 밑에 깔린 깊이 모를 슬픔에서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다. 산방산 앞에 유채꽃이 필 때 제주 토박이인 내가 4.3을 떠올릴 수밖에 없듯이. 당당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아파하고 분노하고 싸워내야 한다면, 차라리 녹진한 우울에 몸을 담그고 지구의 어느 황무지에서 그저 아무도 아닌 것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민한다.
결국 도망치지 못하고 돌아온 서울. 한층 접속 속도가 빨라진 네이버 뉴스를 통해, 한층 더 선명해진 우리의 죄를 마주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죄를 대속하게 두지 마라 - 죽음조차도. 이 규율 아래 나는 매 순간 속죄해야만 한다. 우리의 죄 앞에 서 있을 뿐이던 이웃들이 그저 어느 시절의 상징으로 휘발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히드로의 활주로를 구르는 비행기 안, 그래서 나는 겟세마네 동산 위의 예수처럼 두려워했다.
덧붙임.
어젯밤, 이 글을 쓰던 중 서이초등학교 신규 교사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나는 이미 벅찬 상태였다 -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던 수해에 목숨을 잃은 지하차도 속의 시민들, 구명복도 없이 물살에 내던져져야 했던 갓 스물을 넘긴 해병대원. 나는 딱 세 달 전 지금과 같은 압도적인 무기력함을 마주한 바 있다. 그때 지나치게 감상적인 듯해 부끄러워 발행취소했던 글을, 방금 다시 발행했다.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던 건 내가 아닌 세상이었다.
서이초등학교 앞 울타리에 짧은 쪽지를 남기고 왔다. 본인의 의지 여하에 상관없이 곧 이 시절의 상징으로 발화할 서초구의 잔 다르크는 나보다 꼭 한 살이 어린, 스물넷의 여리고 꿈 많은 소녀였다.
내가 그저 쓸데없이 감성적이고 과하게 슬픔많고 심각하게 철없는 어린아이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그것이 이 세상의 진실이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