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 Mar 18. 2016

세상을 다 가지다

전역

아버지가 동생에게 말했다. "너희 오빠 아마 전역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거다. 원래 다 그러니까 이해해줘라." 그렇다.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며칠 있으면 2년의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나는 정말로 세상을 다 가졌다. 내가 가고 싶을 때,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보고 싶은 것 나는 다 볼 수 있다. 잠깐의 예비군 훈련을 빼면 나는 곧 완전히 자유다.


재작년 겨울일까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일병이었으니까 남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흔히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에게 정신적으로나마 해방 그 자체였고 남은 군생활 내내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군생활 자체는 즐겁게 다양한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보냈다. 후회는 없다. 일주일 내내 풋살을 하기도 했고 무언가에 쫓겨서 야근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이었다. 처음에 생겨난 두려움은 병사라는 나의 직업, 아니 병사는 직업이 아니다. 병사라는 계급에 적응해 나가면서 잊어버렸다. 가끔씩 불쑥불쑥 올라오기는 하지만 군대에서 계급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런 두려움을 의식적으로 잘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군생활을 한다면 자유와 단절된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쉽게 참기 힘들다. 그렇기에 나는 여태까지 군생활을 하신 분들, 지금 하고 있는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선배들이 느끼는 감정도 이해한다. 2년 동안 군생활을 할 수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감사하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회에 나가는 순간 또다시 제일 밑바닥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또 이런 자유가 다른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있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91.66%가 도시에 산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것이다. 이 책은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건축학적 관점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도시에 산다면 한 번쯤 왜 이럴까?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쉽게 이야기한다. 그중에 가장 와 닿는 말이 있었다. 사람은 내가 어떤 공간에 서 있고 볼 수 있다면 그것을 가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높은 빌딩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도시를 가진 것처럼 느끼고, 한강변에 앉아서 강을 다 가진 것처럼 느낀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래서 사람들은 집보다 차를 먼저 산다. 차로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이 다 내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 내가 강남 한가운데에 살지는 않지만 내가 가고 싶을 때 내가 걷고 싶을 때, 내가 쇼핑하고 싶을 때 갈 수 있으면 그것은 내 공간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정말로 세상을 다 가졌다. 이제 '나'의 목소리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다들 그런다. 며칠 안 간다고.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또 힘든 점에 대해서 불평한다. 그러지만 나는 안다. 그때보다 참기 힘들었던 때도 버텨냈다는 사실을. 사실 우리 모두가 모르고 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다 가졌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것뿐이다. 당신은 세상을 다 가졌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밤길에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이 세상을 다 가졌다는 증거다. 나는 자유다. 나는 세상을 다 가졌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 카잔자키스 묘비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