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두 개의 심장

태동 VS 흰개미 유충

by 마미은희

고개를 들었다.
빛이 거기 있었다.

나는 빛을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지하에 있었는지 알 수없다.
이제,
밖으로 나가고 싶다.

.

.

.

“오늘따라 시가 안써지네” 펜을 내려놓았다. 깍지를 낀 채 손가락 마디를 부러뜨리는 소리를 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시나 문학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일주일 후 시를 완성해서 들려주겠다고 하자, 뜻밖에도 흥미를 보였다. 데드라인을 정하니 마음은 분주해졌는데, 시는 여전히 써지지 않았다. 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 비냄새가 훅 끼쳤다. 3월의 호치민은 30도가 웃도는 건기인데 모처럼 비가 오려나 싶었다. 저 멀리 81층 높이의 빌딩이 스모그에 가려 희미했다. 오른편으로는 사이공강이 S 모양으로 흐르고, 왼편에는 주황색 단독주택 지붕들이 퍼즐처럼 펼쳐져있다. 34층에서 내려다 본 오토바이 행렬은 개미 떼 같았다. 느긋하게 일어나 커피를 끓였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내가 ‘그것’을 만나기 전까지. ‘그것’을 본 순간, 풍경은 기묘하게 달라져 버렸다. 어쩌면 내가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밖에 나가 글을 써야지, 신발을 신으려던 그때였다. 현관 바닥에서 엄지 손톱만한 갈색 흙더미가 눈에 띄었다. 쪼그리고 앉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했다. 마치 소인국에서 누군가 밤새 흙 한 톨 한 톨을 정성스레 쌓아 만든 피라미드 같았다. 오호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흙더미 꼭대기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예상과 달리,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3초쯤 지났을까. 흙 사이에서 하얀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꺄악!”

기겁하며 벌떡 일어나자 머리가 핑 돌았다. 숨이 가빠왔다. 일단 후퇴다! 쓰러지듯 소파에 눕자, 이번엔 뱃속에서 무언가 꿈틀 하고 움직였다.


“엄마, 엄마 목소리가 들려요! 방금 비명 질렀을 때 나도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일이에요?”

뱃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아기의 목소리. 탯줄로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괜찮아요 엄마? 이제 20주차니까 엄마도 나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아랫배가 ‘톡’하고 볼록 튀어나왔다. 속에서 방귀가 찬 것처럼. 이게 말로만 듣던 태동인가?

아기는 수영을 하 듯 양 손을 휘저었다. 양수속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배 안쪽이 보글보글 간질거렸다.


“이렇게 돌면서 몸의 무게 중심을 잡는 연습을 해요”

배 안쪽으로 미꾸라지가 꾸울렁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왼쪽 배 위로 솟아나온 부분을 살짝 눌렀다. 그러자 이번엔 반대편으로 휙 넘어가며 또다시 불끈 솟았다. 태동이 전하는 묘한 감각. 그제야 내 안에 살아 있는 또 다른 생명을 실감했다. 한 몸에, 두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퇴근한 남편이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돼! 들어오지마! 신발 벗지마! 일단 밖에 있어봐”

“왜그래? 무슨 일이야?”

“바닥을 봐봐! 그래 거기! 뭔가 있잖아! 꿈틀거려! 안보여? 꿈틀꿈틀 거리는 거!”

“이게 뭐지?”

우리는 현관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했다. 그러다 천천히 무너진 흙더미를 내려다 봤다.

남편이 말했다.

“물티슈랑 에프킬라 좀 가져와”

나는 그것을 건네면서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죽이지 마”

“죽이지 말라고?”

“그걸 산채로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은 없을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에프킬라를 칙칙 뿌렸다. 그리고는 물티슈로 바닥을 박박 문질렀다.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제 됐지? 벌레를 그렇게 무서워해서 어떻게 해”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손을 털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벌레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걸 죽이는 게 무서운 거야”

“우리집에 벌레가 들어왔는데 죽여야지 어쩔 수 없잖아” 남편이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걔들이 먼저 살고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온 걸 수도 있잖아”


아랫배가 딱딱하게 조여 왔다.

