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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힘 Sep 27. 2022

무모함은 두려움과 함께

걸어서 261km를 걸어보니 깨달은 것

 

 나는 겁이 없었다.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고 뒷수습하느라 고생하는 타입으로 나중에 후회할 때 하더라도 지금 당장 끌리는 것을 선택해왔다. 무모함의 역사를 지나 마흔이 넘어 다시 만난 두려움은 조금은 낯선 얼굴로 다가왔다. 공포영화를 보면서나 느꼈던 두려움과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한 두려움은 달랐다. 내 삶에서 지키고 싶은 것, 소중한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의 자리는 커졌다. 무모하고 겁 없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2년 7월 말. 연일 역대 최고온도가 뉴스에 오르내렸던 그해 여름의 일이다. 그 당시 집에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열이 많은 아열대 체질로 어릴 적 여름은 늘 땀띠와 함께였고, 밖은 엄두가 나지 않아 학원조차 쉴 정도였다. 이런 내가 7월 한여름 261km를 걸어야 하는 도보 성지순례에 도전했다. 나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일임을 알면서도 나는 왜 이 길을 나서려고 했을까. 

     

 결혼하고 맞이한 첫여름이었다. 결혼은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때 우린 알지 못했다. 당장 밥벌이는 어찌할 것인지,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떻게 낳고 기를 것인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결혼 후 시작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성지순례라는 여정 안에서 그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되겠지. ’ 남편도 나도 무모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었다. 호기롭게 도전한 이 여정의 끝이 어떨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첫날부터 통증이 밀려왔다. 아득해졌다. 이렇게 9일을 걸어야 한다니 맙소사. 그날 밤 놀란 두 다리는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하루 100걸음도 안 걷다가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싶었을 거다. 너무 피곤하면 잠도 잘 안 온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걸어야 한다니 잠이 올 리 없었다.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뗀 첫걸음이 잊히지 않는다. 단 한 걸음도 디디기 싫을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발바닥인지, 발가락인지, 발목, 종아리인가, 허벅지인가 통증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던 총체적 난국. 어쩌면 이 모든 부분이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 그만해!’. 이런 참여자의 몸 상태를 모를 리 없는 순례의 리더는 매몰차게 구호를 외쳤다. 구호를 외치면 무조건 출발이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나만 아픈 게 아니었다. 30대 후반의 나이 탓도 아니요, 평소 운동 부족 탓, 체력 탓도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남자아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 사실이 묘한 위로를 주기도 했다. 그 풍경이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고. 대체 이 힘든 걸 다들 왜 하겠다고 했을까. 그러는 나는 이걸 왜 신청했을까. 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리 좋은 운동화를 신고,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면서 걸어도 발바닥, 발가락 사이 물집은 계속 생겼다. 물집도 그냥 터뜨리면 세균 감염된다고 바늘 소독하고 실에 끼워 속에 물은 실로 흡수시키고, 밴드를 붙였지만, 통증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100명 가까운 인원이 함께 움직이다 보니 나 하나 힘들다고 쳐질 수도 없었다. 한 줄로 스텝들의 안내에 따라 속도 조절해 가며 따라가야 했다. 정말 힘든 몇몇을 제외하고는 행렬에 어떻게든 맞춰 전진해야 했다.  

    

 아침 해 뜨고부터 저녁 해지기 전까지 걷고, 쉬 고를 반복했다. 어떻게 지난 길들을 걸어왔을까 싶을 만큼 우리는 경기도의 몇 개의 시를 넘나들었다. 수원에서 시작해서 의왕, 평택, 안성까지 내려와서 이정표를 보고 아득해졌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봤던 그 이정표. 여기가 정말 그 안성이 맞나. 내가 이 길을 진정 걸어왔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밤을 보낼 곳에 걸어 들어가면서는 모두가 울었다. 힘들고 아파서 울기도 했지만, 이 힘듦을 온몸으로 받아 낸 우리에게 감동한 눈물이었다. 오로지 두 발, 두 다리로 정직하게 해내고야 만 우리가 자랑스러워 울었다. 각자의 힘듦을 안고 ‘도보 순례’라는 길에 모인 이들. 힘들어 아무 말 없이 걷는 중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삶의 답을 찾고자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입대를 앞두고, 누군가는 취업을, 누군가는 결혼을, 누군가는 유학을 앞두고 고민하며 걸었던 길이었다. 마치 이 길을 걸어왔듯이 우리의 앞길도 스스로 힘으로, 정직하게 걸어가 보리라는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그때의 나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고민을 안고 걸었다. 

