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0초, 두려움과 떨림

시험관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by 마미은희


휴대폰에 설정한 3분 타이머가 시작되었다. 3분은 180초인데 어쩐지 3분과 180초는 기다림의 감각이 다르게 느껴진다. ‘자 이제부터 3분을 기다리세요’ 하면 세수를 하고 수분크림을 바르면 되겠다고 시간을 예상해본다. 하지만 ‘자 180초 후에 결과가 나옵니다’ 라고 하면 잰거름으로 초침 뒤를 쫒아가는 기분이랄까. 이렇게 과장을 늘어놓는 이유는 방금 임신 테스트기에 소변을 적셨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 첫 소변에 거사를 치르리라,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벌써 1년째 시험관 임신을 시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 온 나에게 대망의 그 날이 온 것이다.


<테스트 결과는 3분 뒤에 확인하세요> 속삭이듯 말하는 그것을 화장실 선반에 올려두고 아무일도 없었던 듯 주위를 둘러본다. 창문을 여니 방안으로 시원한 공기가 스며든다. 멀리서 적막함을 뚫고 까마귀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누구나 신입이었던 시절이 있다. 신입은 두가지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착실히 규칙을 지키는 부류, 하나는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규칙을 배우는 부류다. 나는 아무래도 후자인거 같다. 시험관 세계의 초짜일때, 수정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고 그 새를 못참고 테스트기에 손을 댔다. 마치 3살 아이가 눈앞에 과자를 향해 달려가는 속도로. 그 뒤로 매일 테스터기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 말을 듣지 그랬어, 병원가서 제.대.로 확인하기 전 날에 하는게 정신 건강에 좋다니까" 시험관 선배들이 이 게임의 비법을 전수 해줬는데도 말이다.


몇달 전, 테스트기를 통해 임신이 안된 것을 확인했는데도 소위 ‘돌주사’를 정확한 시각에 계속 맞아야 했던건 희망고문이었다. 주사를 배에 푹 찌르고 주사기를 쥔 손이 부들거리며 힘을 줘도 주사액이 들어가지 않는 악명높은 고문자. 결국 난임병원에서 '당신은 임신이 안된게 확실합니다' 라고 선고를 받을 때까지 주사기를 놓치 못했다. 혹시 태아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안타까운 일은 임신 테스트기가 한 줄이 나오고 ‘이럴 줄 알았다고’ 포기하는 사람을 볼 때다. 임신유지를 도와주는 돌주사를 즉시 중단 했는데, 알고 보니 임신이었고, 그 놓친 주사 때문에 유산으로 이어져 버렸는다는 사연이 심심찮게 나온다. 시험관 과정에서 견디지 못하는 건 주사의 고통 뿐 만이 아니라 불확실함을 견디는 고통이다. 일찍 임신 테스트기에 손을 대고 지레 포기해버린다면 어쩐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링에서 내려오는 권투선수를 보는 기분이랄까. 난임 커뮤니티에서 포기하겠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댓글을 남긴다. '그래도 병원에서 확인 받기 전까지 주사는 포기하지 마세요 혹시 모르잖아요 '

혹시 모르는 일이 어디 이 뿐일까.


만약 당신이 소설가 지맹생이라고 치자. 어느 권위자가 ‘당신은 작가가 되겠다고 시간낭비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라’ 는 말을 했다면, 그 말을 듣고서도 동요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나는 ‘그래도 쓰는 동안은 즐거운 걸’ 하며 시행착오를 계속 겪어나가겠지만. 이렇게 직접 온 몸으로 부딪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 형벌은 무엇일까? 그것이 '시간 낭비' 라면, 나는 기꺼이 즐겁게 낭비하고 싶다.


포기하는 사람에게 형벌은 후회일지 모른다. 제대로 부서져 버리지 않고 돌아선 그 별들은 빛도 그림자도 없이 블랙홀로 흡수되었다. 까만 우주에 이름없는 별들이 모여 은하수를 이루며 빛나는 가운데, 어쩌면 우주에서 한 영혼이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대에게 오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생명으로 혹은 문학 작품으로 그 자신의 현현을 위해 잰걸음으로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댓글을 남긴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제 그만 꿈에서 깨라는 듯 휴대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벌써 180초가 흘렀다! 나의 권위자, 임신테스트기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등 뒤로 느껴진다. 그의 표정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그 불타오르는 두 눈빛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들릴 듯 들리지 않을 듯 나즈막히 내게 두 번 말했다.


너의 그 생각이 실현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