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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Apr 26. 2022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대통령의 인식과 주관은 뚜렷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룬 공과 과를 잘 알고 있었고, 훌륭한 성과가 묻힌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걸 느꼈다. 원칙주의자이자 합리적 보수의 인식을 가진 대통령은 한편으로 주관적 확신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주길 바랐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억울하고 비참하게 살해당한 이후, 그 과정과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노무현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당연히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살해한 이명박을 감옥에 보낸 것까지는 좋았다. 이명박은 대통령 재임시절 분명히 범죄(뇌물, 횡령)를 저질렀고, 지금 죄값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보다 더 나쁜 것들이 일부 정치검찰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할 때, 창밖으로 내려다보며 비열하게 웃던 검사들을 보면서, 저들이 대통령을 발가락의 때처럼 여기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그런 정치 검찰을 때려잡고, 속시원하게 검찰 개혁을 하리라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내정할 때, 비로소 검찰 개혁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상관인 법무부장관을 살해하는 걸 보면서도 끝까지 침묵할 때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경제는 선진국으로 진입했고, 특히 K-시리즈로 이어지는 팝, 영화, 춤, 패션, 음식 등 한국 문화 전반의 눈부신 성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성공했다.

하지만 국내 정치와 개혁 과제는 미진했다. 촛불항쟁으로 박근혜를 탄핵하고, 촛불정부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국정과제는 '개혁'이었다. 그것도 강력하고 단호한 개혁이었다. 가장 먼저 검찰을 개혁하고, 언론을 개혁하는 것을 촛불시민은 바랐다. 진심으로 바랐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정치 검찰과 그들의 개들에게 난도질 당하고 있을 때, 대통령은 뒷전에서 침묵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다. 분명 무언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한 차원 높은 수순을 만들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갈갈이 찢기는 와중에, 촛불시민들이 안타까움과 분노로 치를 떨며 다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고, '조국'을 지키는 것이 곧 검찰 개혁이라는, '조국'이 개혁의 상징이 되어버리는 순간에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훌륭한 인물, 좋은 사람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마지막 인터뷰를 본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문재인을 과대평가했거나, 내가 가진 프레임에 맞춰 생각했거나, 나의 개혁의지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사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래' 점잖은 사람이고, 보수적 인물이며, 지극히 합리적 인물이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증오에 가까운 복수심과 뿌리를 뽑아야 하는 개혁의 의지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걸 몰랐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노회찬 의원이 자살당하고, 박원순 시장이 자살당하는 걸 보면서, 적들에게도 똑같은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문재인 대통령이 해주길 바랐다.


자신의 오른팔인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할 때는, 그만한 각오를 했을 터이고, 검찰과 언론의 발호를 막을 계획을 세웠을 거라고 믿었다. 자신의 오른팔이던 장군이 전장에 나가 적진도 아닌, 아군의 진영에서 무수한 배신자들에게 난자당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면, 그게 훌륭한 지도자일까. 

오늘 마지막 인터뷰를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는다. 그는 자신이 모시던 노무현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도 외면했고, 자기의 오른팔이던 조국 민정수석, 법무부장관과 그의 가족의 정치적 살해도 외면했다. 자신이 아무리 '원칙주의자'이고, '법치주의자'라고 강변해도, 우리 촛불시민이 바란 건, 그런 '원칙'과 '법치'가 아니었다. 

칼을 든 범죄자 앞에서 '원칙'과 '법치'만 말하고, 당장 살해당하는 자기 가족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고, 믿고 따르거나,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촛불시민이 대통령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인 '대통령'을 만들었을 때, 우리가 바란건 대통령이 권력을 휘둘러 날카롭고 확실한 개혁을 하길 바랐다. 경제, 외교, 문화를 잘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에 경제, 외교, 문화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반목과 불신과 증오와 폭력이 난무했다는 걸로 기억한다. 정치검찰과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살해했고, 노회찬 의원을 살해했으며, 박원순 시장을 살해했다.

그리고 이제 그 피묻은 칼날은 점잖기만 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할 것이다. 그때, 촛불을 들어 박근혜를 탄핵했던 시민들이 과연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줄까.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저렇게 난도질당할 때 침묵했던 문재인 대통령, 억울하게 살해당한 노무현 대통령의 원한을 갚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정치검찰과 쓰레기 언론을 개혁하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 나는 더 이상 문재인 대통령을 '존경'할 마음이 없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퇴임 후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자신을 믿고 따르던 장수들을 모른체 하는, 그런 대통령이 문재인이었다면, 그동안 내가 가졌던 존경의 마음을 철회한다.


내 생각이 틀렸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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