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 작가
"글이 잘 안써질 땐 어떻게 하냐구요?"
(인터뷰어는 다음 내 대답을 기다리며, 신경질적으로 모나미 펜을 딸깍 거리고있다)
"빈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글이 써지든 안써지든 2시간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습니다, 그게 제 룰이죠."
(5초간 정적)
"저기, 그런데 그 펜 좀 그만 딸깍 거리면 안될까요?"
(인터뷰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내 다리를 떨기 시작한다)
"아무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협박한 적은 없습니다.
누군가 응원봉으로 옆구리를 찌르며 격려한 적도 없죠. 좋아서 하는 일이긴 한데, 어쩌겠어요. 마감이 있는 모든 일엔 고충이 따르는 법입니다."
( 이번엔 내가 손에 쥔 펜을 딸깍 거린다)
단편 소설 공모전 마감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마우스를 미친듯이 딸깍 거리다가,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드디어 내가 미쳐가는구나. 내가 쓴 글이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도대체 이런 식으로 써도 되는건지 확신이 없다.
그럴때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꺼낸다. 하루키의 글을 읽고 나면 다시 심기일전해서 글을 쓰고 싶어지니까. 하루키의 추천곡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의 재즈를 튼다. 100% 아라비카 원두로 내린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갓 구운 블루베리 머핀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어느새 그의 취향이 내 취향이 된 지 오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오랜 팬이다. 늘 지기만 하는 야구 팀. 어느날 한 선수가 홈런을 날리는 걸 보고 그는 생각했다. ‘나도 소설을 한번 써보자’.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운명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 ‘소설을 한번 써보자’ 고 결심한 건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고 난 직후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면 대부분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있거나 꾸벅꾸벅 졸았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던 학생이 둘 있었다. 나와 한 남학생이었다. 그는 교과서 사이에 소설책을 끼워 넣고 읽고 있었다. 한낮에 교실엔 게으른 햇살이 스며들고, 나른한 공기가 흘렀다. 선생님의 독백이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독서에 푹 빠진 그 친구의 옆 얼굴을 한 참을 바라봤다. 그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이었다. 그날 나는 호기심에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교실은 한낮의 열기로 가득했고 우리는 <상실의 시대> 속으로 조용히 빠져들었다.수줍음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주 칠 때마다 묘한 친밀감을 느꼈다. 우리는 늘 두꺼운 <상실의 시대>를 들고 다녔고, 그것은 우정의 증표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하루키의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모를 유대감을 느낀다. 아마도 그 친구가 겹쳐 보이기 때문인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새로운 독서 세계가 열렸다. 그 전까지 나는 이야기가 다 소화 되기도 전에, 이 책과 저 책을 동시에 읽었다. ‘책이라면 전집이지’ 철학을 가진 엄마 덕분이기도 했다. 없는 살림에도 엄마는 어마어마하게 책을 사들였다. 나는 한글을 읽을 수 있을 무렵부터 미피 동화책 시리즈부터 전래 동화 전집, 세계 문학 전집을 마구잡이로 탐독했다. 허기진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글자를 먹어치웠다. 하지만 상실의 시대를 만난 이후로 상황은 달라졌다. 나의 화려한 잡식성 병렬 독서의 시대가 끝난 거다. 한 권의 책에 깊이 빠지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하루키의 문장은 나를 그의 세계로 천천히 끌어 당겼다. ‘나도 이런 문장을 쓰고 싶다’, 먼 곳에서 북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 17살 첫만남 이후, 매년 하루키의 작품을 애정하며 꾸준히 읽어왔다. 그건 하루키가 45년이 넘도록 꾸준히 글을 써온 것도 한 몫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열병을 앓듯 빠져들었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질려버리는 타입이다. 하지만 하루키의 글은 단 한번도 질린 적이 없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문장은 경쾌하게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그가 ‘ 자 이제 글을 써볼까’ 하면 손가락을 시속 100km로 움직여 써 내려간 건 아니다. 그는 새벽 4시반부터 오전 11시까지 꼼짝않고 글을 쓰는 루틴으로 유명하다. 글이 써지든 안써지든,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 그게 하루키의 룰이다. 어느새 하루키의 룰은 곧 나의 룰이 되었다. 그가 처음 글을 쓸 때 정해둔 원칙은, 지금도 내게 ‘등대’와 같다.
첫째, 익숙하지 않은 것을 처음 시도하는 것이므로 그리 어렵게 고민하지 않는다.
둘째, 글은 일인칭으로 쓰고 주인공은 ‘나’로 정한다.
셋째, 되도록 허구를 쓴다.
넷째, 문장은 최소한 세 번 이상 고쳐 쓴다.
