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질 거란, 미래의 위로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 서쪽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제법 넓은 동백 숲이 펼쳐진다. 나무가 빽빽해 한낮인데도 어두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동백은 잎이 두껍고 우산처럼 옹송그리듯 가지를 뻗어 짙은 그늘을 만든다. 고려 시대 말 백련사를 보호하기 위해 심어두었다는 동백나무들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을 것이다.
봄 초입, 고요한 숲에선 마지막 동백꽃이 와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두꺼운 잎 사이로 오후의 빛이 섬광처럼 내리쬔다. 명암이 분명한 숲, 조명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작은 부도다. 스님의 사리를 모셔둔 무덤이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부도들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름이 없는 것도 있다. 이곳만이 아니다. 보통 사찰을 들어가기 전, 부도를 보긴 하지만 대웅전을 향해 가느라 스쳐 지나곤 했다. 글이나 사진에서도 부도가 아닌 사찰의 중심 법당이나 탑, 종 등이 당연히 실려야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탑보다 작고 나지막한 것에 발을 멈추고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낮게 웅크리고 있어서 떨어지는 꽃잎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부도들을 본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천천히 소박한 것을 바라보는 일. 언젠가는 슬픔을 안고 있었을, 이제는 저 먼 시간으로 흘러간 부도의 세월을 생각한다. 이렇게 가만히 보면, 지금은 괜찮은 일들은 어쩌면 저 먼 곳에선 슬픔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