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이를 안 닦고 자는 건, 똥 싸고 똥을 안 닦는 것과 똑같아"
자정 무렵, 침대에 누워있던 남편은 내 말에 한 방 먹었다는 듯 웃더니 "어디 똥 냄새 맡아볼 테야?" 하고 장난스럽게 덤벼들었다. 까르르 웃으며 몸을 피하던 찰나 사타구니 사이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쏟아졌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는 팬티를 반쯤 내리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얼어붙어 있었다. 하얀 대리석 바닥에 새빨간 피가 후두둑 쏟아졌다. 한걸음이라도 더 움직이면 피가 덩어리 째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내 뱃속에 14주가 된 아기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제3자가 된 듯,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멍하게 바라 볼 뿐이었다. 얼음 땡! 누가 내 등을 쳐서 얼어붙은 나를 깨뜨려 주었으면! 이 밤 내 가식을 깨뜨린 건 똥, 피 그리고 공포였다.
“원인은 알 수 없어요. 지금 임신 상태라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다음 날, 집 건너편 국제병원으로 달려갔다. 베트남인 의사는 통역사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호치민에 산지 6년째지만 베트남어가 익숙치 않아 그의 말 한마디에 바짝 긴장했다.
“아기한테 문제는 없는 거죠?”
나는 통역사에게 한국어로 묻고, 의사 선생님한테 영어로 다시 물었다.
“아기한테 문제는 없어요. 하지만 20주 안에 유산될 수도 있습니다. 왜 하혈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법도 없구요"
자궁근종, 자궁수축, 자궁경부, 양막 파수, 전치 태반... 영어사전에서 유산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낯선 단어들을 찾아 잘근잘근 삼키듯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나를 이해한다고.
어쨌든 아기는 무사했다. 초음파 화면 속에서 아기는 마치 ‘하이 파이브’를 하듯 허공에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내 손에는 앞으로 2주동안 직접 손가락으로 질 깊숙이 찔러 넣어야 할 질정이 놓였다. 끝이 뾰족한 총알 모양의 유산방지제였다. 전쟁을 눈앞에 두고 총알이 넉넉한 군인의 심정이 이럴까?
얼마 못가 전쟁 중 침상에 누운 부상병 신세가 되고 말았다. 투약 후 새로운 호르몬이 내 몸을 점령했고, 나는 착실한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다. 임신 전에 야무지게 세웠던 계획들이 콧웃음을 치며 뒤돌아섰다. 이를 테면, 이 참에 박경리의 토지를 완독 하겠다든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책을 섭렵 하겠다며 헌책방에서 그의 서간집을 사둔 것들. 텅 빈 시간속에 쌓인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독서가 정신의 사치처럼 느껴졌다. 대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여자들을 찾아 헤맸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동시대 익명의 임산부들은 마치 <여자들만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출산의 고통은 누구나 알지만 임신의 고통은 겪어 본 사람들만 아는 걸까. 드라마에서 본 입덧 장면은 다소곳이 입을 막고 욱욱 거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두유를 마시면 희뿌연 두유 분수가 터져나왔고, 비빔냉면을 먹은 날엔 코끼리 울음 소리를 내며 시뻘건 분수를 토해냈다.
내 뱃속의 아가는 임신 전에 알지 못했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처음으로 모든 생명의 신비로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동시에 온갖 신체적 고통을—내가 피할수도, 즐길 수도 없는—진짜 고통을 안겨주었다.
임신 하기 전, 나는 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때 살아 숨쉬는 것 같았다. 여느 때처럼 밤 10시까지 댄스 강습을 했다. 단원들에게 “내일 아침 결혼식 좀 하고 오겠다” 라고 말했을 때, 그들의 경악한 표정이란! 15년 넘게 무대에 선 나에게 결혼식은 여느 공연과 다르지 않았다. 마치 기획 공연을 치르듯 모든 과정을 내 손으로 착착 진행하고도 에너지가 남아 돌았다. 남편은 나에게 마조히즘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아니 둘 다 일지도 모른다. 나는 음악 속에 내 육체를 던졌다. 근육을 조이고 늘리며 종국엔 완전히 부숴 뜨리는데서 희열을 느꼈다. 몸이 녹초가 되다 못해 녹즙처럼 짓이겨진 상태에서야 비로소 만족했다. 나는 춤을 통해 해방감을 느꼈다.
