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프롤로그: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by 마루마루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꼼꼼하고 인내심이 많으며 섬세하게 기억하는 사람이다. 진료실에서 말이다. 정신과 의사라는 본업에서 그리 나쁜 평을 받는 편이 아니었고, 종종 ‘네가 엄마가 되면 아이를 잘 기를 것 같다’는 말도 들어왔다. 그래서 어딘가 자신감이 있었다.


결혼 3년 차, 어렵게 우리를 찾아온 아기를 잘 길러보고 싶었다. 내가 가진 아픈 기억이 대물림되지 않게, 엄마로서 태어날 아이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마침 근무 중인 병원에서 호쾌하게 1년이나 휴직을 허락해주었다. 통상적으로 의사들은 육아 휴직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출산 휴가도 못 쓰게 권고사직당하는 일도 태반이니 육아 휴직이라 함은 사직 후 복직 계획 없이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직한다면 원하는 만큼 육아에 매진하고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평소 내 성격에는 1년이라는 ‘시한부’ 전업 육아가 훨씬 잘 맞았다. 소중한 1년을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부부 모두 양가 형제 사이에서 맏이였음에도 출산은 꼴찌였다. 덕분에 양질의 육아책과 육아템을 대거 물려받을 수 있었고, 소중한 조언도 많아 받았다. 처음부터 꼭 지키겠다고 생각한 조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육아템에 돈 아끼지 말자, 나머지 하나는 나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모님을 꼭 쓰자,였다. 감사하게도 육아템은 정말 많이 물려받아 고가의 제품을 직접 사는 일은 거의 없었고, 그렇게 굳은 돈으로 나는 가사 이모님과 반찬배달을 육아템으로 장착했다. 그리고 정부지원 산후도우미 서비스가 끝나자마자 개인적으로 파트타임 이모님을 구했다. 쌍끌이에서 외벌이가 되면서 금전 상황은 반토막이 났지만, 감사하게도(?) 코로나 덕에 소비와 외출 기회 줄어 두 가지 조언을 모두 따를 수 있었다. 이 조언을 따른 것은 육아에서 피와 살이 되었다.


나는 독서가 취미이고 영상 난독증이 있어 유*브 등으로 정보를 습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출산 전에 육아서를 여러 권 읽었다. 베이비 위스퍼의 EASY, 똑게 육아식 수면교육 등을 머릿속에 장착하고 시뮬레이션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볼 때 사실 매 순간이 어렵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까. 긴장과 고민이 연속되었지만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아주 큰 문제없이 지내올 수 있었다. 육아의 상황도 비슷할 것이라 예상했고 어려운 상황이 와도 비교적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난 정신과 의사가 아닌가. 진료실에서처럼 섬세하게 아기를 관찰하고, 아기의 필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인내심을 발휘하여 화내거나 큰 소리를 내는 대신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선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육아 모드 온-오프를 명확하게 하며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여 나의 삶을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이 내가 상상한 ‘완벽한’ 엄마의 이미지였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알았는지 뱃속의 아기는 별 탈 없이 만삭까지 잘 지내주었다. 배가 너무 불러 힘들어져 주치의 선생님을 졸라 38주에 유도분만을 잡았다. 입원 후 한 태동검사에서 간호사 선생님의 ‘진통이 있는데 못 느끼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순산을 예상했다. 그리고 정말 다섯 번 정도 힘주고 아기가 쑤욱 나와주었다. 세상에. 출산 과정마저 ‘완벽’하다. 나는 정말 내가 그린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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