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황홀했다. 오후. 낮은 태양은 들판 위로 마지막 빛을 길게 드리우고 황혼의 색채들이 천지에 가득했다. 하지만 빛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하루는 곧 어둠과 그늘을 향해 기울었다. 투야나무 울타리 사이로 석양빛을 머금은 노란 태양이 커다랗게 번득이며 밀려들었다. 창을 통해 들어온 그 빛은 오두막 안쪽의 흰 벽에, 호둣빛 서랍장 위에 움직이는 빛덩이로 일렁였다. 이제 하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아졌다. 모든 것은 경사를 이루며 기울어졌다.
-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p. 44
배수아 작가의 묘사는 차분하고 생생하다. 그 시선은 오래 머물고, 멀리 보지만, 언어가 포착할 수 있는 순간이 오직 찰나에 불과함을 잊지 않는다. 함께 숲 속에 앉아, 함께 안갯속을 걸으며, 함께 빵을 나눠 먹으며, 매 순간 생경한 공기를 함께 들이마시고 내쉬는 체험을 가능케 한다. 묘사만이 끝없이 이어지는 글에도 푹 빠져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연스러운 호흡의 묘사가 <작별들 순간들>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이런 글은 어떻게 쓰는 걸까,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질문이었다. 9월의 하늘을 바라보던 배수아 작가가 대답했다.
비유하지 마, 하고 나는 나에게 말한다. 비유하지 말고 설명하지도 말고 성찰하려 들지도 마. 아무것도 누설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저절로 드러내 보이는 것들, 언어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현상성. 오직 그것들에만 집중해.
-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p. 160
배수아 작가는 <작별들 순간들>을 ‘그 장소에 있었기에 쓸 수밖에 없었던 글’이라 말한 바 있다. 쓰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쓸 수가 없다. 어쩌면, 쓰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살 수가 없다.
파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검정 재킷을 걸치고 나온 아침의 나를 기억한다. 그의 배려 덕에 나는 튈르리 정원의 잔디밭에 벌러덩 누울 수 있었다. 5월 말의 해는 여름이 왔다는 듯 마냥 뜨거워서, 햇살을 적당히 가려주는 나뭇가지가 아니었다면 바로 눈을 감고 말았을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 비해, 땅에 등을 대고 바라본 하늘은 훨씬 넓고 높고 푸르렀다. 무한한 거리 너머와 단지 육십 센치 정도 더 멀어진 것뿐인데. 짧은 키의 풀 위를 저공비행하는 바람의 흐름이 귀 뒤를 스쳐 지나갔다.
가볍게 오르내리는 내 가슴을 느낀다. 들숨에 팽팽해지는 가슴 근육과 날숨에 가볍게 말려들어가는 어깨, 리듬에 맞춰 셔츠자락에 스치는 풀의 소리를 듣는다. 땅에 등을 대고 누울 때 호흡은 하늘을 향한다. 팔을 뻗어 햇살을 품에 끌어안는 몸짓과도 같이. 이제야 우리가 왜 폐로 호흡하도록 진화했는지 알게 된다. 숨은 솔직하다. 숨의 사이로만 잴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숨을 들어야만 볼 수 있는 하늘이 있다. 숨을 통해서만 쓸 수 있는 장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