어느 날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호치민으로 이주한 뒤에도, 그동안 한국을 오가며 아카데미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더이상 지속하기 어려웠다.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결국 아카데미를 폐업했다. 무용단을 해체하고 나자, 내가 무용지물인 것 처럼 느껴졌다. 내가 추구했던 것들은 무엇으로 남았을까? 공중으로 흩어진 춤, 일시적인 춤, 이제 내 몸은 굳어버렸다. 그때 함께했던 젊은 예술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방인이 되어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게 두려웠다. 게다가 마흔이 가까워 지자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갖는 일을 더이상 미룰 수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는 기분으로 엄마가 될 수 없었다.
그즈음 상담 업계에서 대가로 통하는 분을 만났다. 나는 호치민에서 그녀는 서울에서, 시차와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는 매주 화상으로 만났다. 어렵게 상담 예약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상담시간 마다 진이 빠지도록 울었다. 춤으로 살아온 인생과 허무함을 토로하고 난 직후였다. 그 순간, 화면 너머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예술은 감각의 극단을 추구일 뿐인데 뭐 그리 대단하다고...”
70대 상담사가 컴퓨터 화면 너머에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술을 한답시고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붕 떠서 살아 온 셈이라고 했다. 허송 세월 한 자신에게 ‘예술가’라는 허울로 면죄부를 줬으니, 이제는 아기를 낳고 키우는 재미로 살라고도 했다. 나는 도저히 그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 아무런 항변도 못한 채 눈물만 흘리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그러나 가슴 밑바닥에서 뜨겁게 솟구치는 것은 분노였다. 내 인생이 그저 허송세월이었다는 비난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가 옳다고 여겼기에 뜨거워졌다.
“그러니까 저는 엄마가 되고 싶지만, 동시에 나 자신은 잃어버릴 까봐 두려운거예요"
“애 키우는 재미로 살면 되는 거요"
이런 충격요법이 나에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이제 엄마로서의 삶에만 집중하라는 말은 폐소공포 처럼 느껴졌다. 나는 엄마가 될 준비가 안된 사람 같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수치심이 눈물로 흘러내렸다. 몇 주 더 상담을 받았으나 “도대체 왜 자꾸 우는거요?” “저도 울고싶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반복하다 끝냈다.
그 뒤로 3년이 흘렀다. 임신 17주에 들어서자 배가 제법 무거워졌다. 목에서부터 부푼 가슴으로 푸른 핏줄이 도드라 졌다. 여전히 빈혈과 두통, 식욕 없음과 피곤함에 기진맥진했지만, 이제 구토도 하혈도 하지 않는 것에 감격했다. 축 늘어진 채 침대에 누워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유튜브 쇼츠를 볼 기력만 남았다. 내 안의 비평가가는 한심하다고 꾸짖었고 내 몸은 될 대로 되라며 침대를 더 꽉 움켜쥐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 상담사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는 한때 예술에 빠져 소설책을 출간했으나, 이제 예술은 욕망의 하나 일 뿐이라는 쿨 한 멘트도 잊지 않았다. 영상 댓글에 상담자가 칼 같이 말을 해서 내담자가 상처받겠다든가, 구시대적인 발상을 한다는 비난이 눈에 띄었다. 나는 상담받을 땐 ‘전문가’의 말이니 속수무책으로 신뢰했다. 하지만 내내 품었던 의구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그녀도 창작이라는 기쁨을 누렸으면서 이제와서 그건 그저 욕망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하다니! 배신감을 느꼈다. 그 당시 내게 창작의 욕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애 낳고 애 키우는 재미' 로 살면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그 말은 힘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휴대폰을 꺼버리고 책상 앞으로 갔다.
그동안 나는 엄마가 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을 발견했다. 3년동안 남몰래 토로하듯 쏟아냈던 글쓰기다. 임신을 확인하던 날, 그것을 세상에 내놓을 용기를 냈다. 글쓰기는 창작욕구에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비로소 모든 망설임, 애매모함,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모성이 커질수록 창조성에 대한 욕구도 거센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여전히 내 등 뒤에는 수많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내 안에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그 이야기들이 출간되지 않더라도, 나는 영원히 한 명의 독자를 염두하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겠지.
내 딸, 뱃속에서 내 딸이 하이파이브를 보내며 응원하고 있으니까.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는 틈을 노리는 맹수처럼, 틈틈이 글을 쓸 거야, 그리고 너도 지켜 낼 거야”
그 순간, 태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