그리고 나서 자기변명은 절대 하지 않는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를 지나 마흔이 된 지금까지, 하루키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영혼의 동반자,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난 마흔, 그는 일흔다섯임에도!
하루키는 ‘문학상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니 자연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독자가 자신의 책을 기다려주고 있다는 확실한 감촉만큼 작가에게 소중한 것은 없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을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수상을 바래왔다. 그런데 최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 한 벽>을 덮으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는 시스템이라는 ‘벽’에 맞서는 깨지기 쉬운 ‘알’ 같은 인간 영혼을 비추고 있었다. 한결같이. 그는 진심이었구나. 책을 읽는 내내 하루키가 한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을 마침내 다 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정말로 만족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 대신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어느새 일흔다섯이 된 하루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 있을까?
(몇 달 전, 번역 작품 출간 공식석상에 선 하루키를 보고 조금은 안심했다. 그는 여전히 번역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체력왕 하루키!) 그의 생전에, 내 소설을 출간해서 보내겠다고 생각했지만, (삼년만 더 기다려주세요, 하루키!)
아무래도 팬레터가 더 빠를 거 같다.
하루키씨,
한 작가를 이십년 넘게 꾸준히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당신은 한 사람의 세계를 서서히 바꿔놓았어요. 처음엔 호기심이었다가, 동경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거의 중독에 가깝습니다. 최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놀랐던 건 삼십년 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세계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삼십년만에 다시 썼다는 투지에 감탄했어요. 결국 그때도, 지금도, 당신이 꼭 말하고 싶었던 건 같은 것이었구나. 당신 작품 속의 인물들은 고독하고 연약하지만 고통을 수용함으로써 삶을 포기하지 않아요. 저는 그런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위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번엔 맥주와 위스키가 아니라 커피와 블루베리 머핀 이더군요! 툭하면 주인공이 뜨거운 커피와 갓 구운 블루베리 머핀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하루키씨가 키득거리며 웃는 얼굴이 오버랩됐다구요! 뻔한 속셈, 제발 그만! 외치면서도, 다음 날 저는 블루베리 머핀을 찾아 동네 빵집을 뒤지고 있었어요. 마침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갓 구운 블루베리 머핀을 먹었을 때, 그 카타르시스란! 마치 소설 속으로 들어간 거 같았어요! 그래요, 이번에도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의 팬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며 ‘하루키 글은 한때 읽었지, 이제는 아니라고’ 할때마다 당신의 진가를 모른다고 생각했죠. (유감이지만 제 남편도 포함 되네요, 하루키 팬이라고 해서 점수 후하게 주고 결혼했건만!) 당신의 경쾌한 글 속에서 인간 영혼의 존엄성을 비추는 섬세한 빛을 볼 수 있다면, 진정한 하루키스트들이죠.
당신은 작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재즈바 ‘피터캣’을 계속 운영했어요. 당시 담당 편집자가 충고했다죠? “작가로 데뷔를 했어도 최소 2년은 하던 일을 놓지 않는 편이 낫겠다, 왜냐하면 생활과의 접점을 갖지 않으면 아무래도 문장들이 튕겨나가기 쉽고, 그렇게 한번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문장을 재정립하기란 정말 힘들다” 고요. 즉, 생활과 문장은 별개가 아니라는 관점인거죠. 정말 동의해요.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작품으로 표현할 때,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지 않으면 공명하기 어렵겠죠. 당신이 좋아했던 작가들은 모두 문학 노동자로서 블루 칼라 인물들을 그렸죠. 당신은 전업작가가 된 이후로도 초심을 유지했어요. 문학 스타일을 정립하기 위해 생활 스타일을 정립했으니까요.
담백하고 리드미컬한 문체를 만들기 위해 골초였던 당신이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고 해뜨기 전에 일어나 글을 쓰고, 오후엔 달리기와 수영으로 체력을 만들었죠.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다’ 명언을 남기며.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작가 생활에서 의식적으로 성실하게 살기로 한거죠, 그게 작가로서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인 것 처럼요.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를 저도 좋아하게 됐어요. 당신이 카버에 대한 헌정으로 그의 전 작품을 번역한 것처럼, 저도 카버의 모든 작품을 읽었죠. 또 카버가 좋아했던 시인 찰스 부코스키를 좋아하게 됐구요. 이젠 저도 글로 그 계보를 잇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당신 덕분에 단편 소설을 쓰고 있어요. 좋은 작품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당신 삶의 태도를 닮고 싶어요. 자유로움 속에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산다는 것. 곧 태어날 제 딸도 그 태도의 계보를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당신의 모든 책을 가보로 물려줄 거예요!
그럼, 하루키씨!
저도 심기일전해서 소설을 완성할테니 하루키씨도 심기일전해서 다음 작품, 힘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