    

 여러 작은 고비를 넘기고 6일째 되는 날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무릎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나도 온전한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울며 이를 악물고 물에 젖은 솜뭉치 같은 다리를 움직이며 간신히 행렬에 끼어 가고 있었던 터였다. 배정된 조가 달라서 함께 한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아도 든든한 의지가 되었었는데, 남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알고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이 차올라 무릎에 큰 혹을 달고도 참고 걷는 남편이 걱정되었다. 스텝들과 중간에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고, 주사기로 무릎에 찬 물을 빼내고 돌아왔다. 붕대 감고도 계속 걷기를 선택한 남편. 이때부터 무모하기로는 남편이 한 수 위라고 인정했다. 남편의 몸 상태를 보니 이걸 핑계 삼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누가 봐도 심각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남편이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내심 포기하길 바랐는데. 내 마음은 걱정 반 원망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마음이 갈팡질팡하니 몸도 더 힘들어졌다. 8일째 되는 날, 드디어 큰 고비가 왔다. 돌산 하나를 넘어가야 하는 날이었는데, 두 명의 스텝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어도 꿈쩍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파스 범벅이 된 무릎에서는 삐걱삐걱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저 여기서 포기하겠습니다.’ 소리가 차올랐다. 제 한 몸 끌고 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내 배낭을 돌아가며 대신 들어주는 조원들과 앞에서 뒤에서 밀고 끌어주는 스텝들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들도 지금 얼마나 힘들 텐데.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다.’ 했지만 또 한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거의 두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해서 험한 돌산을 넘어 마지막 밤을 보낼 성당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의 한계를.  

   

 내 몸의 한계, 내 정신의 한계, 내 인내의 끝을. 그때 확인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나는 훨씬 더 건강했다. 나는 참을성이 없다고 했지만 결국 나는 8박 9일 261km를 완주했다. 참을성 부족, 인내심 부족하다 단정 지었던 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내가 나를 너무나 저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작은 무모했으나 끝은 유의미했던 그해 여름 뜨거운 도전은 그 이후 다시없었다. 

     

 역시 한 번은 모르고 시도할 수 있었지만 알고는 두 번 시도하기엔 너무나 혹독했기에. 우리 부부는 그 무모하고도 유의미한 도전 후 한의와 양의의 도움을 번갈아 받으며 재활에 힘썼다고 한다. 몇 달의 치료와 시술에도 불구하고 완치되지 않았고. 남편은 무릎을, 나는 발목을 바치고 얻은 큰 선물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였다. 이 사람도 나도 뭘 해도 할 수 있겠구나. 지금 우리 가진 것도 없고, 미래는 막막했지만, 내 옆의 사람이 보였다. 기대와 희망. 이런 나와 너라면 손잡고 함께 가 보자 했다. 


 무모했던 도전 이후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고 새로운 두려움을 맞닥뜨려도 또다시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 무모함과 두려움은 함께 온다는 것을 이제 안다. 이 무모함의 끝에 나는 어떤 의미를 찾게 될까. 약간의 기대로 맞이하는 무모와 두려움 사이에 있는 ‘마흔의 여유’란 참 좋은 것이다. 여전히 겁이 나고 두렵지만, 그 모든 도전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경험을 통해 얻은 겁이 나쁘지만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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