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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텔 Aug 30. 2023

프로페셔널리즘이 해결할 수 없는 일

<다음 소희>가 지루하다면

영화 <다음 소희>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72분이 지나서야 본업하는 유진이 - 형사하는 배두나가 - 걸어나온다. <비밀의 숲>의 최여진 경감같은 따뜻하고 유능하며 정의로운 형사를 기대한 관객에게 나머지 런닝타임이 참 가혹하다. 그 나름 정의롭고 나름 유능하고 나름 따뜻한 유진이지만, 묘한 기시감과 모호함이 인물의 형태를 자꾸만 흐트러트리는 듯 하다. 이 형사는 마석도 스타일도, 게으르고 썩어빠진 흔한 형사1도 아니어서, 좀 지루하다.


사건 전 시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전반부와 사건 후 유진의 행적을 담는 후반부가 칼로 자른 듯 구분된다. 사건의 전말은 이미 전반부에서 숨기는 것 없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후반부 내내 유진은 관객에게 모두 알려진 사실만을 재확인하는 데 그친다. 유진은 수사물의 클리셰적인 형사가 아닌, 그저 사건의 주위를 맴돌며 주변인물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돋보기와 다름없이 소비된다. 이미 모든 것은 말해졌고, 때문에 유진에게는 사건을 해결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된다. 카타르시스 대신 거대한 무력감과 우울함이 안겨진다.


서스펜스를 아예 제거한 건조한 진행 덕분에 유진은 직업적 특수성의 많은 부분을 잃고 우리와 다름없는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형사로서 유진의 이미지가 흐려지는 만큼 관객이 유진의 시선에 동화되고, 영화 속 세계가 픽션이 아닌 현실의 영역에 밀착한다. 그녀가 밝혀낼 수 있는 실체적 진실은 우리도 당장 확보할 수 있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 회유와 협박으로 산재 처리를 무마하는 책임자, 상황이 이런데 우린들 어쩌겠냐는 선생, 먹고 살기 바빠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부모. 주어진 직업을 나름 충실히 소화하는 사람들이다. 영화를 보며 과연 몇 명이나 장학사가 울음을 터트리며 회개하기를 기대했을까?


아예 개별적인 진행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전후반을 느슨하게 이어주는 것이 안무 연습실에서의 한순간이다. 전반부에서 유진이 유일하게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 소희를 딱 한 번 스치듯 지나갔던 순간이 내내 유진의 동기이자 죄의식의 원천이 된다. 관례적으로 수사종결하려던 자살사건이 개인적인 의미를 띄게 된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수사를 대하는 유진의 태도를 순수한 정의감으로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스럽다. 개인적으로는 나희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취재에 뛰어드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백이진이, 그에게 기자로서의 사명과 직업윤리를 묻던 선배 기자가 오버랩된다.



이토록 작위적인 개연성이 오히려 현실을 환기시킨다. 형사 오유진의 몽타주가 한층 더 흐릿해지는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죄의식을 전면으로 불러온다. 우리는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만큼만 세상에 관여한다는 것, 우리 삶과의 연결고리가 단 하나라도 우리 눈에 띄어야만 직접적으로 분노하고 행동한다는 것. 이 사회에 산재한 모든 문제들 중 우리가 스쳐지나가지 않은 일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개입하지 말아야 할 일, 책임감을 느끼지 말아야 할 일도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 했을 뿐, 분명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때문에 이 장치는 작위적이고 진부하지만 현실적이고 강력하다. 또는 유일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만가지 방법 중.


<다음 소희>는 흔히 가장 무책임한 사회적 자위로 비난받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의 진정한 메시지를 분명히 하며,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정말 우리의 안온한 일상이 그 뉴스꼭지와 별개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강조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칼같이 분업화된 직업적 사명감보다 짧고 미약한 인간적 연대를 발견하는 일만이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치유에는 반성이, 반성에는 슬픔이 선행해야 한다. 친구의 죽음에 슬픔을 소화할 새도 없이 동일한 현실에 내몰리는 열아홉 살 아이들, 다음 소희들을 위해 적어도 우리가 들어주고 울어주는 것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아파하지 않고 어떻게 분노할 것이며, 분노하지 않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 프로페셔널한 거, 쿨한 거, 그런 건 더 이상 멋있지 않아.




사진 출처: 나무위키, 한국경제,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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