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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n 09.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원더윅스가 원더원더

  원더윅스 (wonder weeks)는 아기가 발달하며 새로운 지각과 학습 능력을 획득할 때 혼란스러워지는 시기, 그래서 엄마에게 더 달라붙고 칭얼대고 보채는 시기를 말한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라는 책에서는 아기가 시기별로 어떤 능력을 획득하는지, 그래서 그때 얼마나 엄마를 힘들게 하는지 경험담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임신 중에 이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맞아, 우리 환자들도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일 때 혼란스러워하지. 그러면서 일탈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좋아지잖아.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잖아. 충분히 이해해. 게다가 말도 못 하고 우는 것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시기니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진료실에서 배운 것들을 그대로 적용하면 되겠네'라고 자신만만했다.


  마루는 영아 산통을 겪었다. 마사지를 해줘도 좋아지지 않았다. 신기하게 이모님이 계실 때는 잘 지내다가 해가 지고 이모님이 퇴근하시면 영아 산통이 시작됐다. 온 힘을 다해 얼굴을 찡그리고 날카로운 소리로 운다. 이것은 정말 아파서 우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40분에서 1시간을 울다가 15분 정도 평온해지는 시기가 온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가면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된다. 불을 다 끈 방에서 우는 아기를 안고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이 시간은 지나간다,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 주문을 외웠다. 산통이 원더윅스랑 비슷한 것이라 착각했고 잘 견뎌냈다고 생각했다.100일이 지나 산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수유 텀도 3시간 이상 확보되면서 삶이 조금 안정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남편이 당직이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다. 여느 때처럼 재우려는데 도통 잠에 들지 않고 계속 찡찡대기 시작한 것이다. 산통 울음은 아닌데 짜증이 섞이고 어딘가 불편한 울음. 배 위에 올려놨다가 안아줬다가 여러 방법을 써도 달래지지 않다가 수유 시간이 왔다. 수유 후 포만감에 좀 자는 것 같아 같이 누웠는데 다시 낑낑대고 불편하게 울기 시작했다. 어휴.. 한숨을 내쉬고 다시 안아보고 달래 보지만 영 달래지지 않는다. 오히려 울음소리는 더 커지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달래다 달래다 안 달래져 나도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너 정말 왜 그래!" 처음으로 아기에게 화를 냈다. 아기가 움찔하더니 더 큰 소리로 집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아기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건데 거기에 화를 냈으니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기를 안고 사과하면서 미안해서 나도 같이 울었다. 아기는 30분 정도 울다가 잠에 들었다. 그렇게 1시간 단잠을 잔 것이 그 밤의 유일한 수면 시간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아기는 부쩍 똘똘해졌다. 그게 바로 원더윅스였다. 원더윅스가 올 것을 머리로 알아도 원더윅스는 힘들다. 책으로 배우고 상상했던 것보다 큰 원더윅스 앞에 무릎 꿇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힘든 시간은 반드시 지나가지만, 겪지 않고 비껴갈 수는 없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다. 힘든 것도 그 이상, 하지만 그 후에 눈부시게 발전하는 아기를 보는 기쁨도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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