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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n 02.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산후도우미 모시기

  2주 간의 조리원 생활이 끝났다. 펑펑 운 날 이후 조리원 생활은 점점 익숙해지고 활기를 찾아갔다. 아기도 무럭무럭 회복해서 퇴소 즈음엔 출산 당시의 몸무게를 회복했다.


  양가 부모님은 모두 건강하시지만 매우 바쁘시기에 나는 처음부터 양가 부모님께 양육 도움을 바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어서 오히려 '조리는 조리원에서, 아기는 시터가, 전문가가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라고 주장했고, 정부 지원 산후도우미를 최대한 길게 모시기로 했다. 퇴소 당일에는 친정 엄마와 올케가 와 주었다. 작년에 출산한 올케는 진정한 육아 전문가로 젖 물리는 자세부터 속싸개 싸는 법, 아기 용품 정리하는 법, 재우는 법 등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산후도우미로부터 아기를 돌보는 좋은 기술을 많이 배우고 잘 쉴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산후도우미가 오시긴 했는데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이다. 산후도우미 (이하 이모님)는 나쁜 분은 아니었다. 착하고 하나라도 일을 더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잘 안 맞았다. 그 무렵 아기를 혼자 바운서에 두었다가 아기가 탈출해서 큰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있었다. 초보  엄마로 겁이 많은 나는 비록 아기가 탈출할 레벨은 안되지만 바운서에 절대 혼자 두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모님이 바운서에 아기를 홀로 둔 채로 빨래를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 말아 달라고 나름 점잖게 다시 부탁했지만 그 후로는 불안해서 아기를 맡기지 못했다. 아기 곁을 떠나지 못해 낮잠을 못 자니, 이모님의 다른 행동들도 일일이 신경 쓰였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밤중에 두세 시간마다 수유하느라 잠을 못 자서, 몸이 아직 회복이 안돼서 내가 예민해서 그런 것이라 1주일을 그냥 참고 넘어갔다. 그런데 참고 넘어간 건 반드시 병이 되는 모양이다. 3주를 쓰기로 했는데 1주 만에 내가 탈진해버려, 업체에 환불 안 해주셔도 되니 이제 이모님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간 참고 견딘 것이 터져 나와 많이 울었다. 업체에서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내일 당장 사람을 교체해드릴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다음 날 오신 분은 20년 경력의 베테랑이셨다. 내가 어지간히 불쌍해 보였나 보다. 손이 야무지고 눈치가 빨라 알아서 일을 찾아 하시고 아기를 능숙하게 보는 모습에 믿음이 가서 처음으로 낮잠을 편하게 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모님은 내가 편하셨는지 반말을 쓰시고 내가 뭐를 하기만 하면 ‘그렇게 하면 안 돼’에서 시작해 사사건건 훈수를 두셨다. 마음이 점점 상해갈 무렵, 병원 갈 일이 있어 스스로 운전해서 간다고 하자 집에만 있는 사람이 무슨 차가 필요하냐고 핀잔주듯 말을 하셨다. 순간 너무 짜증이 나서 ‘저 원래 일하던 사람이거든요’라고 톡 쏘아붙였다. 경력이 긴 것이 항상 장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경력이 길어 여러 군데서 일해보니 다양한 대접을 받으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계속 만들고 자신의 말에 따르도록 요구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 역시 좀 더 나은 대우를 찾아 이직을 하지 않는가.


  돌이켜보면 좀 점잖게 서로 존댓말을 쓰자고 부탁을 드릴 수도 있었을까? 글쎄, 그렇게 못 했을 것 같다. 이모님을 구할 때 나는 고용주지만, 이모님이 일단 출근하시면 아기를 봐주시기에 집에서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내가 모셔야 할 사람이 된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하고 싶은 말을 자꾸 참게 된다. 아기를 위해서, 좋은 관계를 위해서 잘해드리고 싶은데,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시고 과도한 요구와 불쾌한 말이 오가는 것을 계속 참아야 할 때는 마음이 불편하다. 이모님을 모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근무하고 싶은 가정, 함께 지내고 싶은 엄마가 되는 것도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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