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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y 30.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조리원에서 펑펑 운 날

  조리원에서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새벽 1시, 가슴이 꽉 찬 느낌으로 깬다. 비몽사몽으로 유축을 하고 신생아실에 가져다준 후 다시 잔다. 새벽 4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오전 7시, 수유콜이 오면 아기를 만나러 간다. 8시, 12시, 6시 식사. 10시, 오후 3시, 8시 간식. 중간에 마사지, 수유콜이 있다. 오후 6시 반부터 8시까지 모자동실. 이때 아기를 방에 데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밥도, 청소도, 빨래도 다 해주고, 먹은 것 치워주고 필요한 것 다 넣어준다. 아기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모자동실도 하기 싫다고 하면 빨리 돌려보내도 된다.


  조리원이 좋은 것도 잠시, 코로나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갇힌 신세가 된 데다 남편마저 출입이 안되자 우울감이 찾아왔다. 남편의 배려로 넓은 방을 쓰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시간 TV 앞에 앉아 보지도 않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거나 무기력하게 스마트폰 게임을 했다. 야심 차게 책도 들고 갔지만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은 모자동실이었는데, 그맘때의 아기는 거의 자고 있어서 해 줄 일도 별로 없었다. 침대에 눕혀 놓고 사진 몇 장 찍고 안아주다가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보여주면 끝이었다. 돌이켜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휴식 시간이지만 지금 다시 저 상황으로 돌아가면 더 잘 놀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초반에 아기는 신생아 황달이 심했다. 3.4kg에 출산했는데, 신생아 황달이 심해 빠는 힘이 약해서 모유가 나와도 먹지 못했고, 젖병도 잘 빨지 못했다.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아기 입에 억지로 짜서 먹여서 겨우 20~40ml 정도 먹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기 상태는 점점 나빠져 입소 5-6일 차에는 3.04kg까지 체중이 빠져 비오플을 처방받았다. 약값을 결제하면서부터 마음이 복잡했지만 그런 마음을 모르는 척했다. 괜찮은 척, 대수롭지 않은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모자동실 시간이 끝나고 혼자 방에 남겨지자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걸까. 나 좋자고 맞은 무통주사가 문제였을까, 남편도 출산 직후 황달로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는데 유전인 걸까, 혹시 아기에게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들은 하나같이 신생아 황달은 때가 되면 좋아진다고 한다. 나도 학교에서 분명히 그렇게 배웠지만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서 면회 시간을 기다리는 엄마였다. 어떻게 해도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아기가 안쓰럽고, 아무것도 못해주는 못난 내가 밉고, 혼자 견뎌야 하는 이 상황이 싫었다. 전화로 낌새를 알아챈 남편이 그렇게 힘들면 조리원을 일찍 퇴소해도 된다고 했다. 아기가 못 먹어서 힘든 건데 집에 가면 더 안 먹을 걸 어떻게 데리고 가냐고 계속 울었다.


  머리로는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진료실에서 하던 일이 바로 그런 생각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의 흐름을 찾는 것이었는데, 그게 정작 내 일이 되니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아닌 걸. 이상하게 나쁜 일은 내가 꼭꼭 숨어있어도 나를 발견해서 찾아올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 좋아진다는 생각 따위가 머리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울다 지쳐 잠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어김없이 새벽 1시에는 가슴에 모유가 꽉 차서 유축을 위해 다시 일어나야만 했지만 말이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기하게도 비오플을 복용한 지 이틀 후부터 아기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면서 잘 먹기 시작해 체중도 0.1~0.2kg씩 꾸준히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생아실의 걱정거리에서 엄마 젖 잘 찾아먹는 우등생으로 순식간에 등극했다. 단 며칠 사이의 일이었다. 문제가 있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면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단지 그 시간이 올 때까지 할 일을 하며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그 시간을 편안하게 잘 견뎌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육아의 순간마다,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과 욕구를 검증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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