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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Mar 28. 2018

처음 영상을 보기 시작한 때

그들의 죽음을 즐기지 마세요 #1

내가 '야동'이라고 부르는 불법 촬영물 혹은 포르노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고 이미 예전부터 수많은 야동을 봐왔던 친구들은 교실에 있는 컴퓨터로 쉬는 시간마다 야동을 틀어댔다. 그 사실을 선생님께 말하는 학생도, 먼저 나서서 제지하는 학생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방관자였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에 못 본 척 넘기던 나는 홀로 집에 있을 때에 학교에서 아이들이 들어가던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때 처음 포르노를 발견했고 그 뒤의 과정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불법 촬영 영상물 혹은 포르노를 통해서 느끼는 관음적인 시선과 사정을 하고 난 뒤의 편안함에 중독되었다. 나를 옥죄던 다른 스트레스와 잠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가족이 잠들었을 때면 몰래 야동을 보았고 학교에서의 경험은 집에서의 혼자의 경험이 '모두의 경험'으로 확대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당시 반장이었던 나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교실에서 떠드는 일은 물론 이런 일에도 상당히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친구들이 영상을 틀고 가끔은 큰 TV에도 틀어놓는 것을 방관했다. 나는 이때부터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남성연대'의 일원이었다.


처음엔 친구들과 부끄러워하거나 깔깔거리는 정도였다면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자의적인 소비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야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남자인 친구들과의 은밀한 대화였다. 자신의 취향을 찾기를 서로 권장했고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사이트에 대해 나누기도 했다. 2학년 때의 수업 시간에는 유달리 소위 말하는 '양아치'인 학생들이 많았다. 그 말인즉슨, 그들은 수업 시간에 특히 젊고 여성인 선생님일수록 수업을 거부하는 일이 잦았다. 이것을 '남성의 부정한 권력 사용'이라고 명확하게 인지하기보다는 '양아치들'이라고 퉁쳐서 거부반응을 일으켰고 담임선생님에게 이를 고발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양아치들은 보통 '야동'과 '여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항상 자부하는 편이었다. 그에 남성인 담임선생님은 "너는 다른 아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반의 분위기는 담임인 내가 신경 쓰는 것이고 너도 '공부만 하는' 교실 분위기를 다른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엘리트라고 생각하지 말고 보통 학생이 되어라."는 식으로 나를 나무랐다. 그 이후에 나는 약간의 성격의 변화를 경험한다. 같이 '권력'을 누리고 방관하는 '보통 학생'들의 일부가 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끔찍하고 추한 남성성의 발현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성추행하는 경험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정말로 천박했던 이유는 바로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속성에 따라 수업을 거부하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에서 가장 대상화되는 20대, 여성 미혼 선생님에게는 정말로 끔찍한 수준으로 작동했다. 실제로 손으로 어깨 등을 만지기도 하고 말과 눈, 행동으로 일진들은 선생님을 공격했다. 선생님은 울었다. 우리는 깔깔대면서 다 같이 그 과정을 방관했다. 그 뒤로 방관자의 삶은 너무나 즐거웠다. 이미 나는 남성이라는 권력을 달고 태어났고 티 나지 않게 잘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나는 겁에 질리고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린 영어 선생님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남성성에 대해 반성하기 전까지 그 장면은 그저 '교사라는 권력에 힘으로 대항한 카타르시스' 정도로 기억 속에 있었다. 천박한 남성성의 발현이다. 위 사건은 만약 지금 내가 교직에 몸을 담았다면 '나'이거나 '동료'혹은 친구의 일이다. 


그 뒤로 우리는 선생님을 공격한 것에 대해서 '남성'인 담임 선생님께 단체로 혼이 났지만 우리가 왜 잘못했는지 배우지 못했다. 그저 여자 선생님 수업 시간에 과하게 장난을 친 것으로 넘어갔다. 돌아보면 다른 선생님들의 대응 또한 정말 끔찍했다. 주동자인 몇몇 친구들이 남성성을 더 강하게 가진 남자 담임 선생님에게 몽둥이로 맞는 것으로 해결되었고 물론 잘못을 지적하긴 했지만 방관자였던 우리에게는 꾸지람 외에 어떤 벌도 없었다. 나의 방관자성은 학교라는 큰 세상 안에서 어느 누구의 제재도 없이 인정받았다. 방관자가 되는 일은 그 어느 것보다 쉬웠다. 이것이 중학교 2학년 때의 나의 모습이다. 친구들은 시시콜콜 여자 선생님이나 여학생의 외모 평가를 해댔고 성적 대상화를 하는 일도 흔했다. 이미 야동 사이트를 공유하고 심지어 집에서 같이 야동을 보기도 한다는 '일진' 친구들의 행동은 사실상 그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그리고 같은 방관자였던 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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