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끄러움을 이겨내며 이 글을 써. 볼 거 다 본 우리 사이에 대체 뭐가 더 쪽팔리냐 싶겠지만, 이건 한 명분의 부끄러움이 아니거든. 마이 페이보릿 비올리스트, 보컬리스트, 바이오케미스트, 메딕, 뱅커, 전 공군소방대원(전역축하) 등등… 내 모든 최애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아적은, 수신인 n명의 스팸메일이기도 해. 그러면서도 너의 이름을 콕 집어 부르는 건, 결국 이렇게나 짜치는 인트로를 쓰고야 마는 내 욕심을 가장 잘 아는 게 아마 너이기 때문이겠지.
언젠가 너희들을 ‘온 힘을 다해서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간지러운 내 사람들’이라고 부른 적이 있지. (진짜 간지럽다) 난 여전히 너희들이 가장 무서워. 글을 쓰고 연습할 때도, 하다 못해 외출 준비를 할 때도 스스로의 기준 뒤에 따라오는 물음은 ‘너희가 보고 듣고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야. 어찌 보면 난 너희들에게 가장 솔직하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네. 사실 애매한 주소로 날아가는 지금 이 편지도, 너에게나 다른 n-1명의 수신인들에게나 한없이 무례하고 이기적인 일이지. 그냥 부끄러워서 그래.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아 펜을 들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여전히 쿨하게 해내지 못하는 내 부족함을 용서해 줘.
공연 얘기를 해야겠지. 벌써 2주가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어젯밤의 잔향 같기도, 한없이 먼 옛날의 추억 같기도 해. 사실 너무 취해서 그날 밤이 잘 기억나지는 않아. 평화로 위에서 난 쉴 새 없이 울었고, 한라산 17도가 제로슈거로 변했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그에 비해 평소처럼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다가 날이 밝았을 거라는 추측 정도. 그렇게 눈치 안 보고 미친 듯이 울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아. 울긴 뭘 잘했다고 울어, 공연은 그따구로 해 놓고…
여러 의미로 상당한 연주였다. 음정은 자유분방하고, 활은 허공을 떠다니고, 호흡은 하나도 안 맞는 세계최초 마이크로토널 슈만.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는 것처럼, 5년이나 악기를 내팽개쳐 놓고서 겨우 두 달의 연습으로 예전처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 역시 오만이었어. 나름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합주 전까지는 꽤 자신감도 있었어서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아.
그 상황에서, 더 좋은 앙상블을 위해 나는 어떤 욕심을 버려야 했을까. 1) 행복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 하루에 40시간씩 연습한다. 2) 잘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그저 앙상블 자체를 즐긴다. 자명해 보이지만, 난 여전히 잘 모르겠어. 언제나 내 삶은 전자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행복을 가능케 했던 노력들도 분명 있었으니까.
어찌 보면 그 앙상블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 같기도 해. 돈 받는 건 고사하고 돈 주고 보러 오라 하기도 미안할 정도지만, 나중에 보면 생각보다는 들어줄 만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됐든 재밌었다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잖아. 난 여전히 우리가 대학 졸업장을 받는다는 게 실감이 안 나. 적당한 돈을 받고 적당한 사명감으로 일하며 사회에 적당한 기여를 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나에게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난 여전히 수업 째고 술이나 퍼먹는 게 제일 재밌고, 가끔은 e^x를 미분하는 법도 까먹어서 구글링하는 사람인데. 비전공자라는 변명을 통해 우리가 만든 음악에 대한 책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던 것처럼, 나는 여전히 스스로에 대해 어른스러운 책임을 지는 법을 알지 못해. 그런데도 어느새 우리는 내팽개쳐지는 거야. 온실 밖으로, 식지 않는 바다로.
우리가 매겨야 할 스스로의 가격표가 익숙치 않아. 나의 가격표보다 너희에게 붙여질 가격표를 마주하는 게 더 무서워. 그 어떤 값도 온당하지 못할 우리들인데. 한없이 싸구려가 되어버린 좌판의 너희를 상상하면, 난 종종 나를 어딘가에 떨이로 팔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
난 말야, 그런 연주더라도 정말 행복했어. 나의 슈만이었다면 절대 납득할 수 없었겠지만, 우리의 슈만은 그래도 좋았어. 실수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아도 되었고 (대부분 내 실수였기 때문이지만), 아쉬움이 후회로 남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연주의 상품성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어. 그것만은 5년 전 우리의 마지막 연주와 마찬가지더라. 난 언제나 돌아가는 걸 무서워했잖아. 그 자리에 다시 앉았을 때, 실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마저 영영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될까 봐. 네가 옳았어. 우리가 외면하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 것이 세상에 분명 있다는 확신을 얻었어.
참 오묘한 타이밍이야. 확신이 없어도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지금, 오직 이 길만이 옳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어 다행이야. 그래서 난 앞으로도, 내가 아는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에 스스로를 묶어놓은 채 한없이 제자리걸음하는 천형을 피하지 않을 거야. 다만 이제는 5년 전이 아닌, 이 주일 전 그 주말에 묶인 채로.
세상에 어지러진 수많은 슬픔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이겠지. 여전히 하나하나의 슬픔에 과민반응하는 우리에게 사람들은 그럴 필요 없다고 비웃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더 힘주어서 말해. 그때는 그럴 테니, 지금은 그러면 안 된다고. 분명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그런 무덤덤한 표정만 남을 테지만, 그렇기에 지금 더 원 없이 슬퍼해야 한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사라질 것들에 집착해야만 우리에게 영원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우리 사이의 빈자리를 분명히 마주했던 지난 주말, 그곳이 우리의 영원한 집임을 다시금 확인했던 것처럼.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게 항상 어려워. 너희들을 볼 때면 실없이 웃음이 배어 나오려는 걸 어떻게든 막으려고 어색한 표정을 짓고는 해.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아내려는 것도 같은, 나의 이상야릇한 입꼬리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을 거야. 너희는 나에게 그런 무절제한 기쁨이야. 아무리 평가하고 이해하고 미워하려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부동의 짝사랑. 질리지 않는 이 기쁨에 난 마침내 깊어가는 영국의 여름을 아쉬워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나는 평생 이 유치한 충동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작정이야.
그래서 희망해. 우리가 이 상처 많은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헤쳐나갔는지 여전히 기억하기를. 우리의 불면을 무용하게 했던 이 배부른 슬픔을 여전히 부끄러워하기를. 삶이 이런 거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여전히 답하기를.
그렇지 않더라도, 너희를 만날 때는 여전히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기를.
수신인 중 하나가 때마침 빌려준 에세이에 나오는 말인데, 연극의 관객이 된다는 건 그 안에 담긴 슬픔과 호소에 공감하고 기꺼이 발화에 동참하는 일이래. 우리는 서로의 배우와 관객이 되어 서로의 연극을 만들어갔어. 좋든 싫든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인생에 기록된 셈이야. 이 극을 끝까지 보아줬으면 해. 이 덧없는 삶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세상에 분명한 파문을 남겼음을 증언해 줬으면 해. 너희가 원한다면, 나는 언제나 기꺼이.
다시금 길을 잃을 때면 언제고 우리의 극이 올랐던 무대들을 떠올릴 거야. 교대역 앞 간장새우집, 강남역 10번 출구 골목, 압구정로데오와 이태원, 제원과 본죽사거리, 센 강변과 바비칸,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