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상우의 기준으로 매우 늦은 시간인 오전 10시쯤 부스스하게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전날 먹은 핫도그 때문에 벗겨진 나의 입천장 덕에 아침부터 입에 불편함을 느끼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집에 나서자 어제와는 다른 느낌의 프라하의 아침이 우릴 맞이 했다. 가보지 않은 길로 가보자 하고, 어제와는 다른 길로 들어서자 영화에서만 흔히 보던 산책로를 발견했고 산책로 주변으로 나있는 무성한 나무들 덕에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무더운 햇빛을 피할수 있는 것을 보며 영화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우린 산책로로 가지않고 햇볕이 드는 길로 향했고 그 따스함에 내 날카로워진 신경은 한층 풀이 죽었다. 평소라면 그 뜨거운 햇빛 때문에 상우나 나나 둘다 짜증내고 덥다 소리를 입에 달았을게 분명한데 , 그날따라 우린 아무런 불평도 하지않고 그저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만 찾으러 다녔다.
그렇게 집에서 5분거리의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서고 각자 바게트로 되어있는 샌드위치와 나는 커피 쉐이크를, 상우는 스프라이트를 주문했다. 그저 집 앞에있는 평범해보이는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왔을 뿐인데 또 신기한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크지도 않고 매우 작은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아기들을 위한 놀이방이 매장 한쪽에 만들어져 있었다. 놀이방이 갖춰야할것들은 웬만해선 다 갖춰서 더 신기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난 처음부터 샌드위치를 제대로 물어 벨수가 없었다. 찢어진 살에 딱딱하고 거친 바게트가 닿으니 정말 죽을 것 같았고, 먹는게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였다. 하지만 난 배고팠기에 어찌됐든 바게트를 다먹고 쉐이크로 더 거칠어지고 아픈 내 입천장을 달래주었다.
숙소에서 구 시가지 광장, 혹은 팔라디움, 루돌피눔이 있는 지역으로 가려면 블타바 강을 건너 가야 했다, 또 그 블타바 강을 건너기 위해선 숙소 바로앞에 있는 레트나 공원 Letenske Sady 를 가로 질러야 했다. 밥을 다 먹고 나와 레트나 공원 입구로 향했다. 입구로 향하고, 고양이 똥구몽이 보이는 뒷모습이 바닥에 그려져있는 길을 천천히 지나 드넓은 맑고 자연의 초록이 펼쳐져 있는 들판을 만났다.
난 그 순간 상우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직감했다. 동시에 야~ 하고 감탄했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자기 몸만 딱 들어갈 사이즈의 담요를 깔고 비키니만 입은채 선탠을 즐기는 프라하 토박이로 보이는 여자와, 커다란 나무가 햇빛을 가려주는 서늘한 그늘이 있는 곳에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나온 모습을 보며 우리도 어서 자리잡자 했다. 그 넓은 들판에 중앙쯤에 있는 대략 15미터 정도 되어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에 엉덩이를 철푸덕 깔아앉고 우리도 여유를 즐기는 무리에 슬그머니 합류했다. 자리에 앉아 10분간은 각자 사진도 찍어주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나있는 풀들의 자연스러움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연이 주는 따스함과, 서늘함, 생생함을 느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다 잊어버리고 그 시간을 만끽했다.
한국이라면 이런 들판을 볼 수있는 곳이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찾아서 가려면 먼 서울까지 올라가야하고 또 가더라도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차 자연이 주는 본질을 느끼지 못할 것인데 이곳은 달랐다. 사람에 치이지도 않고, 서로를 방해하는 행동도 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것이 다였다. 누구하나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았고 누워서 선탠을 하든 운동을 마치고 들판에 잠시 앉아 웃옷을 벗고 직접 싸온 샐러드를 먹든 ,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난 이런 상황, 공간이 정말 여유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 이 모든것이 너무 완벽했다. 그 시간만큼은 정말 모든것이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평화로움과 여유를 느끼지 못 할 것같다. 우린 중간에 감자칩과 콜라, 맥주를 사먹고 얘기를 하며 4시간 가량 그냥 누워서, 혹은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 4시간동안 느낀것이 또 있다면, 여기 프라하 사람들은 개를 정말 많이 키운다는 것. 또 신기한 것이 목줄 없이 풀어놔도 개들이 알아서 주인을 따르고 주인이 부르기만 하면 곧장 그리로 간다는 것이다. 개들도 여기 사람들과 닮았나보다, 다른 생명체를 건들지 않는다.
그렇게 꿈같은 4시간을 보내고 쌀쌀해진 추위에 옷을 좀 갈아입고 오페라를 보러가자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오페라 시간과 티켓 박스 폐점시간을 찾아보니 티켓 박스 시간이 6:00시 까지였다. 지금은 5:40 인데!! 그래서 그길로 곧장 나와 오페라를 관람하기로 한 국립 오페라 하우스 NATIONAL THEATER 로 향했다. 택시가 보이는 길까지 숨이 차오르게 뛰고 택시를 탄후 늦었다고 빨리가달라고 택시 기사를 재촉했다. 겨우 도착은 했지만 이미 시간은 늦어버린 상태여서 난 반쯤포기하고 터덜터덜 티켓박스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상우가 찾아 막상 들어가보니 닫을 기색도 안보이는 티켓 박스. 허무했다.
