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호 May 07. 2021

<리뷰>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긱이코노미의 민낯과 무너지는 플랫폼 노동자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저/김고명 역 | 

롤러코스터 | 2020년 08월 15일 | 원제 : 

Hustle and Gig: Struggling and Surviving in the Sharing Economy


1.

세상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갈렸다. 저성장과 실업은 일상이 되었다.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은 단순한 노동을 반복하는 임시직 일자리로 내몰려 법에서 정한 최저 임금조차 받지 못한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다. 그런 와중에도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집 없는 사람들은 임대 아파트마저 구하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렸다.(교통이 좋은 알짜 임대 아파트들은 LH와 금융계 종사자들의 먹잇감이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말한 ”저성장 경제에서 노동보다 부를 통해 창출되는 이익이 더 크다“란 말은 이미 한국 사회에선 20세기적 현상이다. 20-30세대는 주식과 암호화폐를 통해 인생을 베팅하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은 안정된 직장과 노후가 보장된 공무원 자리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한다. 그렇게 어렵게 한 자리 차지한 이들에게 ’이해충돌 회피‘ 따위는 씨알도 안먹힐 헛소리다.


2. 

‘공유경제’가 유행병처럼 퍼졌다. 없는 자들에게 ’공유‘란 얼마나 좋고 달콤한 말인가? 책은 ‘공유경제’의 이상을 이렇게 말한다.         


각종 온라인 플랫폼과 앱의 느슨한 결합체인 공유경제는 공동체성으로 자본주의를 초월하겠다고 약속한다. 공유경제 찬성론자들은 주문형 경제, 플랫폼 경제, 긱Gig경제라고도 불리는 이 새로운 경제적 움직임이 공동체를 만들고,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생태계 파괴를 저지하고, 물질주의를 혁파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신장하고, 저소득층에게 생계 수단을 제공하고, 대중을 사업가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21~22)


한국에도 공유경제 기업이 등장했다. 쿠팡과 타다, 각종 배달 서비스 기업들...한국형 우버였던 ‘타다’ 서비스는 이해 당사자였던 택시업체와 정부 규제로 출발도 하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고용 계약을 맺었던 타다 기사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나스닥 상장으로 주목받던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으로 유통업계의 공룡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 겨울, 1970년 청계천 봉제공장도 아니었던 최첨단 물류 쿠팡에서 노동자-쿠팡은 노동자가 아니라 파트너, 뭐 이런 용어를 쓴다. 공유경제 업계의 공통점이다-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이어졌다. 배달앱 노동자들은 연일 도로에서 시간과 사투를 치르고 배달앱과 계약한 영세 요식업주들은 배달료와 수수료를 제외하면 손에 쥐는 게 없다고 아우성이다. 공유해야 할 빵은 도대체 누가 다 먹었을까?


       

3. 

고유경제는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 공유, 재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P2P업체를 통칭하는 용어다. - 54페이지


자동차와 집을 내가 쓰지 않을 때 이웃에게 빌려주거나 시간이 허락될 때 이웃의 일을 도와준다는 매우 ‘선하고 합리적인 의도’에서 공유경제는 출발했다. “충분히 사용되지 않고 있는 유형자산에 대한 임시적인 이용 권한을 영리 혹은 비영리 목적으로 상호 간에 부여하는 개념”은 결국 말장난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공유경제는 엄밀한 분석이 아니라 편의주의적 시각에서 정의되는 경향이 강하다. 플랫폼에서 자체적으로 정의하며 언론에서 무엇이 해당되고 해당되지 않는지 정의한다.(54페이지) 쿠팡과 배달앱이 왜 공유경제 기업인지 이해되는가? 사용되지 않는 서비스-노동-을 제공자와 사용자에게 중계하기에 공유경제다. 쿠팡과 배달의 민족은 직접 고용하지 않으며 서비스를 중계할 뿐이다. 과연 그럴까?     


노동자들은 의뢰인의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일에 매일 수밖에 없다.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또한 노동자를 마치 자영업자 사장님인 것처럼 포장하는데, 실제로는 기술이 만든 파옵티콘(중앙 감시탑에서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든 원형 감옥)안에서 항상 감시를 받는 처지다. - 36페이지      


그뿐 아니다. 배달앱을 통해 배달을 주문 받은 노동자가 사고라도 나면 병원 치료비는 물론 차량 수리비 심지어 음식값에 배달 지체로 인한 페널티까지 부여받는다. 노동에 따른 위험부담이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배달 노동자는 물론 음식점 업주, 배달 사고로 인한 주문자도 피해자가 된다. 오로지 배달앱 플랫폼만 단지 중계만 해주었기에 책임에서 무한하게 자유롭다!     


저자는 공유경제가 초기 산업사회의 노동환경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노동자는 장시간 일하고도 시간이 아니라 생산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고, 노동자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불이익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길이 전무했던 19세기 말 초기 산업사회의 암울한 노동과 생활환경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공유경제는 ‘파트너’, ‘독립계약자’, ‘사업자’란 말로 노동자를 유혹하며 무한의 책임을 전가하고 동등한 계약자란 명분으로 노동에서 발생하는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다.     


4. 

공유경제 노동자는 독립계약자다. 최근 몇 년간 독립계약자로 분류되는 노동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이유는 기업이 산재보험 제공, 잔업수당 지급, 장애인 편의 보장 등 사회적 책무를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 69페이지      
아웃 소싱이 증가하고 단기 이익이 중시되면서 노동자는 일거리를 찾기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70페이지     


공유경제는 ‘신뢰’, ‘공유’라는 긍정적 용어를 마케팅에 사용하며 노동자와 임시 고용주의 관계를 ‘친구’라는 이미지로 포장한다. ‘혁신’이란 말도 단골 메뉴지만 본질은 교묘한 노동착취 수단의 혁신이 아닌지 의심된다.      

이 책은 공유경제의 실체는 과거 회귀라고 단언한다. 노동자는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노조를 결성할 권리도 없으며, 업무상 재해에 대한 보상조차 요구할 수 없다. 공유경제는 혁신이란 미명하에 지난 수 세대 동안 쌓아 올린 노동자 보호장치를 파괴하며 노동자 착취가 만연했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결국 공유경제로 살찌는 자들은 플랫폼 기업이다. 노동자는 일을 열심히 할수록 가난해지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과 부의 편중은 필연적 결과다. 미국에서 1979년 CEO 평균 총보수 대비 생산직 노동자 평균임금은 37.2:1이었으나 2007년에는 277:1이었다. 14년이 지난 지금 아마 그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이다. 노동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은 노동을 통한 일말의 희망조차 결코 용납지 않는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2019)에서 리키는 빚을 내 트럭을 사고 택배회사 취직한다. 독립사업자, 사장님 대우를 받으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뼈 빠지게 일하지만 빚은 늘고 더욱 가난해진다.  한국의 쿠팡 노동자가 초단위로 택배 물량에 몰려 과로로 숨지는 현실은 더 가혹하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는 원제(Hustle & Gig Struggling & Surviving in the Sharing Economy)보다 더 공유경제의 허상을 꿰뚫고 있다. ‘공유’는 ‘착취’의 사탕발림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도 보지 않는일본의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