툭 툭 투둑투둑 투두두두둑.

아기가 누운 채 두 발을 들고 천장을 차고 있는거 같았다. 아니면 내 배를 무대 삼아 춤이라도 추고 있는 걸까. 누구 딸 아니랄까봐.


“엄마! 내 피부는 속이 비치는 반투명 상태예요! 아직 피하지방이 부족해서 쭈글쭈글 주름져있답니다”

“애벌레 처럼 말이니?”

“맞아요! 양수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밖으로 나갈 근육을 만들고있어요.”


아기는 왜 태동을 보내는 걸까? 어느새 인터넷에 ‘동물도 태동을 하나요?’라고 검색을 하고 있는 나. 세렝게티의 누떼들은 목초지를 찾아 40km 행렬을 이룬다.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드넓은 대평원에 도착하면 수 만마리의 암컷 누들이 동시에 새끼를 낳는다. 거미들은 알집을 지키기 위해 거미줄을 칭칭 감아 둔다. 태동을 느낀 후, 무심코 지나쳤던 생명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집안의 거미와 개미들조차도.


다음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자리에 또 다시 흙더미가 쌓여있는걸 발견했다. 이번엔 두개의 피라미드. 나는 이제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안다. 반투명한, 꿈틀거리는 애벌레들. 몇 마리나 있을까. 갑자기 온몸이 간지러웠다.


나는 두 개의 흙더미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 애벌레 정체를 알아내려고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흰개미가 떠올랐다. 얼마 전, 현관문을 기어오르는 흰 개미떼를 못 본척 한 기억. 그것들은 얼핏 보아도 반쯤 불투명하고 주름진 작은 생명체였다. 흰개미 유충을 검색하자, 엄청난 정보가 쏟아졌다. 흰개미는 아파트 시멘트 바닥 지하에 서식하며, 흙으로 둥지를 만든다. 사람 키보다 높은 흙더미를 쌓을 수 있다. 3초에 한번씩 알을 낳는다. 나무로 된 가구는 모조리 갉아먹는다. 방치했다가 어느날 우지끈! 침대 다리가 주저앉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흙더미에서 수천마리의 유충이 날개를 달고 상공으로, 날아오른다!


세찬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눈발처럼, 흰개미들이 날아올라 나에게 돌진하는 상상이 스쳐갔다. 눈은 녹지만 그들은 내 몸에 달라붙어 갉아 먹겠지. 흰개미가 먹어 치운 낡은 책처럼 나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망상이 다다르자 어느새 내 손엔 물티슈와 에프킬라가 들려 있었다. 이제 애벌레의 생과 사는 내 손에 달려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만약 인류 마지막 날, 오직 다섯명만 살아 남는 투표가 열린다면…? 나는 생태주의자, 환경운동가, 동물권 운동가, 비건, 그리고 딥 에콜로지스트에게 한표를 던지겠다. 흰 개미들아, 그들을 만나거든 극락왕생하거라!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실로 오랜만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베란다 문 사이로 비바람이 들이닥쳤다. 책상 위에 있던 흰종이가 거실 바닥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거기엔 어느새 완성된 한편의 시가 있었다.


흰개미 유충의 죽음


고개를 들었다.
빛이 거기 있었다.

나는 빛을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지하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이제,
밖으로 나가고 싶다.

벽을 타고 위로, 위로 기어 오른다.
본능적으로.
빛을 향해.

빛이 있는 곳에,
벽이 있었다.

뚫고 나가라!
내 몸보다 몇백 배는 무거운 걸.

오줌을 지릴 만큼 밀어 올리란 말이야!

하루 반나절을 온몸으로 밀어 올렸다.
마른 흙이 아래로 쏟아졌다.

구멍 너머,
빛이 거기 있었다.

마침내 빠져나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지하생활자가 아니었다.

그때,
비가 쏟아졌다.

나는 다시,
구멍 아래로 떨어졌다.

구멍 밖에서
허스키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너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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