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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n 07.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이지 베이비는 정말 모든 순간 이지 베이비일까?

  정신과 의사로서 보호자에게 환자의 발달력을 물을 때 갓난아기 시절에 관한 내용은 한두 줄 정도로 요약된다. 여기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이지 베이비 또는 디피컬트 베이비이다. 이지 베이비 (easy baby)는 말 그대로 순한 아기, 부모와 합이 잘 맞는 아기, 부모가 아기의 요구를 쉽게 파악하고 빨리 반응해 줄 수 있는 아기 정도로 이해할 수 있고, 디피컬트 베이비 (difficult baby)는 까다로운 아기, 예민하고 잘 달래지지 않는 아기로 이해하면 된다.


  보호자의 대답은 대부분 단순하다. “어릴 때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순하고 말 잘 듣는 아기였어요." 반대도 당연히 있다. "정말 너무 까다로운 아기였어요", "뭘 해줘도 달래지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당시에는 그 대답을 말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길러보면서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정말 모든 순간이 그랬을까? 이지 베이비는 정말 모든 순간 이지 베이비였을까? 디피컬트 베이비는 항상 디피컬트했을까?


  돌이켜보면 우리 집 아기는 순한 편이었지만, 엄마인 나에게는 힘들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너 정말 왜 그래?"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고 남편이 아기 데리고 시댁에서 딱 하루만 자고 와줬으면 하는 날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바로 어젯밤에도 새벽 1시까지 자지 않고 낑낑대는 아기를 안고 "너 정말 왜 그래 (엉엉)" 했으니 말이다. 반대로 원더윅스랍시고 아기 컨디션이 사나워지는 주간에도 웃을 일은 있었다.


  트레이시 호그의 '베이비 위스퍼'에서는 아기를 기질에 따라 천사 아기, 모범생 아기, 예민한 아기, 씩씩한 아기, 심술쟁이 아기로 분류한다. 하지만 아기의 기질은 한 가지로 딱 잘라 결정되기보다 몇 개의 기질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마루도 변화무쌍한 얼굴을 가지고 있가. 아주 천사 같은 면도 있고 아주 예민하고 심술궂은 면도 있다. 예를 들면 우유나 밥은 꿀떡꿀떡 잘 먹지만 잠귀가 예민해서 잠자리를 많이 가린다. 낯가림은 적은 편이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울기 시작하면 숨이 넘어갈 것처럼 자지러지게 운다. 아기들은 "이지", "디피컬트" 같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존재이다.


  진료실에서 환자 한 분을 만나도 각자 가진 장점과 단점이 다르고, 비록 아파서 병원에 왔지만 의외의 강인함을 보여줄 때가 있다. 아기도 그렇다. 엄마는 아기의 이지함에서 도전을 받고 디피컬트함에서 위안을 찾아내며, 그렇기에 육아는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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