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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y 26.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조리원에 가는 길

  출산 후 3일, 산부인과를 퇴원하고 조리원으로 가는 날이다. 집에 두고 온 고양이도 보고 순산 자축 파티를 하기 위해 집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는 병원 문을 나서서 차에 타자마자 낑낑대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나는 아직 아기를 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나는 룰루랄라 마냥 신났고, 쌀국수를 집으로 배달시켰다. 집에 들어와 아기를 아기 침대에 눕혔다. 아기는 잠시 잘 있는 듯하더니 다시 낑낑대기 시작했다. 뭐 때문이지? 배고픈가 싶어 젖을 물려 보았다. 신생아실에서 배운 대로 해 봤지만 병원에서도 나오지 않던 모유가 집에 온다고 갑자기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럼 분유를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분유 타는 법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하게 인터넷으로 분유 타는 법을 검색해서 타 줬는데 온도를 못 맞춘 건지 농도가 잘못된 건지 아기는 먹지도 않고 계속 낑낑댄다. 내가 책에서 본 게 이게 아닌데. 아기가 배고프면 먹이고, 싸면 갈아주고, 재워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기저귀 한 장 집에 없었다. 만약 응아를 하면 어떡하지? 안아줬는데 달래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제야 피부로 와닿았다. 나는 먹이지도,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지도, 재우지도, 달래지도 못하는 행인 1과 다름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눈 앞에서 쌀국수는 불어가는데, 회음부 절개 부위가 아물지 않아 도넛 방석에 엉거주춤 앉은 나는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뭣도 모르면서 기저귀 한 장 없는 집에 아기를 데려온 것이다. 식은땀이 비질비질 났다. 책에서는 아기 울음소리를 잘 들으면 구분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아직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날, 무슨 정신으로 쌀국수를 먹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조리원은 집에서 20분 거리였다. 조리원 주차장에 들어간 순간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안고 가신 후에야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내가 생각한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나는 업무에서는 성과를 내는 전문직 여성이었을지는 몰라도 엄마는 완전 처음인 것이다. 완벽한 엄마라는 것은 이미지 안에만 존재했다. 학교에서 각종 술기와 질병에 대해 배우고 시험도 보고 국가 공인 자격증도 땄는데, 응급실에서 첫 환자를 만났을 때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몹시 겁이 났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두려움과 떨림이 다시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정말 괜찮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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