7시 예정인 오페라 티켓을 받고 오페라 바로 앞에 있는 어두운 분위기의 음식점에 들어가 상우는 모르는 음식을 시키고 난 프라하에서 유명한 또 하나의 흠식 ‘굴라쉬’를 주문했다. 역시나 상우의 음식은 예상과 빗나가고 비위상하는 맛이 나는 감자 요리로 억지로 꾸역꾸역 배를 채웠다. 내 굴라쉬는 한번 익혀서 말랑말랑해진 하얀 바게트를 먹기 좋은 크기로 5조각을 내 함께 나왔다. 굴라쉬는 돼지 갈비 살로 한국에서 먹는 갈비와 비슷했다. 하지만 뭔가 더 달고, 짭조름하고 양파도 같이 익혀 소스와 버무려져 있어 비린맛이 전혀 없었다. 밥이 먹고 싶은 음식이였다. 그래서 밥도 시켰다. 밥은 살짝 아쉬웠던게 한국에서 먹던 밥과는 많이 달랐다. 밥알들이 접착력이 없어 숟가락으로 퍼도 후두둑 떨어지며 밥알들이 다 흩어졌다. 그래도 굴라쉬는 또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으니 굉장히 만족한 한끼였다. 맛있는 밥으로 배를 채우고 오페라를 보러 들어갔다.
NATIONAL THEATER 정문으로 들어가보니 과연 몇십년의 전통이 있는 국립 오페라 하우스 인만큼 공간자체가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온 벽이 금칠이 되어있진 않았지만 주변이 다 빛나고 있는 느낌,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품격있어보이는 아름다운 무늬들. 또 국립 오페라 하우스이라 풀정장 차림으로 예의를 갖추고 들어가는게 관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검은 수트와 드레스를 입고 각자 칵테일 잔을 들고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멋진 신사와 숙녀들로 인해 더욱더 공간이 빛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보기로 한 오페라의 제목은 MADAMA BUTTERFLY , 뭔지 모르고 그냥 시간에 맞추어 고른 오페라였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또 영화에서만 보던 그 장면이 눈앞에 생생히 진행되고 있었다. Vip석으로 보이는 옆칸과 벽한개를 두고 나누어져 있는 2인용 개별석들이 층층히 나있고 난간과 계단 등은 온통 금박으로 칠해져 천장에 달려있는 빛을 반사해 각자의 존재감을 뽑냈다. 또 벽에 그려져있는 아름다운 꽃문양들, 빨간색감들,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자리를 찾아 앉아서도 주변을 둘러보느라 한동안 반쯤 서서 두리번 거렸다. 공연이 시작되어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체코어로 공연을 진행하는데다 영어로 번역해주어 자막을 띄워주는 스크린이 거의 천장 높이에 매달려 있어 목이 너무 아팠다. 또 오페라는 왜그렇게 재미가 없는지.. 무슨내용인지 절반만 알았어도 끝까지 봤을 것 같다. 1,2,3 부 중간중간에 휴식시간을 주고 3부가 끝나고서 우린 곧장 나와버렸다. 자막 스크린보랴 공연 보랴 목을 너무 들쳐 있었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그래도 각종 무대장치나, 시작적인 효과들은 나름 신기했고 그러한 현대적인 것들을 오페라에 접목시켰다는 부분이 실험적인 정신으로 보여서 좋았다.
우린 그 길로 구시가지 광장으로 향했고 밤에는 처음 가본 광장이라 또 새로운 것들을 경험했다. 탁 트인 광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그룹끼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었고 간단한 안주거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는 우리가 또 빠질수 없다 싶어서 뭐 마실거면 마시고 아니면 자리나 잡아서 얘기하자 하고, 맥주를 마시고 싶진 않아서 그냥 자리만 잡아 앉았다. 여행의 묘미는 이럴 때 나오는 것 같다. 물론 여행지에서의 관광지들, 음식점 등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부지런하게 이곳저곳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즐기며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를 온 몸으로 느끼다보면 정말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온몸으로 실감이 나고, 여행이란 것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감성적인 분위기를 타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시간이 좀 늦은 거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북적여서 일부러 구석구석 다니며 집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우연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박물관이 있었다. 이름은 Sex Machines Museum 역시나 우린 남자다. 궁금증을 해결하자! 하며 들어가 박물관을 구경했다. 박물관 이름답게 사랑을 위한 기계장치들이나, 특수한 물건들, 특이한 물건들, 장식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서로 ‘오…’ 라는 말만 연신 하며 나왔다. 전시되어있던 물건들이나 사용되어진 것들에 대해 얘기하며 장난치며 집으로 들어갔다. 오늘 하루의 하이라이트는 레트나 공원이였단 말을 되풀이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